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417

행화촌

“청명 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길 가는 행인 너무 힘들어/ 목동을 붙잡고 술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더니/ 손들어 멀리 살구꽃 핀 마을(행화촌)을 가리키네” 이후 행화촌(杏花村)은 술집을 보다 점잖게 부르는 말이 되었다. 며칠동안 무지하게 덥더니 요즘은 한낮에도 시원하다.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고양 호수공원가는길에는 살구나무가 가로수로 줄지어 서있다. 임진각을 다녀오는 길에 호수공원들려 한바퀴 돌고 행화촌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살구는 지천으로 널려있는 중이다. 어릴적 담장너머 뻗어나온 가지에 덜익은 살구를 호기심에 따던 생각. 너무 떫고 시어서 찡그려가면서 흘러나오는 침이 그립던 시절. 복숭아꽃 살구꽃 그립습니다.

수필 2020.06.20

랩소디

비오는날의 랩소디 인간의 근육은 안쓰면 퇴화하고 너무쓰면 망가지는 양면의 날을가진 검과같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쯤에 비가온다고 해서 잠깐이라도 한 두어시간정도 자전거를타면 어쩌랴싶어 끌고 나갔다가 한두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만큼이나 세면서 가는데 서늘했던 기운이 가시고 땀이 한두방울 떨어질때쯤에 바닥이 젖어있는듯이 보여서 과감하게 회군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다리아래 옹기종기 모여서 수다삼매경에 빠진 라이더들. 집에 도착하니 딱 샤워하기 좋을만큼 젖은몸. 이렇게 비오는 날의 랩소디는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수필 2020.06.14

마농사

누가 "할일없으면 농사나 짓지"라고했나! 작년에 동생밭에 갔다가 마씨를 밥할때 넣어서 먹으면 맛과 건강 두가지를 다 잡을 수있다고 해서 한통을 가져왔는데, 먹고 남은 마씨가 봄이라고 싹이나서 한동안 고민하다가 상속으로 받은 밭을갈고 고랑을 만들고 잡초방지 멀칭비닐을 씌워서 넝쿨이 타고 올라가는 봉과 그물을 설치하고 마씨를 심는데, 마치 하사관학교에서 유격과 공수훈련을 겹으로 받은 노동량에 어설픈 초보농부의 땡볕에 타들어가는 피부만큼이나 속이타들어갑니다. 책으로 배운 농사가 실전을 겪으면서 실감나는 하루가 갑니다. 누가 할일 없으면 농사나 짓는다고 했는지?

수필 2020.06.14

5월이 진다

따뜻한 훈풍속에 뻐꾸기울면 긴 시간 준비했던 봄꽃이 화사하게 무대를 장식한다 노랗게 피어나던 민들레 홀씨로 흘러가고 크로바 하얀향로같은 카핏처럼 자리잡고 이팝나무 꽃무리는 달빛에 더욱좋고 아카시아 복주머니 꿀을담아 5월의 여인을 노래하면 첫사랑 여인네의 향기처럼 피어나는 해당화 다 때가되면 피었다가 가슴에 멍울을 남기고 떠나간다 알면서도 어쩔수없이 보내야하는 당신 그렇게 5월이 진다.

수필 2020.05.28

유찬이 돐

셋째 손자돌. 시국이 시국인지라 돌잔치를 하지 못하고 돌떡만 만들어서 가깝게 사는 이웃들에게 돌리고, 경기도 사람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러 광주에 들렸다가 밭에서 새로올라온 갓을 몇포기 뽑고 관리를 안해서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폐비닐을 주워서 포대에 담고, 지난주에 뜯었는데 그 새 포기를 이룬 상추도 뜯고. 잔뜩 올라서 퍼져있는 잡초를 뽑고. 집에서 불고기에 상추와 갓을 쌈으로 소주한잔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수필 2020.05.27

와호장룡

와호장룡은 "영웅과 전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라는 의미의 고대 중국 속담에서 그 제목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아름답고 장대한 중국 대륙을 배경으로 하는 시원한 화면, 춤을 추듯 펼쳐지는 경공과 현란한 액션 장면에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간다. 사실 중국 황산을 여행하기전에는 와호장룡이라는 영화에 그리 관심도 없었는데 그저 그런 무협영화중 하나 였거니 생각했는데, 바람에 일렁이는 사람이 올라가도 부러지지 않을 정도의 굵은 대나무숲과 비취빛으로 투영되는 그 폭포의 천연한 자연빛이 사람을 매료시키는 그 무엇인가가 남았다. 사실 주윤발과 장쯔이의 어우러지면서 겨루는 액션에 흠뻑 빠져든다. 장쯔이는 약에 중독된 체로 말한다. "필요로 하는 것이 나인가요 검인가요" 물에 젖은 옷을 입고 도드라진 젖가슴을..

수필 2020.05.19

내마음

천둥치고 비오는날. 창밖을 보다가 우연히 옛일이생각났어요. 그래서 상념에 젖어 AI스피커에 예전에 불렸던 노래들을 주문했는데, 헤어지던 그날밤에 안개속으로~돌아와 풀밭같은 너의 가슴에 ~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 댕기풀어 맹세한 님아~ 청포도 그늘아래로~ 그리고 여고시절이라든지 영아~라든지! 침잠하듯 가라앉던 감정은 비가 그치면서서서히 가라앉았지만, 다시또 비가 내리면 떨어지는 폭포처럼 내마음을 나도 모르게 흘러가 겠지요. 그게바로 나이들었다는 현실속의 내가 아인가 싶어요.

수필 2020.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