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추억으로 가는 여행

no pain no gain 2007. 5. 28. 15:19

추억으로 가는 여행.

 

 

오래 전에 아주 오래 전에 맘 먹었던 게 하나 있었는데,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고모님 숙부님 모시고 여행 한번 하는 거 였습니다.

 

세상 일이란 게 뭐 다 그렇고 그런 것이 지만, 내가 시간이 날 땐 어르신들께서 바쁜 일이 생기고 실컷 약속해 놓고 나면 또 피치 못할 일들이 생기고해서 차일피일 미루던 게 몇 해가 흘러버렸습니다.

 

 

이젠 더 이상 미루다가는 내 자신도 믿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 같은 예감 때문에 이왕 마음 먹은 것 한번 옮겨보자고 해서 사촌 형제들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가까운 근교 일원으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 옛날 그 총명하던 총기를 다 까먹고 몇 번씩이나 약속한 장소를 틀려서 모실 수 있었던 고모님께서는 세월을 탓 하십니다.

 

지난 여름 감자기 가슴이 아파서 쓰러져 119 구급 대 신세를 지고 다행히 시기를 놓치지 않고 수술까지 잘 돼서 관상동맥과 협심증으로 고생하신 숙모님의 얼굴엔 회복기의 후유증이 남아있었지만, 환한 미소에 그득하신 주름살은 연륜의 고개를 넘어선 노인네의 훈장처럼 남아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현역에서 일하실 정도의 건강을 유지하신 숙부님은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치아를 드러내놓고 천진난만하게 웃음짓던 그 모습은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들길에서도 푹 덮인 베레모에 그 크신 눈망울이 대조가 되어 늙어도 예전의 멋스러움은 여전하셨습니다.

 

 

강화 일원을 나들이 목표로 삼고 사촌 형들과 그 곳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선 터라 김포 들녘을 거쳐가면서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판을 바라보며 어른들의 어린 시절 시골 생활에 대한 대화가 이어져 흘러간 흑백사진을 영상으로 다시 보는 듯한 소회가 가슴에 메아리 쳤습니다.

 

식사 때가 되면 논에서 벼를 베서 타작을 하고 그걸 절구에 찧어서 현미로 즉석 밥을 지어 먹었다는 이야기며, 하늘거리는 조와 수수를 보면서 쌀이 부족해서 잡곡을 많이 넣어서 식사를 했다는 등.

고구마와 무를 수확한 추억 속의 이야기들이 거미줄처럼 줄줄이 어어 져 참 많은 것을 간접 경험으로 들려주는 마치 어릴 적의 자장가를 듣는 듯한 옛 동화처럼 들렸습니다.

 

 

전등 사를 들리는 길에 숙모님께서 힘이 들어 더는 못 걷는 다는 이야기에 함께 평상에 앉아서 군밤을 사서 나눠먹고, 숲 길로 이어진 입구에서는 시원하게 부는 바람에 참 좋다 룰 연발하신 모습이 천진하게만 보여지더군요.

 

사촌 형을 만난 자리에선 이제는 늙어버린 형수의 모습과 오랜만에 부부간의 데이트 기회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우린 늘씬하게 커다란 나무를 깎아서 만든 학이 서 있는 전통 차 집과 마당을 지나 약수터에서 한 잔에 10년씩 젊어지시니 적당히 드시라는 너스레에 모두들 깔깔대며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으며 대응보전의 네 귀퉁이에 목각으로 깎아서 만든 나신의 여인상이 400여 년의 세월 동안 죄 닦음을 받는 중이라는 설명에 살아 생전에 잘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와 500 ~ 600년 된 은행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들이 열지어선 길을 내려가면서 잎과 꽃이 서로를 그리워 한다는 몇 송이 되지는 않지만 상사화의 전설도 곁들였지요.

 

 조개구이를 드시고 싶다는 말씀에 조개와 대하구이 그리고 제철을 만난 전어 회를 먹고 칼국수로 식사를 마치고 유일한 동막 해수욕장 해송 숲에서 잠깐 휴식과 산책을 한 후 사촌 동생이 운영하는 팬션에 들러 후식을 들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지요.

 

 

나오는 길에 숙부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여기 강화 어디엔가에 내가 근무하던 부대가 있는데, 그 곳이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북한이 바로 보이는 접경지역이라고 하시는 것을 듣고 그 곳은 민간인 통제지역이라 갈 수 없는 곳이라 말씀 드렸지요.

 

625사변이 나고 남한이 점령지 였을 때 인민군에 끌려가 낙동강으로 향 하던 중 군복 한 번 입어보지 못하고 총 한번 만져 보지 못한 상태에서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이 돼서 걸어서 걸어서 신의주까지 갔는데, 몸이 아파 낙오한 4명만 남고 부대 전원이 사망한 터라 다시 걸어서 남하하던 중 원통에서 미군에 체포되어 조사 받고 거제포로수용소에 수감. 삶과 죽음의 고비를 넘겨 반공포로로 석방되어 해병대 30기로 입대 근무 중에 미군기지를 인수 받았던 곳이 강화 부대라 하십니다.

 

더불어서 열혈청년이셨던 그 시절의 젊은 날의 로맨스와 꿈꾸던 시절의 많은 에피소드에 얽힌 사연까지 덤으로 들을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지요. 마치 한 편의 흑백영화처럼 들렸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땐 갑자기 눈에서 광채가 나고 목에 힘이 들어가면서 열띤 목소리로 손을 휘휘 내저어 가면서 신 바람이 나셨습니다.

 

이젠 추억도 잠재우고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연배.

 

파란하늘과 군데군데 연지곤지 찍은 새색시 모습 같은 산허리 단풍을 보면서 드넓은 강화 들녘을 둘러서 노을 지는 해안을 뒤로하고 가슴이 흐뭇한 유쾌한 나들이 였슴니다.

 

이번에는 장모님을 모시고 가는 날을 잡으려고 목하 고민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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