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김치에 대한 이야기한 합니다.
난 사실 객지 생활을 오래 해서 그렇지 본향은 전라도 남원입니다. 어렸을 적에 우리집은 음식점과 여관을 겸해서 했기 때문에 김장을 하기 전에서 부 터 준비하는 게 무척 많았습니다.
봄철부터 작은 조기새끼를 황새기라고 하는걸 생선궤짝으로 수십 개 씩 사서 어머니께선 그걸 손질하고 잘 다려서 젓갈을 만들고는 그걸로 김치를 담거나 김장을 할 때 넣어서 사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추도 내가 알기에는 산처럼(?) 쌓아 놓고는 씨를 빼거나 꼭지를 따거나 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마당 가득히 쌓인 그 많은 고추를 어떻게 다 손질을 하실까 하지만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두 손질이 되어 포대로 차곡차곡 쌓아 두고는 했었지요.
문제는 배추를 절일 때 이지요. 트럭으로 몇 대 분의 배추가 내려지면 동네 어르신 분들도 다 모셔오셔서 모두 함께 일했지요. 지금처럼 수돗물이 나오던 시절이 아니니까 작두로 된 펌프로 물을 푸는 일은 내 몫이었는데, 커다란 통들을 갖다 두고는 얼마만큼을 퍼내야 가득가득 채워지는지?
뉘엇뉘엇 해거름이 질 때 즘이면 그 길고 긴 김장이 끝나곤 했는데,
내가 학교 가는 날에 김장을 할 때 즘이면 학교를 파하고 올 때 즘에 김치를 절인 것에 들깨를 볶아서 고명으로 버무려주면 그게 어찌 그리 맛이 있던지요.
허연 눈발이 산란하게 휘날리던 날 학교에서 돌아와 찬밥에 허연 김치를 밥에 올려서 먹을 때의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허나 지금은 모두 다 추억으로 남아버렸고 김장을 하러 처갓집엘 가면 모든 게 경기도 식입니다. 운동을 하면서 맵고 짠것에 대해서 일부러 잘 안 먹다 보니 어릴 적에 먹던 백 김치가 생각나기도 해서 주문을 하니 그런 것을 만들어 주기는 합니다 만은 세월도 흐르고 입맛도 변하고 해서 옛날 그 감칠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표현을 못합니다.
왜냐고요? 혹여 그러면 먹지 말라고 해서 다음부터 안 해주지가 두려운 까닭이지요.
올해도 어김없이 처갓집에 가서 김장을 해서 가져왔습니다. 처남 집에 보낼 것 하며 처제 댁 것 까지 해서 내무부장관께서는 김장 할때는 용감하더니만 그 댓가를 일주일 정도 몸살로 어께가 아프니 허리가 아프니 해 가면서 여기 주물러라 저기 주물러라 좀 약하게 해라 살살해라 하면서 세월 한탄을 했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큰집에서 형님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김장하는 김에 한 통을 더 해서 택배로 부쳤으니 받으면 잘 먹겠다고 형수에게 전화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받아서 먹어본 김치. 아하 ! 바로 이 맛이야 ! 젓갈이 잔뜩 들어간 그 빠 ~ 알간 김치. 세월이 흘러도 경기도식에 길들여지지 않는 난 역시 전라도 사람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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