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무릉계곡을 찾아서

no pain no gain 2007. 6. 16. 19:14
무릉계곡을 찾아서
세상을 살면서 간혹 백이, 숙제나 천도복숭아 혹은 무릉도원 같은 이야기가 천상의 전설이겠지만, 간혹 지리산의 피아골 이나 뱀사골 같은 깊은 계곡 심신산천에 명경 같은 계곡 물에 떨어져 흘러내리는 한 떨기 단풍잎에서 느끼는 감성이란 몇 권의 책에서도 이루어 내지 못한 깊이의 감성이 흘러감이 있다.

새벽.
어스름에 동터 오르는 여명을 보니 바닷가 파도소리가 어제와 같다. 즉 오늘도 물엔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여서 그리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시원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가슴으로 흠뻑 비릿한 여름 내음을 느끼면서 맨발로 걷는 산책이란………..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는 무었인가를 그 누군가에게 호소하듯 온몸으로 부대끼며 포말로 부서지며 새로운 모래 화선지를 쓸고 쓸면서 아무도 그려주지 않는 백사장의 화폭만을 다듬고, 누구를 위해서 무었을 그려야 하는지는 이번 휴가가 끝나고 나면 새로운 숙제로 남으리라…………

그리하여 찾아간 곳이 무릉계곡.

신선이 노닐었다는 무릉계곡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리우는 무릉계곡은 두타산(해발 1353미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계곡으로 무릉반석, 학소대, 관음 폭포, 용추폭포, 쌍폭포, 장군바위 등 수많은 기암괴석과 절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마치 현존하는 선경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명 "무릉도원"이라 하며, 예로부터 시인,선비, 고승 들이 찾아 흠미하던 경승지이다. 고려 충렬왕때 이승휴가 이름을 지었다는 설과, 조선 선조때 삼척부사 김효원이 작명하였다는 두가지 전설이 있어 언젠가는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라서 길게 늘어선 차들이 주차하기를 몇 시간 드디어 주차를 하고 나니 촐촐해진 배. 간단한 행동식으로 대신하고.

일명 무릉도원이라도 불리우는 이곳은 고려시대에 동안거사 이승휴가 천은사의 전신 인 용안당에 머물며 <제왕운기>를 저술하였고, 조선 선조 때에 삼척부사로 재직하고 있던 김효원이 제명하였다고 한다.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절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선경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무릉계는 수많은 관광객을 도취시키며, 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깊은 명승지로,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전기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해서 수많은 시인묵객의 시가 1,500여 평의 무릉반석 위에 새겨져 있다.

무릉반석
옛 풍월객들은 수도 없이 이곳을 찾았다.
이름을 천추에 남기려는 선비들은 반석에 이름을 새겼다.
무릉반석에 새겨진 기념명자의 석각은 선조들의 풍류를 보는 듯 한데 특히 1571년, 조선 선조 4대 명필중의 한 분 양봉래 (양사언)가 남긴 "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 초서 12자 (의미: 여기는 신선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라. 물과 돌이 부둥켜서 잉태한 오묘한 대자연에서 잠시 세속의 탐욕을 버리니, 수행의 길 열리네.)

삼화사
무릉계곡 입구에 위치하고있는 유서 깊은 삼화사. 신라 선덕여왕 11년 (642) 에 자장율사가 절을 건립하고 흑연대라 하였고, 그 후 범일국사가 재건하여 삼공암이라 하였다.
임진왜란때 불타버리고 약사전만 남았었는데 현종 1년 (1660)에 중건되었고 , 순조 23년(1823)과 고종43년(1906), 두 차례의 재난에 의해 소진됐던 것을 재건축한, 생생한 역사의 기록장이기도 하다.

삼화사 삼층석탑
한편, 보물 1277호로 지정된 삼화사 3층석탑은 신라 선덕여왕 13년(644)에 건립되어졌다고 전해지나 조성수법으로 볼 때 9세기 후반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지정일 1998.04.06 , 문화재명: 동해삼화사삼층석탑 (동해삼화사삼층석탑)}

삼화사 고목
길을 올라가다가 앉은 자리에 정자자리 짓고 싶다든가? 삼화사 앞에는 큰 느티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1000년이 넘은 이 느티나무는 무릉계곡에서 제일가는 古木이다.

관음사
관음사는 신라시대에 이룩한 절로 본래 "관음사" 였으며, 신라 의상국사가 수도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수도장으로 영고성쇠를 거듭하여 오다가 조선 정조에 이르러 부사 윤숙이 중수(1780년)하고 "지조암(指祖庵)" 이라 하였다가, 그 후 주지 해룡이 다시 중수하고 관음암이라 하게 되었다. 옛 사람들은 "절벽을 사다리로 한 사람밖에 오를 수 없다" 햇거늘 60도 경사를 암벽을 타고 1키로미터 정도 올라가면 청옥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산중고도의 성역이다.
이 곳에서 보면 맞은편에 두타산성이 바라다 보이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계곡의 풍경은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며, 절터는 아늑한 보금자리를 연상케 한다.

금란정
이조말 격동기를 당하여 국내사정은 어지럽고 외세들의 내정간섭은 날로 격심하게 됨에 따라 이조 500년의 왕정은 붕괴 직전에 있었다. 삼척지방의 유림들은 나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동지들을 규합하여 1903년 "금란계(金蘭契)"라는 모임을 만들어 울분을 달래며, 정각을 세우려 하였으나 일본 관헌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1945년 해방이 된 2년후 1947년, 계원들의 성금을 모아 이원동 단봉에 정자를 건립하고 그 이름을 금란정(金蘭亭)이라 하였다. 그 후 1956년 이곳 무릉계곡으로 이전한 것이다. 계 창립 당시 계원수는 초대 계수 홍재문(洪在文) 이하 38명이었고, 그 명단이 금란정에 걸려있으며, 무릉반석에도 계원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매년 춘추, 계원들이 모여 시회동을 개최하고 있다.

학소대
삼화사에서 계곡을 따라 500여 m를 오르다 보면 왼쪽은 벼랑이고, 오른쪽은 천야만야한 거대한 암벽이 골짜기를 병풍처럼 펼쳐 보이고 있는 모습에서 누구나 잠시 발이 멈칫해진다. 학소대를 만났기 때문이다. 암벽의 벼랑에는 4단 폭포가 그림처럼 걸려 있고 송림이 그 주변을 감싸듯 우거져 있어서 그대로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옛날에 한 수도사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려고 종이로 학을 만들어 이 골짜기에서 날렸다. 그랬더니 그 종이학에 생명력이 생겨서 높이 떠가더니 청옥산 기슭에까지 날아갔다는 전설과 이곳에 학이 집을 짓고 즐겨 놀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 때문에 이 골짜기를 학소대라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호암소
무릉계곡 하류의 도로변 낭떠러지에 절벽바위가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소(沼)가있다. 이것이 호암소이다. 전설에 의하면 삼화사에 도술에 능하고 지혜와 용기가 뛰어난 고승이 있었는데 하루는 깊은 밤중에 이곳을 지나다가 돌연히 큰 호랑이가 길을 막고 고승을 해치려하자 고승이 법력으로 폭 10m나 되는 북쪽 절벽바위 위에서 남쪽 절벽바위로 뛰어넘자 그 호랑이도 뒤따라 뛰어넘다가 힘이 부쳐 건너지 못하고 절벽바위 밑 소에 떨어져 익사하였다고 한다. 그 후 삼척부사 김효원이 "호암소"라고 이름을 지어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로 현재 남쪽 암벽에 호암이라고 조각되어 있다.

용추폭포
이 폭포는 청옥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옥수로서, 상중하 삼연 (三淵) 으로 되어 있다.
상담과 중담은 독항아리 모양의 신비한 모양으로 되어 있고, 하담은 흑추비폭 (黑湫飛瀑) 으로 주위 30 미터 이고 그 깊이는 알지 못한다.
중연에서 절벽으로 떨어져 흰 명주천에 구슬이 달린 것 같은 신비한 모습이 절경이다.
하늘에서 비롯되는 듯 높은 수원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용추폭포를 이루면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나서 두 갈래로 갈라져 쌍폭포에서 다시 만남은 마치 자연의 섭리를 보는 듯 하다.
이 물은 다시 하류쪽 선녀탕으로 흐르고 이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선녀와 같이 아름다운 미모와 마음을 갖게 되기를 기원하도록 한다.

피마름골 계곡,폭포
옛 조상들이 정선 임계장터에 소금을 팔기 위해 험난한 이 계곡 코스를 지나 잠시 목을 축인후 쉬어갔다 하여 붙여진 계곡으로 명경지수 같은 계곡물과 폭포수 그리고 계곡사이의 기암괴석과 수목이 함께 어우러진 빼어난 절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며 관음암을 지나 문간재 방향으로 내려오는 옛길이 나있으며 소요시간은 약1시간 40분 거리임.

쌍폭포
쌍폭과 용추폭포에 오면 아름다움은 절정에 오른다. 쌍폭은 각 20m의 거대한 물줄기가 좌우에서 굉음을 내뿜으며, 시원 스럽게 쏟아져 내려 장관을 이룬다.
용추폭포는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폭포이다.
3단폭포와 담(潭)이 연이어 있으며, 매끈한 암벽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자태가 매우 신비스럽다.
항아리 모양을 한 못인 상담과 중담을 거친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하담으로 미끄러져 내리며, 세속에 찌든 때를 모두 씻어주는 듯하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숱한 갈등이 생긴걸 어쩔 수 없다. 이쯤에서 쉴까 아니야 좀더 가지….. 이렇게 더운데 더 가봤자지 뭘 더 보겠다고 힘들여 올라간단 말인가 어짜피 조금 있으면 다시 내려올 걸!
그리하며 자리잡은 곳이 명당이라.

부처바위
관음암 뒷편 관음폭포 정상에 위치해 있는 바위로서 옛 스님들의 수도 장소이기도 한 유서 깊은 곳으로 부정을 탄 사람이 왔을 경우 맑은물이 붉은 빛깔로 변한다는 유래가 서려있는 바위로서 주면 경관이 빼어나고 부처형상을 하고 암자를 바라보고 있다 하여 부처 바위라 칭한다

베틀바위
옛날 옛적에 마귀할멈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고 뒷편으로는 쉰음산과 두타산이 위치해 있으며 무릉계곡입구(관리사무소 앞) 맞은편 산으로 옛길이 나있고 경치가 빼어남.

두꺼비바위
관음암으로 가는 중턱에 위치한 바위로서 앞에는 낙낙장송 같은 500여년 묵은 소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가는 이의 발목을 잡기도 하며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들 중에는 무병장수와 행운을 빌기도 하는 곳이다.

신선바위
무릉계곡과 두타산, 청옥산이 바라다 보이는 정상 벼랑 끝에 위치한 바위로서 옛날 옛적 신선들이 내려와 참선을 하면서 온 산하를 지배하였단 전설이 있어 신선바위라고 불리워지며 쏙 들어가 앉으면 마치 하늘위를 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스릴이 있는 곳이기도 한다.

금강산바위
무릉계곡 쌍폭포 상류 박달령 계곡에 위치한 기암절벽으로서 옆 계곡에는 별유천지 폭포수가 흐르고 있는 곳으로 [제2의 금강산] 이라고도 불리우는 이곳은 박달령 정상을 통한 두타산과 청옥산의 등반로가 나있으며 주변에는 맑은 계곡물과 기암괴석이 함께 어우러져 그야말로 보는이의 감탄을 자아내는 배경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남근바위
관음암에서 문간재로 가는 중간기점에 위치한 바위로서 남성들의 고귀한 부분을 닮았다 하여 [남근바위] 또는 자식을 얻기 위해 소원을 빌었다 하여 [소원바위]라고도 불리어 지는 곳임.

목적이 등산도 아니고 더위를 피하여 피서를 겸한 여행이라.
끝까지 다 둘러보지 못함을 다음날을 기약하며 돌아서 왔지만, 맑고 맑은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누워서 하늘을 보니 도를 닦다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 속의 신선이 나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하 이렇듯 심신을 비우고 수양을 한다면 마음마저 깃털처럼 가벼워 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침표를 찍고 세속으로 하산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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