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오발탄(誤發彈) 이범선作.

no pain no gain 2024. 10. 3. 18:18

오발탄(誤發彈) 이범선作.

전쟁전 북한에서 꽤 큰 지주로 한 마을의 주인 격으로 제법 풍족하게 살아오던 철호의 어머니는 산등성이에 악착같이 깎아 내고 게딱지 같은 판잣집들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이 해방촌(解放村)의 삶이 치매상태인 상황에서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래서 수시로 "가자"라는 외마디로 고향을 그리는 것이다. 아무리 자유가 있다고 한들 죽어도 고향에 가서 죽고 싶은 엄마.

공인회계사 서기로 어렵게 살아가는 철호.
대학 3학년에 입대해서 제대한 뒤에 2년째 실업자인 동생 영호. 크게 한탕을 벌일계획을 세우고 있다.

" 이제 우리도 한번 살아봅시다. 재길, 남 다 사는데 우리라구 밤낮 이렇게만 살겠수? 근사한 양옥 도 한 채 사구, 장기판만한 문패에다 형님의 이름 석 자를, 제길, 장님도 보게 써서 대못으로 땅땅 때려 박구 한번 살아봅시다."

" 그리고 이천만환짜리 세단차도 한대 삽시다. 거기다 똥통이나 싣고 다니게. 모든 새끼들이 아니꼬와서. 일이야 있건 없건 종일 빵빵 울리면서 동리를 들락날락해야지. 제길, 하하하."

"네. 가시지요.  양심이란 손끝에 가십니다. 빼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야요. 윤리요? 윤리 그건 나이롱 빤스 같은 것이죠. 입으나 마나 불알이 덜렁 비쳐 보이기는 매한가지죠. 관습이요?, 그건 소녀의 머리 위에 달린 리본이라고 나 할까요? 있으면 예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없대서 뭐 별일도 없어요. 법률? 그건 마치 허수아비 같은 것입니다. 허수아비. 덜 굳은 바가지에다가 되는 대로 눈과 코를 그리고 수염만 크게 그린 허수아비. 누더기를 걸치고 팔을 쩍 벌리고 서 있는 허수아비. 참새들을 향해서는 그것이 제법 공갈이 되지요. 그러나 까마귀쯤만 돼도 벌써 무서워하지 않아요. 아니 무서워 하기는 커녕 기는 그놈의 상투 끝에 턱 올라앉아서 썩은 흙을 쑤시던 더러운 주둥이를 쓱쓱 문질러도 별일이 없거든요. 흥."

만삭인 아내는 십여 년 전 E여자대학 졸업음악회에서  흰 저고리와 까만 치마를 입고 무대에 나선 그녀는 더욱 예뻤다.

동생은 어머니의 원수를 갚겠다고 남들은 다 기피하는 군에 지원해서 내장처럼 박힌 파편. 특별한 기술이 없어서 취직 못하는 현실의 불만을 품고 한탕이라는 모험으로 은행강도로 나섰다가 잡히는 신세.
여동생 명숙은 양공주로 나서 지탄받는 신세.
본인은 적은 임금에 썩은 이를 뽑지 못하고 치통을 견디는 신세.
아내는 출산중에 손이 먼져나와 죽고만다.

명숙이 내미는 만환짜리 뭉치를 받고는 병원으로 갔다가 죽은 아내를 보고, 동생의 구류된 몸을 보고, 칫과에서 이를 뽑고.또 뽑아달라고 하다 거절하자 다른 칫과에서 뽑고는 거듭 가득 고이는 입안의 핏덩이를 연거푸 뱃는다.
택시를 타고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정점 정신을 잃어간다. 잘못 발사된 탄환처럼. 오발탄이다.

'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에서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 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 한다......'

1920년 생인 작가는 실향민으로 많은 소설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