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을비 초상

no pain no gain 2007. 6. 16. 15:36

[등산] 가을비 초상


시월이 깊어가는 가을 날 추적이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이글을 쓴다.

지혜보다는 용기가 앞서던 젊은 날의 하룻날
.

청명하고 따사로운 햇살에 고추잠자리 코스모스 희롱할 제
!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마음은 지리산엘 떠나고 있었는데
,
남원에서 걸어서 한양에 과거도 보러 갔다는데, 지리산쯤 못 가랴 싶어 동림교부터 걸어 주천면 용담사를 거쳐 비포장 도로를 터덜터덜 걸어서 육모정까지 갔는데-그땐 입장료가 없었다- 처음엔 넓게 뚫린 군사도로-남원에 주둔하던 9530부대에서 길을 공사해 두었었다- 를 타고 터벅이면서 산을 오르는데
,
한 면을 깍아 지른 듯한 계곡과 산 사태가 나서 무너져 버린 흙더미 속에 잊혀진 길을 더듬거리면서 정령재를 넘으니 해가 지고 있었다
.

일박을 하고 나면 피곤에 지친 다리가 좀 풀리려나 해서 텐트를 치고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
바스락 이는 낙엽 소리, 잔돌 구르는 소리, 풀벌레 울음소리, 먼 듯 가까운 듯 한 곳에서 들리는 들짐승 울음소리에 잠 못 들어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

몹시도 한기가 느껴져서 잠이 깨보니 그 옛날의 A형 텐트가 한 쪽이 뽑혀서 바람에 펄럭이는데, 텐트를 바로잡고 틈새로 하늘을 보니 손을 내밀면 한 아름 가득 딸 것 같은 무수한 잔 별
......
가슴 가득 차오르는 듯한 기쁨과 환희
......
잠을 청했으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베르테르보다 더한 연민으로 밤을 새우고
.

아침에 일어나니 아뿔싸! 몸은 분명 내 몸인데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구나. 퉁퉁 부은 다리.... 울고 싶어라
.

그래도 용성인의 기개는 남았던지 배낭을 걸머지고 걷다 쉬 다를 반복해가면서 반야봉을 거쳐 도착한 노고단
.

노고단의 가을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
억새풀 일렁이는 산 파도를 바라보면서 어느 님이 아름다운 산자락을 빚어 두었는지
?
함께 와야 했을 만한,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였는지를 생각에 잠겨
......

마지막 하산 길은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
.
왜냐하면 노고산장에서 화엄사까지의 이십오리 10 킬로 황톳길을 추적 이는 가을비를 맞으면서 청승맞은 노래를 부르면서
......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은혜를 입었던 일들을 하나씩 떠 올리면서 정말 내 발로 걸어서 이 산을 내려 간다면
......

"
차 카 게 살 자"를 되뇌면서
......

넘어지고
,
엎어지고
,
미끄러지고
,
구르고
.........

사람이 할 수 있는 동작은 모두다 해보면서 추워서 떨리는 이빨을 열심히 부딪치면서 어깨위로 피어나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가을비를 맞았다
.

처음엔 배낭이 젖고, 상의가 젖고, 바지가 젖으면서 서서히 파고드는 빗물이 슬금슬금 등줄기를 내려와서 팬티가 젖을 때쯤엔 온몸에 오한이 들면서 인간세상이 이렇듯 추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난 전혀 색다를 환상체험을 했었다
.

오늘처럼 가을비가 추적 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날이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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