분류 전체보기 1264

📚 동면冬眠. 채만식作.

동면冬眠. 채만식作. 곰은 가을이면 도토리 나무에 올라가서 도토리 열매를 따먹고, 배가 터지거나 말거나 실컷 또 따먹고 또 따먹고, 그러면서 간간히 한 번씩 땅으로 툭 떨어져 보고 떨어져 보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살이 찔대로 쪄서 암만 떨어져도 아픈 줄 모를 정도가 되면 그제야 굴 속으로 깊이 들어가 삼동 내내 발바닥을 핥으면서 그 한 겨울을 난다고...... 천하의 미련한 놈이지만, 그것 하나만은 대단히 부러운 제주 같다. 좀이나 좋나.- 봄. 여름. 가을. 이렇게 철 좋은 시절 만 살고서 가을이거들랑 도토리 열매나 배불리 따먹으면서, 가끔 땅 위로 떨어져 보거나 하면서 살살을 찌워서는 겨울 한철이랑 추위 모를 굴속에 가만히 들어앉아 심심풀이로 발바닥이나 핥고...... 그게 인간으..

독후감 2024.11.02

📚 사랑의 판도. 이효석 作.

사랑의 판도. 이효석 作. 사랑의 판도는 대체 얼마나 넓어야 하는지 마치 독재자가 세계지도를 잠식해 들어가면서 몰릴 줄 모르듯이 사람 역시 애욕의 포화를 모르고 마는 것이 아닐까. 수 평 뜰 안에 단란을 알뜰히 지키지만 세상일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내가 있다. 나는 그 사내를 존경하고 부러워한다. 그들 부부 사이에 참으로 짙은 사랑이 흐를 때 그 좁은 영토 권내처럼 행복스러운 곳이 또 어디 있으랴. 그러나 세상에는 사랑이라고 할 만한 경우가 드문 것이 사실이요, 사람들 역시 사랑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많다. 사람이 평생에 꼭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옳은지 어쩐지는 각각 나라와 경전 습속에 따라 다를 것이외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사람처럼 커다란 자유를 갈망하는 것도..

독후감 2024.11.02

📚 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作

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作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같이 뜰에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낙엽은 어느덧 날고 떨어져서 쌓이는 것이다. 낙엽 이란 참으로 이 세상 사람의 수요보다도 많은가 보다. 삼십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건만, 날마다 시중 이 조련치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 벚나무 아래 긁어모은 낙엽은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보다 푸석푸석하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오르고, 바람이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낮게 드리워서 어느덧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 든지 연기 속에서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

독후감 2024.10.30

📚 청춘예찬. 민태원作.

청춘예찬. 민태원作.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이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 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라면 인간은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얼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내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에 끓는 ..

독후감 2024.10.27

남들은 가지 않은 길.

남들은 가지 않은 길. 출렁다리를 건너고 혼자 호젓한 낭만을 곱씹으면서 조금 높은 곳은 이미 정원의 꽃이 다 졌다. 타인의 시선에서 멀어진 거리. 흠뻑 쏟아지는 가을 햇살 만큼이나 자유스런 걸음걸이. 그 만큼의 여유가 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시간. 흙먼지 하나 묻을 여유없이 깔끔하게 새로 건설된 길. 데크로 혹은 철판으로. 더러는 삼삼오오 지인들과의 새참시간. 나도 허기에 싸온 밥에 반주한잔. 갑자기 한두방을 떨어지는 빗방울에 서둘러 하산길을 잡는데, 하나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빠른 길. 다른 하나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야자메트로 걷는 길. 천천히 하산길로 내려서면서 보니 사람들의 흔적이 드문 이끼로 가득한 길이 펼쳐진다.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에 매트위에 떨어져있는 알밤들. 하나둘 줍다보니 바..

수필 2024.10.23

기억의 오류.

기억의 오류. 김훈작가의 책. "자전거 여행" 과 "라면을 끓이며" 두권을 읽었다. 내용중에 술에관한 단상이 나오는데, 과음한 후의 후회와 속쓰림의 정도를 솔직하고 설사 까지의 과정을 제법 그럴듯하게 그려낸 것을. 다시 읽으려고 뒤적거리며 찾았으나 그 장면을 찾지 못했다. 나도 한때 젊음의 과신이라고 술을 폭음으로 현실의 불만에 대한 탈출구가 마치 술독속에 있는것으로 혹은, 젊다는 것의 시험대가 술을 많이 마셔서 타인보다의 우월하다는 것의 증빙을 삼으려는 작태를 버리지 못한때가 있었다. 다 나이들어보면 안다. 그게 다 철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작가는 말한다. 많은 술을 마셨다고. 경험상으로 말하면 '술은 체력으로 마신다' 어느 정도에서의 포기인가는 자신의 욕심에 있는것이 아니라 체력의 한계까지 끌고가면..

수필 2024.10.21

📚 자전거 여행. 김훈作

자전거 여행. 김훈作. '신비'라는. 말은 머뭇거려지지만, 기진한 삶 속에도 신비는 있다. 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마디에서, 기어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측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고 흐르고 구른다. 땅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 나는 가끔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한다. 지나가는 그 숱한 여인들. 자전거와 자전거 사이 바람이 가르는 그 순간에 놓치지 않고, 어떤 밑밥을 깔았든 낚아채서 대화의 상대로 이끌고, 대화의 광장으로 모셔 와서 어떤 결론을 내던. 은밀한 공간에서 옷을 벗기고, 땀을 흘리고, 스릴과 공포와 아슬아슬함을 넘나들면서, ..

독후감 2024.10.18

📚 오발탄(誤發彈) 이범선作.

오발탄(誤發彈) 이범선作. 전쟁전 북한에서 꽤 큰 지주로 한 마을의 주인 격으로 제법 풍족하게 살아오던 철호의 어머니는 산등성이에 악착같이 깎아 내고 게딱지 같은 판잣집들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이 해방촌(解放村)의 삶이 치매상태인 상황에서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래서 수시로 "가자"라는 외마디로 고향을 그리는 것이다. 아무리 자유가 있다고 한들 죽어도 고향에 가서 죽고 싶은 엄마. 공인회계사 서기로 어렵게 살아가는 철호. 대학 3학년에 입대해서 제대한 뒤에 2년째 실업자인 동생 영호. 크게 한탕을 벌일계획을 세우고 있다. " 이제 우리도 한번 살아봅시다. 재길, 남 다 사는데 우리라구 밤낮 이렇게만 살겠수? 근사한 양옥 도 한 채 사구, 장기판만한 문패에다 형님의 이름 석 자를, 제길, 장님도 보게 써서 ..

독후감 2024.10.03

헬스장 형님.

헬스장 형님. 언젠가 나에게 물었다. 월남 갔다 왔어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아요. 나는 월남 파병되었을 때에 원래 1년인데 장기 지원해서 하사관으로 2년 근무하고 왔어요. 대단하십니다. 그럼 연금은 얼마나받아요? 고엽제 수당 안준다고 해서 소송해서 다 받아냈어요. 그래서 합하면 140정도 됩니다. 연세가? 46년생 입니다. 지금 일반적으로 먹는 약도 없어요. 건강관리가 탁월 하십니다. 평가를 해보면. 그렇게 큰키는 아니지만, 단단한 체구에 뼈와 근육 만으로 이뤄진 강골체형이라 기구운동도 평행봉과 철봉과. 그 연세에 자유롭게 구사하는 능력자입니다. 어느날인가 내가 벤치 160을 들고 있는데 한마디. 하십니다. 나도 저렇듯 힘쓸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인생 다 가고 구경만하는 신세가 되었..

수필 2024.09.11

아버지의 유물

아버지의 유물. 그때 그시절 폼나던 최고오급 오메가시계. 하루를 흔들고 다녀야 시계바늘이 돌아가는 지금으로서는 꽤나 귀찮은 물건이지만, 그걸 고쳐서 가져온 아들. 온 동네 통틀어서 하나뿐인 좌우로 문이 열리던 전축도 있었지. 그때는 커다란 괘종시계도 부의 상징이라고 시간만되면 댕댕 종을 울리던 것을 어느날인가 전자시계 장사가 무슨 욕심에선지 조용한 전자시계로 바꿔갔던 그 물건. 세월은 가고 님도가고. 그저 그런 흔적만 남아. 이제는 나도 남겨줄 유물도 없지만 하나씩 정리해야될 나이. 아! 인생은 결국 공수래공수거. 빈손은 빈손으로 떠나는 것.

수필 2024.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