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낯익은 세상. 황석영 作. 2011.

no pain no gain 2025. 4. 14. 17:49

📚 낯익은 세상. 황석영 作. 2011.

세상은 이분법이다.  이승과 파란불로 번뜩이는 저 세상.

아버지와 엄마는 보육원 출신으로 먼저 떠쳐나가 도시를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구청 근로대에서 폐품 수집하는 작은 구역의 책임자가 되어 처녀가 된 엄마를 데리러 왔다.
절도사건과 연루돼 더러는 큰집에 다녀오기도 하고.
딱부리-유달리 툭 불거지고 큰 눈-이라는 별명을 가진 열네살 소년. 아버지는 삼청교육대 끌려가고 엄마는 아들을 데리고 난지도라는 특정의 쓰레기 섬으로 간다. 살려고. 변두리 좌판에서 소소한 물건들을 파는 것보다는 두세배쯤 더 나은 소득을 올릴수 있을 것이라는 아빠의 친구를 따라서. 눈도 부리부리하고 코도 도톰한 인상은 괜찮은데, 눈 아래에서부터 왼쪽 뺨을 거의 덮을 정도의 푸르고 큰 점이 있는 남자. 첫 인상에 '아수라 백작'이 떠올라 아수라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땜통' 머리에 한뼘쯤 되는 화상을 입은 열한살 아들을 데리고 산다. 폐품으로 뚝딱 달아내서 네평짜리 방을 만들어 한집에 살게된 네식구. 함께사는 남자와 엄마는 한 방에 산다.

아수라 반장은 새벽 다섯시부터 아침 아홉시까지, 정오부터 저녁무렵까지. 하루 열두시간을 쓰레기 속에서 쓸만한 물건을 추려내 팔아서 먹고사는 집단의 반장역할이다. 근로대 사람들은 구역별로 권리금을 내고 작업을 한다.

만물상 할아버지는 머리가 벗겨지고 수염이 흰 육십대의 키작은 노인. 스무살 무렵에 정신을 가끔씩 잃어버린 딸과 함께산다. 쓰레기장에서 폐품을 사다가 재생공장에 넘기기도 하고, 전자제품을 구청 구역에서 몰아다가 직접 분해해서 넘긴다.
" 나는 여울목 버드낭구 할미다.
무슨 할미가 이렇게 젊어?
원래부터 각시 인데 나이가 많으니 할미지.
그런데 왜 이 집에 놀러 왔어?
내가 이 여자 몸주가 됐거든. 걱정이 하도 많아 도와달라고 왔지."

한 달에 두 번 시청 헬리콥터가 날아와서 꽃섬 일대를 항공 소독하고 있다. 매일 두차례 복토 작업을 뒤에 경운기로 분무소독을 했다. 그렇게도 하지 요즘은 오두막 동네는 늘 파리 때 뒤덮여 작업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산동네에서는 동사무소에서 나온 일 톤 트럭이 연기를 풍기고 다녔지만 모기도 연기를 피해 달아날 뿐 잘 죽지는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헬리콥터로 물기 있는 구충약을 안개처럼 뿌려댔고, 파리가 우박처럼 떨어져 내렸다. 처음엔 소독을 해준다고 좋아라 하던 수집꾼들은 작업할 때 쓰던 방독면이나 마스크를 쓰고 쓰레기장을 벗어나 동네의 자기 오두막 안으로 피해 들어갔다.
헬리콥터는 허공에서 빙빙 돌면서 약을 뿌리고 지나간 뒤 라온 동네의 지붕과 길은 떨어져 죽은 파리들로 새카맣게 되었다.

김서방에로 대표되는 파란불로 이승을 떠난 혼령들. 본래 본토 주인이지만 모두 다 떠나고 그림자 없이 떠돈다. 귀신이라는 실체와 마주한다. 식구들이 아프고 메밀묵을 먹으면 나을거라는 말에 메밀가루를 사서 묵을 쑤고 막걸리와 함께 대접을 하자 병이 다 나았다고 한다. 그 보답으로 어느 땅을 가르쳐주고 그곳을 파자 현금과 달러뭉치와 패물이 나온다. 은혜의 보답이다.

어느날인가 아수라는 다른패에 가서 술과 도박을 하다가 칼로 배를 쑤셔 잡혀가게 되고, 살인미수로 구치소로 간다.

겨울이 지나면서 연탄재와 눈이 쌓인 매립장은 폭풍전야같은 위험지대가 된다.
"6시가 넘어서 동쪽의 구청구역에서 펑하는 폭발음이 들리며 불길이 솟구쳤다. 땅속에 층층이 쌓여 있던 오물들이 썩으면서 가스가 가득 차 있다가 날씨가 풀리고 얼음이 노자 곳곳에서 새어나오는 중이었다. 불길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고 오히려 옆으로 뒤로 다시 사방으로 펑펑 터지면서 번져갔다.
쉬익 하는 소리와 뭔가 펑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비닐 출입문이 훤해졌다. 딱부리와 땜통이 밖으로 나서니 바로 오두막 동네 한복판에서 불길이 올라오고 있었다. 쓰레기장에서 하늘로 솟구친 불덩이들이 포탄처럼 지붕 위로 날아와 떨어졌다. 오두막 동네 이곳저곳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엄마 불났다.
불은 사방으로 번지고 있었다. 벌써 오두막 동네 전체가 불길에 휩씨였다. 비닐과 천막 스티로폼 골판지 판자 등 속으로 지은 날림집이라 불길이 닿으면 휴지처럼 타올랐다가 사그라지면서 주저앉았다. 쓰레기장은 메탄가스와 층층으로 쌓인 인화물들이 서로 가세하면서 속속들이 다 들어가고 폭발하면서 구름 같은 가스를 피워 올렸고 불길이 협동 구역의 폐기물 드럼통에 옮겨 붙으며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드럼통 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수집꾼들이 타버린 오두막 동네에 남은 불씨와 화재 쓰레기를 치우는 과정에서 어른과 아이를 포함한 십여 구의 시신을 찾아냈다. 땜통은 담요를 머리에 두위에 둘러싼 채 쓰러져 있었는데, 검게 그을린 담요 자락 아래로 두 발만 내놓고 있었다. 연기 속에서 질식한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한 줌의 재로 돌아온 식구들을 제각기 형편에 따라서 강이나 꽃섬 주변 들판에 뿌렸다.

아버지와 아수라는 돌아오지 않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지금의 난지도는 두개의 산으로 되어 천지개벽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번에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타죽고 집이 불탔다. 혹자는 바람에 영향이라고 하지만, 엄격하게 먼저 불나서 사고가 났던 고성산불의 교훈을 살리지 못한 책임이 크다. 획일화 정책. 고깟 소나무가 목숨보다 중하다는 말인가?

비도오고 바람도 불고 하루종일 책을 보면서 노을공원 언저리를 달리던 때를 생각합니다.
이 땅 속에 지나간 희로애락의 역사를 쓰레기로 만든 살아있던 사람들은 더러는 죽어서 한줌 의 재로 남고 허공에 흩어지고, 그토록 선연하게 붉고 노란빛으로 피어오르던 꽃잎과 하늘거리던 억새의 몸놀림을......

2025.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