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빛. 정지아 作. 2008.
여덟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장이되어 굳건하게 살아온 삶. 일제시대에 사범대학을 나와 교감까지한 자기관리의 끝. 선생을 하면서도 이십마지기 농사를 그 누구보다도 더 딱 부러지게 밤일을 마다않고 최선을 다했다.
무학의 어머니는 순종을 미덕으로 살아온 삶.
팔십에 들어선 치매검사. 결과를 앞두고 불러온 아들. 아버지의 욕심에 판검사를 목표로 대학입시 4수를 하다가 접는다.
의사가 걸어놓은 사진에는 뇌세포가 상당히 많이 죽은 거뭇거뭇한 상태. 다만 당사자인 아버지는 인정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단둘이 할아버지 산소에 간 적이 있었다. 웬일로 고등학생인 그에게 퇴주잔을 건넨 아버지는 봉분이 형편없이 낮아진대다 아까시 두어 그루가 한 뼘씩 싹을 틔운 그런 무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덟살에 아부지가 돌아가셨는디 눈앞이 캄캄 허드라. 막내를 낳은 후로 워디가 잘못되었는가 밥도 잘 못해먹는 어무이 하고, 인차막 걸음을 땐 갓난쟁이까지 동생이 셋, 시집안간 누이꺼정, 누가 갈쳐 준 것도 아닌데 이 사람들이다 내 혹이구나. 내가 인차 아부지 대신 이구나 싶은 게 참말로 눈앞이 캄캄했어야. 나한테 그 짐 다 져놓고 덜컥 가분 아부지가 미워 죽겄드라. 이 나이가 되도록 생각을 하면 아부지가 미워야. 근디 이상하지야. 눈앞이 캄캄헝게야. 무선 것이 없드라. 죽기배끼 더허겠냐, 나는 여덟살 때부터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 근디 지금 생각해 본께 아버지가 나를 이 만 치나 살게 만들었어야.
그때는 그런 아버지가 그로서는 죽어도 올라갈 수 없는 아득한 산으로 보였다. 아버지는 지금도 눈앞에 캄캄 할까? 여덟살의 어둠 속에서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끌어 냈던 아버지가 죽음을 앞둔 지금은 무엇을 끌어낼 것인지 그는 알고 싶었다.
술담배는 절대 안된다는 의사의 당부.
밖으로 나오자 마자 담배부터 태운 아버지와의 어머니의 다툼.
차에 타고도 두사람의 계속된 설전. 잠잠해서 뒤돌아본 상태에 두분은 머리를 맞댄채 잠들어 있다.
그들이 그의 생명을 키워냈듯이 이제는 그가 그들을 품어 그들이 세월에 비친 생명을 온전히 죽음 놓고 죽음으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줘야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냉정한 생명의 법칙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근디 이상하지야. 눈앞이 캄캄한 게야, 무선 것이 없드라. 여덟살의 아버지가 그랬듯 이상하게 그 역시 무섭지 않았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흐드러지게 피었던 개나리며 진달래가 짙어가는 봄빛 속에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었다. 그 꽃이 지면 산에는 봄이 농익어 사철 중 가장 찬란하게 타오를 것이었다.
생로병사의 자연순환의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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