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덕유산. 눈 꽃에 파묻히다.

no pain no gain 2007. 5. 28. 14:51

덕유산. 눈 꽃에 파묻히다.

 

 

덕유산. 무주 구천동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곳은 사실 삼십여 년 전에 비 포장 도로를 달려 그 유명하다는 33경을 구경하고자 애인이었던 그 사람과 함께 다녀온 적이 있는 추억이 깊이 새겨진 곳. 그 애인과는 지금까지 손잡고 산행 다니면서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답니다.

 

전날 뉴스에서 덕유산의 눈 꽃이 영상으로 스치면서 기대는 한껏 부풀었다.

안성안내소를 출발해서 얼마 가지 않아 언 땅과 얼음으로 뒤 덮인 길을 계곡 물 흘러가는 반주를 벗삼아 걷는 길이 이건 겨울 산행이 아닌 묘한 느낌이 든다.

이게 봄이 오는 소리인가?

 

5부 능선쯤부터 끊긴 물소리와 나타나는 눈발이 임무교대를 하면서부터 거친 숨소리 길게 늘어지는 행렬이 산행의 난이도를 말 하는 듯 하다.

8부 능선쯤부터 보이기 시작한 하얗게 채색된 산 봉우리들에 이어지던 찬사와 감탄은 사실 시작에 불과했다.

 

동엽령 능선에서 추워서 꺼내 쓴 모자와 바람막이 외투에 달린 모자까지 덮어쓰고서야 산하가 한 눈에 절경으로 조망되기 시작했다.

길고 길게 이어진 능선. 이미 우리가 가야 할 저 정점.

향적봉의 모습이 파란하늘에 공제 선이 되어 아스라 하게 보인다.

발아래 양지바른 곳은 햇살과 길손의 다듬질로 눈이 녹아 질컥거리는 곳도 더러 있지만 눈을 들면 온통 천지간에 눈 꽃이 마치 그 날을 표현 하기 위한 전시회처럼 생각이 든다.

 

 

아직도 덜 떨어진 상수리나무 마른 잎에 매달린 설화는 뭉텅 무리 져 무거워 보이고 갸날프기만한 철쭉나무 잔가지까지 칼날처럼 달고 서 있는 모습이 비탈에선 나무의 생애가 결코 쉽다고만 느껴지지 않은 인고의 세월이 묻어남을 배운다.

 

 

가다 뒤 돌아보면 능선 따라 길게 이어지는 산 객들의 모습이 결코 쉬운 산행이 아님에도 이토록 뭘 찾고자 이 곳을 헤 메이는 걸까 하면서도 사진에서 느낄 수 없는 그 무한 절정의 비경들을 가슴으로 새기는 그 순간만은 도를 닦는 어느 고승의 경지와 동일 선상이 아니었을까?

 

 

중봉으로 가는 길목에서 몇 번의 휴식을 하고 서로 나눠먹는 간식 하나에도 사랑과 애정이 깊게 배어 나옴을 느낀다.

 

 

예전에 써둔 글 중에 한 대목.

 

내 작은 소망으로 한 점 한 점 내리기 시작한 눈()
당신의 깊고 깊은 계곡 까지를 하얀 색으로 다 채색하지 못하고

둔덕진 언덕과 곱게 파여진 허리 곡선에서 붓질을 멈췄습니다
.


햇살 받아 되 반짝이는 눈부심은

차마 다 바라보지 못하는 황홀경의 극치 였다오.


작은 바람 일렁임에 피어 오르는

용틀임의 눈꽃 들은
고고한 당신의 애교스런 몸짓인 냥

훔쳐보는 시선이 마냥 행복합니다.


지난날 길고 긴 불면의 밤을

조금씩 내리는 사랑으로 감싸고 다듬어서

겹겹이 둘러쳐진 저 깊은 산을 모두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 압니다.


각각의 사연을 안고 서 있는 나무는

가지에 언 쳐진 사랑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큰 비명을 울리며 뚝뚝 부러져 버린 슬픔을 안고 있지요
......

강한 자만 부드러움을 내포할 수 있다는 원칙하에서 갈 길이 바쁜 사람들에게 다반사로 길을 비켜주고 덕유산 33경의 마지막 비경인 중봉에 서기까지 주유천하의 색다른 모습들이 마냥 즐겁습니다.

 

정성 들여 담아준 도시락을 먹으면서 천년 세월을 묵묵히 견디다 그 형해만 남겨둔 주목나무 생애와 군데군데 무거운 눈을 이고선 늘 푸르름의 상징인 주목나무 분신들이 기괴하면 할수록 더욱 인기를 끄는 그 자연의 오묘함을 이런 산 꼭 데기에서 배우나 봅니다.

 

 

덕유산 최고봉인 향나무가 많아서 향적봉이라 이름 지었다는 곳.

멀리 지리산 천황봉이 구름위로 보이고 소백산맥 줄기를 타고 무등산, 대둔산, 단풍산등이 겹겹이 손 내밀면 닿을 듯이 둘러쳐져 있다.

 

하산 길. 올라오는 산 객들과 치이면서 좌측통행이 아닌 마구잡이 전술로 밀고 올라오는 분들을 비켜서서 내려가는 자의 여유로움으로 기다리면서 쉬고 또 내려가는 길이 막혀서 서고 하면서 얼마쯤 내려섰을까 흘러가는 물 소리가 정겹다.

 

 

한 여름이 아니어서 제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이름만 들어도 선계에 들어선 듯한 구천 폭포, 청류계, 금포한, 구월담, 청류동, 인월담, 수경대, 수심대, 추월담, 학소대 등등을 지나는 길이 백련사를 지나서부터 6.8Km 정도 되는 길을 더러는 얼고 더러는 녹은 길을 앗 차하면 미끄러져 넘어질 뻔한 듯 하면서 런닝머신에서 빠르게 걷는다면 한 시간 정도면 되리라는 속보로 빠르게 걸어간다.

 

유유자적 한가롭기만 하다면야 내려서는 길 명소마다 들려서 흘러가는 물가에 앉아 시 한 수 떠 올리면서 내려 설 법도 하련 만은 약속된 시간에 맞추려다 보니 힐끔거리는 곁눈질로 다소 위안을 한다.

 

아마 봄이 오기전의 마지막 눈꽃산행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소중한 추억으로 가슴에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