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239

가을여자.

가을여자 속 오정희 作 급성 간염 진단을 받은 남편이 입원한 지 스무날만에 거짓말 같이 세상을 뜨자 서른두 살 그녀는 졸지 어린 두 아이들을 거늘인 미망인이 되었다. 비탄과 슬픔과 원망으로 첫 해를 보내고 두 해째 접어들자 살아야 한다는 진리가 무서운 현실로 다가왔다. 그녀는 일을 시작했다. 갖가지 레이스 뜨게 장식품을 만들어 수예점에 납품하는 일이었다. 남달리 눈썰매와 손재주가 있어 뜨개질과 수놓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친구나 친척들의 경사에 자신의 작품을 선물하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이제 그것이 생업이 되어야 하는 현실에 가끔은 서글퍼지곤 했으나 그럴 때마다 자신의 쓸모없고 소모적인 감상을 비웃듯 더욱 맹렬히 일에 매달렸다.아파트에 빈터에서 굴렁쇠를 굴리는 청년과 그를 뒤따라가며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

독후감 2025.02.10

깨달음의 순간.

떨어지는 낙엽에 깨달음을....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산길을 올라 월정사에서 쉬고자 처마아래 마루에서 쉼을하고 물한잔 마시면서 부처님의 진사사리를 모셨기에 불상이 없다는 안내문에 잠깐 하늘을 보고.마루청에서 아래에 쌓아둔 화목을 보니, 이건 산에서 죽은 나무를 잘라온 것이 아니라 예전의 목재로 지어진 대들보나 세가레등을 패서 모아둔 것이어서 정성을 다해 그렸던 화공의 솜씨가 그대로 남아있는 잔여물이었던 것.길옆에 얼음 속에서도 굵은 물줄기가 주야로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소임을 다한 절간의 폐목은 저렇게 온 몸을 태워 재로 남고 연기로 환생을 하는구나!여기서 드는 생각. 예전에 수백년 전에 유명한 서화가가 남겼다는 현판이나 주련의 글씨들도 저렇듯 시간 속에 공수레공수거로 연기로 변하고 말았던 듯 하여 잠..

수필 2025.02.01

풍류.

풍류. 풍류라는 것은 제가 가꾼 뒤꼍 대체 채마밭에서 아침이슬을 함뿍 받고 열린 외를 따서 안주로 하여 소주 한 잔을 든다든가, 풀어놓은 소를 타고 돌아오며 퉁소라도 한 가락 분다든가, 사이참을 들다가 논두렁에서 농주에 흥이 나서 꽹매기라도 한 가락 돌린다든가, 글 읽던 밤에 달이 떠 있는 우물물을 깨뜨리고 정갈하게 시원한 냉수를 뜨며 마당가에서 잠시 바람을 쏘인 다든가, 이를테면 물이 맑아 갓끈을 빨고, 물이 흐리면 발을 담그는 그런 것이다.황석영의 장길산을 읽는 중에 가장 뛰어난 문장을 찾아 즐긴다든가. 풍류란 그런 것이다.

독후감 2025.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