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악산에 올라 금강산을 생각하다.
전날 하루 종일 내리던 비를 생각하면 산행이 쉽게 이루어 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욱하게 깔린 안개를 헤치면서 현리로 간다.
중간 휴게소에서 쉬면서 보니 어제 내린 비에 흠뻑 젖은 산수유 꽃망울이 봄을 상징하는 노란 왕관의 상징물처럼 보인다. 여기 어디쯤 개나리도 백 목련 아래 피어있을 텐데?
운악산(雲岳山 935.5M) 입구에서 지명에 악(岳)자 들어간 산 중에 높낮이는 차치하고라도 험하지 않은 산이 없는데, 관악, 치악, 화악과 함께 개성에 있어 아직 가보지 못한 송악까지 포함하여 경기 5대 악산으로 꼽는다 하니 자못 설레기도 하다.
입구에서 산불예방 캠페인 기념 사진을 찍고 출발하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백구”
주위 분들의 설명을 듣자 하니 등산하는 노인네만 능선까지 안내해준다 해서 TV까지 유명세를 탄 명물 견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몇 발자국 앞서 가면서 빨리도 천천히도 아닌 산행 속도에 보조를 맞추는 걸 보니 보통 숙련된 솜씨가 아니다.
바람도 자고 화창하게 개인 날씨에 남향에는 진달래 그 연분홍 새아씨 볼 같은 수줍은 듯 화사함에 봄이로구나 하는 정취가 묻어난다.
누군가 겉옷을 벗는다 하여 한 숨 돌리는 자리. 설명이 없어도 툭 튀어나온 날치가 매우 특이하다 했는데 눈썹바위라 이름 붙여진 절경 중의 하나라 한다.
상구 형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진행하는 과정에 또 다른 능선에 도달하니 떡 하니 나타난 묘지. 아마도 후손들의 건강이 걱정되신 조상님께서 운동부족으로 허약해질 후손들을 위해 이 고지 저 능선에 터를 잡으셨나 하면서 지나간다.
전혀 미륵처럼 생기지 않은 미륵바위를 거쳐 철 다리 부근에는 예전 바위 벽을 줄 하나 띄워 오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철 사다리가 낡고 녹슬어 방치된 그 옆에 어느 님의 영혼과 함께 하는 표시 석과 구름다리가 놓여져 있다.
이젠 사지를 이용하여 바위에 착 붙여야만 가능한 산행.
바위를 안고 굵은 뿌리를 내린 소나무 가 마치 생명 줄처럼 느껴지는 바위길이 매 순간마다 긴장감과 조심스런 전진을 요구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하던 병풍바위.
평퍼짐한 바위 꼭대기에 올라서니 그간의 땀 흘린 보상이라도 하듯 산 전체 앞면이 설명 없이 병풍이로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난다.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 잘 그려진 산수화쯤이라 할까? 바윗돌 틈의 여백을 메우는 소나무의 휘 늘어진 가지의 조화는 가히 금강을 빗대서 소금강이라 부를만한 가치가 충분하구나 하는 모두의 공감지대다.
이미 물어볼 길이 없는 세종의 셋째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것을 안견에게 설명해서 그리게 했다는 전설의 땅 몽유도원도의 모델이 될만한 그 표상이 바로 이곳이 아니었는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정말 잘 그린 그림 한경이 열두 폭으로도 모자랄 만큼 꽉 차고도 넘친다.
목이 말라 잠시 쉬면서 뒤 돌아보니 수십여 미터의 우뚝 솟은 바위 꼭대기에 두 사람의 실루엣이 마치 어느 광고에서 보여지듯 서 있다. 한마디 한다 바람불면 날아갈 텐데……
좀더 진행해서 동봉에는 별로 잘 지은 것 같지 않은 백사의 시를 대리석에 새겨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모습은 왠지 좀 낮 설어 보이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조화롭지 못한 이방인의 모습처럼 보인다. 단지 백사가 포천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산 정상에 이런 조형물을 세운 것이 어색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시각일까?
식사하기 좋은 자리(?)를 찾아 널찍한 바위를 가기 위해 서 봉을 지나고 걷다 뛰다를 반복해서 반 얼크러진 비빔밥처럼 된 도시락을 먹으면서 운악산 조망이 가장 뛰어나다는 만경대 이야기를 한다.
여기 저기 아직 녹지 않아 허연 얼음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3월의 골짜기 풍경은 아마도 마지막의 겨울잔해이리라!
후식으로 과일까지 먹고 다시 배낭을 메고 하산 길에 앞서가던 일행들이 우왕좌왕한다.
이유인즉 운주사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길이 여러 곳인지라 1, 2, 3, 코스 중 어디로 갈 것인지의 혼선이다. 우리는 능선을 타고 제 1코스로 간다.
난잡하게 매인 줄 사다리의 모양이 그만큼 가파르고 험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우려 속에 고정 핀을 박지 않고 나무에 묶어 놓아 뿌리 채 뽑혀 버린 나무가 안쓰럽기도 하거니와 저렇듯 작업을 마무리 했던 그 분들의 생각의 폭이 조금은 실망스런 마음까지 든다.
신라 왕족의 후예로써 꺼져가는 국운을 살려보려 힘쓰던 궁예가 전쟁에 져서 쫏겨 다니다가 농사짓는 백성으로부터 가래로 얻어맞아 절룩이는 다리를 끌고 계곡으로 숨어들어 피를 씻었다는 전설이 있는 왕궁 터는 적막과 돌 부스러기들의 잔해만 남아있음에도 대궐 터를 지나 신선대 그 언저리에는 가로막은 천혜의 절벽들이 힘들여 쌓지 않았어도 자연 성벽의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 속에 봄이 풀린 물소리와 함께 하산 길에 수십여 미터의 높이를 자랑한다는 무지치(무지개)폭포에 둘러 아직은 그리 볼만한 풍경은 아니지만 수량만 많이 흐른다면 운악산 10경 중의 하나라는 말이 실언은 아니겠다는 생각과 함께 운주사 방면 하산 길을 택한다.
급하지도 서두르지도 않고 산천을 둘러보면서 내려선 운악산 등반은 봄은 이미 가슴에 들어와 있음을 실감한 산행이었다.
주차장 아래 작은 물길에 내려서니 갯버들 피어나는 근처 작은 웅덩이에는 깨어날 그날을 기다리는 개구리 알들의 안온함이 베어있다.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달산 흑산도 그리고 홍도 (0) | 2007.05.28 |
---|---|
바람의 나라 소백산을 넘다. (0) | 2007.05.28 |
주흘산 안개 속을 헤 메이다. (0) | 2007.05.28 |
덕유산. 눈 꽃에 파묻히다. (0) | 2007.05.28 |
눈 덮인 설악산을 즐기다 (0) | 2007.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