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구효서 作.1993.
작중의 주인공은 작가로 나온다.
글을 써야하는 고뇌. 한 해에 단편을 한 열 편 정도 쓴다고 하고,원고료는 8백만원 정도를 받는다. 대단한 성공이지만-1993년 기준으로- 두 아이를 가진 가장으로 아내는 살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도피하듯 찾아간 대청호가 보이는 언덕 마을. 어느 작은 암자. 홀로 있던 암자는 대청호가 만들어지자 수몰지구 사람들이 이주해서 20여호의 마을을 이룬다.
"내가 다다른 곳은 반야심경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칠십 노파가 주지로 있는 작은 암자였다. 대전시 판암동을 지나 세천 고개를 넘어 옥천 쪽으로 쌩쌩 달리다 보면 대청 호반이 눈 밑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그곳에서 호박잎에 팥밥을 싸 먹으며 하루에 귀신 두서넛을 저승으로 쫓아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자고 일어나 대청호 수면 위에 물안개를 굽어보다 아침을 먹었고, 입을 벌린 채 수면을 바라보다 점심을 먹었고, 늘 반사하는 수면을 바라보다 또 저녁을 먹고 잤다. 감나무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그곳에서 똑같은 메뉴 아침 점심 저녁을 먹었다. 피마자 이파리를 삶아 된장에 무친 것, 썬 오이를 삶아 된장에 무친 것, 된장에 무친 도라지, 된장국, 된장에 무친 시금치, 된장에 꽂아두었던 깻잎과 고추 등등을 먹었다. 몇 날이 지날 때까지 나는 그것들이 왜 한결같이 된장에 버무려져 있던 있었던 걸까 알지 못했다."
잔귀먹은 늙은 보살은 주지스님이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한 사람 총무주임은 서른두셋 먹은 청년. 청년은 뫄한머루라는 격투기 수련을 통해 도에 이른다는 독특한 종교를 갖고 있었는데, 밤마다 이상한 주문을 외우며 <동방불패>, <용문객잔> 주인공들처럼 공중을 휙휙 날았다. 대학에서 법학을 했고, 고시를 준비하러 암자에 들렀다가 아주 눌러앉아 버렸다고 했다.
방에 누웠거나 툇마루에 나앉아 있기만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결코 심심하지도 무료하지도 않았으므로 지루하지 않았다.
산꽃들이 피어있는 곳을 따라 처음으로 산길을 들어갔다. 마을의 뒷산에 상상외로 많은 꽃들이 피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다 그런 야산에는 으례 많은 야생화가 피어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러려니 생각만 하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많이 피어 있는 꽃들이 별 준비 없이 목격하는 것 사이엔 판이한 느낌의 차이가 있다. 나는 자주 꽃을 찾아 암자를 나섰다. 산을 헤집고 다녔다. 불목하니 사내가 가르쳐 준 산책길은 그중에서도 감탄을 자아낼 만한 코스였다. 하루는 그 꽃들을 꺾어 다 삭막한 방에 꽂아놓고 싶어졌다.
그래서 마을을 돌며 빈 깡통을 주워 수돗가에서 씻다가 아주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깡통은 모두 손가락으로 딴다는것. 깡통따개를 찾아 동네 순례를 한다. 없다. 결국은 대전까지 나가서 어렵게 구해왔으나, 70 여개의 깡통이 모두 따져있다. 불목하니의 녹슨 호미로 딴 작품이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에서 자신의 재주는 '탈출사'라고 한다. 손발을 묶고 상자에 갖혀서 물속에 빠트리면 2초 이내에 줄을 풀고 탈출하는 서커스에서 근 20년을 활동했다고 한다.
시연을 보이고 재빠른 탈출을 한다.
방에 가두고 잠궜는데도 어떻게 탈출했는지 없다.
불목하니는 주지의 꾸지람과 함께 매를 맞고 있었다. 탈출을 꿈꾸는 그는 결국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맴도는 신세였던것.
소설을 시작도 못한채 암자를 떠난다. 불목하니의 아쉬운 이별이 있었다. 40분 가량을 그와 더 서성이 끝에 나는 버스에 올랐다. 차가 움직이자 마자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던 그가 몇 걸음 뛰어오며 절박하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요! 잘 가요!라고 절규 하다시피 그는 외쳤다. 혈육에 가슴 저리는 이별 장면을 흘러간 영화에선 종종 그렇게 처리한다. 기이한 이별이군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버스는 쉬지 않고 달렸다. 나무를 스치고 개울을 건넜다. 많은 산을 넘고 들판을 지났다. 농촌 아낙과 중절모를 쓴 노인들이 바깥 풍경에 넋을 놓은 채 앉아 있었다. 버스 통로에는 들깨 단 묶음과 어느 농기계의 내연기관인 지가 뒹굴었다. 주유소도 지나고 몇몇 개의 초소도 지났다. 한 시간은 충분히 넘게 내달렸을 것이다.
버스에 내려 담배연기를 흩날리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가 어딘지를 모르겠다.
인생에서 막막할때.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때. 가끔은 탈출을 꿈꾸면서 산다.
결국 '탈출사'라는 불목하니는 탈출하지 못한다.
어쩌면 모든 인간은 시지프스의 굴레속에서 사슬에 놓여나기를 꿈꾸면서 살아가는지도, 또한 자신이 시지프스 자체 인지도 혹은 밤마다 꿈으로 낮에 독수리가 파먹은 간이 완벽하게 재생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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