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나도밤나무의 전설.
여름 휴가를 마치고 근무를 하려하는데, 날씨가 너무 덥다. 그래서 어떤이는 휴가 원천 무효를 주장하기도 한다. 왜냐고? 이렇게 더운 날씨에 무슨 업무 효율이 나겠냐는 항변이다. 열심히 달려간 정동진. 그리고 그 아래 옥계 해수욕장에서 뜨거웠던 여름날을 보내고 태풍의 후폭풍으로 파도가 거세게 일어 아무도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 그냥 달밤에 철석이는 파도소리를 벗삼아 술을 마시거나 혹은 모래 백사장을 산책하는 낭만을 찾는...... 그래서 베이스 캠프를 두고는 여기저기 둘러보는 여행을 곁들였다. 그 중 하나가 나도 밤나무 전설에 얽힌 판관대이다. 시간이 나는데로 내가 다녔던 곳을 소개 함으로서 함께 여행하는 기분을 만들어 볼까 한다. 먼저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를 찾아가 는 길이다. 판관대(判官臺)'는 조선조(朝鮮朝) 당시(當時) 율곡(栗谷) 선생의 부친인 이원수(李元秀) 공의 관직(官職)이 수운판관(水運判官)이었던 데서 말미암는 것으로 강릉 오죽헌에서 서기 1536년 음력 12월 26일 탄생하신 율곡(율곡) 선생의 잉태지(孕胎地)로 전하는 곳이다 이율곡 선생 탄생의 전설 이율곡 선생의 부친 이원수 공이 지금의 인천지방 수운판관을 지낼때 말미를 얻어 이곳의 본가에 오던 중 대화면 반정(상한내리)에 이르렀다. 그때 날이 저물고 피로하여 길가의 여인숙에서 유숙하려고 여장을 풀었다. 그날 밤에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어 홀로 여인숙을 경영하던 주모가 꿈을 꾸었는데, 용 한 마리가 가슴에 가득히 안겨오는 것이었다. 꿈을 깬 주모는 놀랍고 이상하여 일어나 곰곰히 생각에 잠기었다. 이는 비범한 인물을 잉태할 꿈이며, 하늘이 자신에게 은총을 내리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자신을 돌이켜보니 과부의 몸이라 잉태할 수 없는 처지가 아닌가, 주모는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지붕 밑에 유숙하는 판관을 생각하고는 수치심을 무릅쓰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손님 저를 물리치지 마시고 가여히 여겨 받아주십시요." 하고 호소하였다. 그러자 판관은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 내 그대를 행실이 바른 여인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야 되겠는가." 하고 물리쳤다. 주모는 "손님께서는 아무 말씀 마시고 오늘 하룻밤만 정을 맺게 하여 주십시요." 하고 재차 애걸하였다. 그러나 판관이 끝내 거절하는 바람에 주모의 소원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주모는 부끄럽고 서운한 마음으로 조반상을 지어 손님에게 드리면서 쳐다보니 얼굴에 상서로운 서기가 감돌았다. 주모는 자기의 운수가 아님을 한탄하였다. 한편 사임당 신씨는 친정인 강릉의 오죽헌에 머물고 있었는데, 간 밤에 용이 가슴에 가득히 안겨오는 꿈을 꾸고 짐을 챙겨 급히 이곳의 본가로 향하였다. 집에 도착하여 보니 남편 원수 공이 와 있었다. 그날 밤 부부는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그로부터 신씨는 율곡을 잉태하였다. 본가에서 며칠을 머물던 판관은 임지로 돌아가다가 또다시 전번의 주막집에 들게 되었다. 그때 판관은 사나이 대장부로서 아녀자의 애절한 하소연을 거절한 것이 마음에 걸리어 주모에게 전번의 일을 사과하고 정을 맺기를 청했다. 그랬더니 주모가 이르기를 "어르신네의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저번에 쇤네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하룻밤을 모시고자 한 것은 비범한 자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나 지금 어르신네의 얼굴에는 전날의 서기가 스러졌으니 뜻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번 길에 댁에서는 비범한 아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만 안 된 것은 몇 해 안가 아이에게 호환이 있을까 두럽습니다." 하였다. 판관이 당황하다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호환을 면할 방법을 물었다. 주모는 판관에게 "집으로 돌아가 뒷동산에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으면 면할 수 있다."고 하였다. 판관은 급히 돌아가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어놓고 임지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몇년 후, 집에 돌아온 판관에게 한 스님이 찾아왔다. 그리고 아들을 시주하든지 밤나무 천 그루를 시주하라고 하였다. 판관은 짚히는 것이 있어 밤나무를 심어놓은 동산으로 스님을 안내하였다. 스님과 판관은 밤나무를 세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세어도 한 그루가 모자랐다. 판관이 어쩔줄 몰라 하는데, 그 옆에 있던 참나무과의 낙엽 활엽교목이 불쑥 "나도 밤나무요"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스님이 거대한 호랑이로 둔갑하더니 혼비백산하여 도망하였다. 그후로 그 나무를 '나도밤나무' 로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나무 심는 공덕이 커서 생명도 구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사실 나도 밤나무를 보면 참나무처럼 생겨서 밤나무하고는 전연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데 왜 이런 전설이 생겨 났는지...... 어찌보면 괜스레 유명세를 떨치려고 율곡을 갖다 붙인 것 같은 냄새가 난다. 한 식당에 앉아 떨어지는 비를 피해서 산채보리밥에 감자전을 먹으면서 바라보는 산허리를 감싸고 도는 비 구름에 운치 더욱 깊더라. 이곳에서는 그 유명하다는 메밀국수와 메밀묵을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짓말 하는 여인을 보고 (0) | 2007.06.16 |
---|---|
무릉계곡을 찾아서 (0) | 2007.06.16 |
봉평 메밀꽃을 찾아서...... (0) | 2007.06.16 |
삼척 환선굴을 찾아서 (0) | 2007.06.16 |
요즘 만발하는 능소화~~~ 전설을.....내가 아는 양소군 이야기 (0) | 2007.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