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作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같이 뜰에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낙엽은 어느덧 날고 떨어져서 쌓이는 것이다. 낙엽 이란 참으로 이 세상 사람의 수요보다도 많은가 보다. 삼십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건만, 날마다 시중 이 조련치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
벚나무 아래 긁어모은 낙엽은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보다 푸석푸석하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오르고, 바람이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낮게 드리워서 어느덧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 든지 연기 속에서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의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 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음영陰影과 윤택潤澤 색채色彩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자취를 감춰버린 꿈을 잃은 헌칠한 뜰 복판에서 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 뜰은 벌써 꿈을 메이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까마득 가게 사라져 버렸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찾아서는 안 된다.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시절이다. 나는 화단의 뒷바라지를 깊게 파고 타버린 낙엽의 재를- 죽어버린 꿈의 시체를- 땅속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야기 속 고 소년 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전에 없이 손수 목욕물을 긷고 혼자 불을 지피게 되는 것도 물론 이런 감격에서부터이다. 호스로 목욕통에 물을 대는 것도 즐겁거니와 고생스럽게 눈물을 흘리면서 조그만 아궁이로 나무를 태우는 것도 기쁘다. 어두컴컴한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서 새빨갛게 피어오르는 불꽃을 어린아이의 감동을 가지고 바라본다. 어듬을 배경으로 하고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은 그 무슨 신성하고 신령스러운 물건 같다.
얼굴을 붉게 데우면서 긴장된 자세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내 꼴은 흡사 그 귀중한 선물을 프로메테우스에게 막 받았을 때의 그 곳을 태곳적 원시의 그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새삼스럽게 마음속으로 불의 덕을 찬미하면서 신화 속 영웅에게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 좀 있으면 목욕실에 자욱하게 김이 오른다. 안개 깊은 바다의 복판에 잠겼다는 듯이 동화의 감정으로 마음을 장식하면서, 목욕물 속에 전신을 깊숙이 담글 때 바로 천국에 있는듯한 느낌이난다. 지상 천국은 별다른 곳이 아니다. 늘 들어가는 집안의 목욕실이 바로 그것 인 것이다. 사람은 물에서 나서 결국 물속에서 천국을 구경하는 것이 아닐까.
불과 불과- 이 두 가지 속의 생활은 요약된다. 시절의 의욕이 가장 강렬하게 나타난 것은 두 가지에 있어서다. 어느 시절이나 다 같은 것이기는 하나 가을부터 절기가 가장 생활적인 까닭은 무엇보다 더 이 두 가지 원소의 즐거운 인상 위에서 기 때문이다. 난로는 새빨갛게 타야 하고, 화로의 숯불은 이글이글 되어야 하고 주전자의 물은 펄펄 끓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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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에 늘상 쓸어주던 낙엽도,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린곳을 치우던 추억도 이젠 모두 꿈처럼 사라져버린 흘러간 세월.
이런 글을 읽으면서 그날의 소중했던 기억들을 소환해보는 아지랑이 같은 아련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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