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장인어른 추억하기

no pain no gain 2008. 1. 9. 14:29

 

장인어른 추억하기

 

희 뿌연 안개와 미세 먼지로 뒤덮여 온통 혼돈의 고속도로가 대낮에도 전조등을 켜야만 안전이 확보되는 그런 날들이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인어른.

마누라가 예쁘다면 하는 조건이 걸려있지만, 처갓집 말뚝보고 절을 한다는 말이있을 정도로 가깝고도 어려운 관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가장 건강하실 때가 언제 였을까?

아마도 농사를 지으면서 소를 몰고 쟁기질을 하거나, 소에게 줄 여물을 써느라고 한 참 단꿈에 젖어있던 신 새벽에 마당에서 들리던 썩둑 거리던 작두 소리가 어렴 풋이 들리던 나의 그 젊었던 날들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다시 생각 해 보면 언제나 저렇듯 건강하실 것으로만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절.

그 땐 왜 효도를 다 하지 못했나 하는 미련이 가득합니다.

 

어느 가을 날.

추석맞이 동네 길 단장을 하신다고 동네 어르신 여럿이서 길가에 잡초제거 작업을 하시다가 예초기의 칼날에 대못이 날아와서 아닌 밤 중에 홍두께라고 허벅지에 꼿히신 다음, 병원으로 급히 후송을 하고 너무 깊게 박혀서 수술을 하고 연락을 받고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중환자가 되어버린 어처구니 없는 일로 인해 그 계기로 서서히 노인네의 건강을 잃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게 수척해 지는 게 저물어가는 햇살과도 같은 현상을 곁에서 지켜 보면서, 그 생각 만으로도 숫하게 울던  아내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 때 쯤해서 이미 예전과 같은 건강의 강을 다시는 건너 올 수 없다는 결론으로 치딛고 있었습니다.

 

저물어가는 12월의 어느 날.

어릴적 좋은 추억 만들기의 일환으로 젊은이 들이 좋아 한다는 락음악 공연 티켓을 들고 온 가족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두어시간 보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 늦은 감상과 이런저런이야기를 하고나서 잠이 설핏 들었는데, 한 밤중에 터져 나오는 아내의 울음 소리.

아! 직감적으로 이 한 밤 중에 별이 쓰러졌구나 하는 생각에 아내의 등만 토닥이면서 밤을 밝히고 한 없이 내리던 눈 길을 헤치고  장례치르러 달려 갔던 그날이 어언 십여년이 흘렀습니다.

 

좋아하시던 음악도, 좋아 하는 음식도 즐겨 다니는 여행도 없이 일생을 말 그대로 일만 하면서 보낸 그런 촌부의 통상적인 관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당신의 일생이 아쉽기만 한. 오로지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즐겨 피우던 담배와 많이 드시지도 못하던 소주 몇 잔의 여흥이 모두였던 장인어른.

 

어제는 그런 장인어른의 제삿날이었습니다.

처남들과 옛일을 회상하면서 정성스레 준비한 제삿 상을 얼마나 즐겨 드시고나 가셨는지, 지금도 천국의 일과가 소주 몇 잔에 담배 몇 대가 하루 일과의 전부인 지가 무척 궁금합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

드문드문 달리던 고속도로에서 아내와 나누던 대화 중.

모두들 장인어른 제사지내고 오시나봐 갈길이 바쁜 걸 보니?

 

여러 분들은 장인어른과의 어떤 추억을 갖고 계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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