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여 송광사를 아십니까?
언젠가 지리산을 등산하다가 너무 힘들고 지쳐서 내려선 다는 것이 경남 하동쪽 코스로 잡았나 보다.
물 길 따라 걷다 보니 장엄한 폭포에서 한나절을 보내면서 그 동안 못다한 빨래며, 잡다한 배낭을 풀어 젖히고 오랜 등산에 지친 심신을 달래려고 바위에 잠깐 누워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때의 그 따스하던 봄 햇살아래의 달콤했던 봄날은 마치 장자의 꿈과도 비견될 만큼의 포근했던 휴식이었다.
새봄 꽃 단장이 철 이른 벚꽃이 십리에 걸쳐 터널을 이룬다는 쌍계사 길에서 이미 벚꽃은 지고 아카시아 향기 그득한 그 비포장 길을( 25년전) 터덜거리면서 방랑시인 김삿갓을 생각하면서 내려왔는데, 갑자기 떨어지는 봄비.
오도가도 못할 처지라 판쵸를 뒤집어쓰고 비 피할 곳을 찾는데, 그렇게 한참을 비를 맞으면서 비 그치기를 포기한 채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발길에 채 이는 돌을 피해서.....한참을 내려오는데,
웬 아저씨 몇 분이서 헐레벌떡 뛰어온다. 그리고 부탁하기를 자신들은 양봉을 하는 사람들인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벌통을 실은 차가 오도가도 못하고 있으니 함께 내려 줬으면 고맙겠다는 요지의 말씀이었다.
가진 것은 널널한 시간과 넘치는 힘(?)밖에 없던 처지라 동의를 하고 함께 가서 보니 트럭 가득하게 쌓인 벌통과 언덕을 올라가지 못한 트럭이 그르릉 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우선 좀 편평한 곳을 골라 벌통을 하나씩 내려서 쌓고, 다 내린 다음에는 트럭을 작은 고개 위로 올린 다음 다시 그 많은 벌통을 하나씩 차에 싣는 작업을 하고...
쏟아지는 빗 속에 착 달라붙은 런닝 위로 마치 김이 오르듯이 무럭무럭....빗물인지 땀인지 구분이 안된 상태에서 서서히 지쳐갔는데....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 모든 것이 끝나고 벌통을 제자리에 진열하고, 관리용 텐트를 치고 휴식에 들어가서 찬란하게 빛나는 밤의 향연이 펼쳐지는 별을 보고 점을 친다는 페르시아 왕자를 생각하며 밤은 깊어 가고, 아카시아 향기는 천지를 진동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 순천 송광사를 가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크다는 싸리나무 구시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번 가 보리라 생각하였지만 시간이 흘러 잊고 있었는데.
언젠가 그 후에 순천 송광사를 여행하는 길에 그 길고 긴 황톳길을 쭉 쭉 뻗은 편백 나무 숲으로 하늘을 덮었고 새 소리 바람소리가 인도하는 일주문을 향해서 가다가....
경내를 이곳 저곳 돌다가 어느 처마아래 놓여진 싸리나무 구시를 보았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그 크기와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갈라진 틈을 짐작해 보건데, 그 연륜이 가히 짐작이 갔는데, 그 설명에는 전라북도 남원 송동면 세전리에서 베어왔다는 기록을 보고 아 내 고향 남원이 유명한 것이 여러가지 지만 이런 것도 유물로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 후 화엄사를 여행할 적에 그곳에도 싸리나무 구시가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그것은 남원 송동에서 자란 싸리나무를 둘로 나눠 아랬 부분은 송광사로 그 윗 부분은 화엄사로 가져가서 구시를 만들었다는 기록인지라.
지난 주에 아버님 기일을 맞아 남원에 간 김에 송동을 찾아가서 그 싸리나무의 밑 둥을 보고 그 예전 향나무 우물가에 심어진 싸리나무의 원조를 보고, 천년세월을 뛰어넘은 역사의 흔적이 은은하게 향기를 뿜더라.
우리는 역사의 언덕에 어떤 발자국을 남기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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