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바람의 나라 소백산을 넘다.

no pain no gain 2007. 5. 28. 14:54

바람의 나라 소백산을 넘다.

 

 

옛 시인은 춘수만사택이라 했는데 올해는 예외 인지 애절하게 내리는 봄비는 황사에 묻어간 듯 창가에 턱을 괴고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상념은 없는 듯 합니다.

삼기리 초입부터 물소리 새 소리 화합하듯 들려오는 잘 포장된(?) 탐방로를 따라 걸으면서 이 물은 지난 엄동설한에 밤새워 폭풍의 언덕을 몰아치던 눈 보라의 애잔한 눈물이 아닐련지?

 

마나님과 함께라면 서서히 쳐지면서 안 보아도 되는 것까지 모두 다 보이련만 뒤 따라가던 그룹이 선두의 뒤 부분인지라 초반부터 속도전이다.

 

한 두어 번 쉬는 자리에서 2년 전 선배 산악인의 먼저간 영혼을 위로하는 잠시의 묵념을 드리고 거침없는 행진이 시작된다. 흙으로 다져진 평탄한 능선 길과 가파른 등고선을 철 계단으로 이어놓고 그 중간 틈에는 잔돌을 쌓아 계단을 이어 놓았다.

앞이 뻔히 보이는 비로봉 정상을 앞에 두고 우람하게 풍상을 이겨낸 노송의 도열을 사이로 목이 마를 때쯤에 샘이 있다.

한 바가지 떠서 물을 마시는데 어느 님이 깨트렸는지 마시는 것 보다 새는 게 많다- 이러면 집안 망하는데……

 

 

길게 이어진 탐방로. 훼손된 산의 복구를 위한 노력이 곳곳에 보인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지 몇 달. 그 동안 느낀 점은 산이 점점 깨끗해 진다는 느낌이다. 관리소 직원들의 매표소를 지키던 노고가 없어졌으니 모두 산악 레인저가 되어 더러는 탐방로를 따라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산에 세워진 안내판 세척도 하면서 물론 산행에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하는 님들 단속도 겸해서 하기 때문이리라.

탐방로 아닌 곳을 가면 50만원, 담배 피우면 20만원

 

 

겨울이면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어서 불려 졌다는 소백산.

어둠을 밝히는 빛이 모든 곳에 두루 비치는 부처의 몸이라는 뜻을 가진 비로봉(1439.5m) 정상에 서면, 사방을 둘러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자못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바로 부처인 냥 마냥 자비로운 시선이 된다.

 

잠시 휘날리는 눈발 바람의 산이라는 명예에 걸맞게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 바람 바람.

잠깐 사이에 으스스 몸이 얼어온다.

외투를 입고 사진을 찍고 시려오는 손을 비비면서 소백산에서 제일로 유명하다는 주목나무 군락지. 500년 이상 된 재목으로만 궁궐에서 쓰는 가구를 만들었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군락지를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치고 관리하는 직원들의 휴게소를 만들어둔 곳으로 식사하러 내려간다.

 

능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갈린 자리.

한 쪽으로 휩쓸린 가지만 남기고 외로움을 묵묵히 달래는 인고의 세월을 부대껴온 북풍을 맞서 싸우며 철쭉나무 잔 무리를 굽어보는 모양새가 절대 쓰러지지 않으리라는 한국인의 표상처럼 보인다.

 

차갑게 굳어버린 도시락을 먹으면서 모두가 싸가지고 온 것들을 나눠먹고 나서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마시자 몸이 풀려온다.

속속 도착하는 후발대를 위해 자리를 내주고 일어선다.

 

 

군데군데 덜 녹은 눈밭을 지나면서 질컥이고 미끄러운 길을 밟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계단의 가장자리만 골라 딛느라고 더 지쳐가는 듯하다

 

오늘은 별일이야 산 객들이 이리도 적을 수가? 이따금씩 만나는 산 객들이 무지 반갑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제1 연화봉, 2 연화봉 그리고 통신대 까마득하게 보이는 저 먼 길을 우리는 가야 한다네. 그리고 주름처럼 겹쳐진 첩첩 산중의 묵직한 자리잡음을 숙연하게 받아들이며 서서히 지쳐갈 즈음 오월의 태양아래 그 빛을 발할 철쭉무리들이 아직은 휴한 거. 잎 피우려면 아직 멀었다.

 

마치 문어를 뒤집어 놓아 몸부림치는 듯한 모습을 한 신갈나무 군락지를 돌아 뒤 돌아보니 우리가 지나온 길 비로봉의 모습이 옅게 덮인 구름을 배경으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우리네 인생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온통 산 정상을 붉은 빛으로 물들이고 젊은 날의 영혼을 빼앗을 그 색감의 축제가 어느 날인 듯 봄 날처럼 흘러가고 나면 지금 가고 있는 저 곳. 연화봉의 모습처럼 항상 연꽃이 피어있지 많은 않을 인생길이 아니던가?

 

 

연화봉에 도착 바로 아래 보이는 천문대를 바라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별을 보고 점을 쳤다는 페르시아 왕자가 다시 환생한다면 그는 과연 이런 천문대에서 근무할까?

 

소백산의 지명들이 생과 사의 연장선에 놓여진 것은 이 길을 걷는 만큼 욕심을 버리고 무아의 경지에서 삼라만상의 해탈의 뜻을 한 발자국 가까이 보라는 선인의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희방사 내려가는 돌계단은 넘어지기 딱 좋다는 충고와 함께 가다 보니 사진 몇 장 찍고 나니 허공에 흩뿌리는 하이 톤의 몇 가닥 목소리만 남기고 저 멀리 사라져 버려 혼자 가는 산행길이 되었다.

옛 추억 한 토막. 군 작전 때 야간도피 훈련의 일환으로 이 곳 소백산을 넘은 적이 있다. 낮에는 비트 속에 숨어서 자고 야간에는 동틀 때까지 걷는 도중에 소백산 어느 능선에서 눈밭에 빠져 철모를 잃어버린 후임 병 그리고 철모를 찾다가 총을 잃어버렸다는 보고.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 속에서 급경사를 이루는 산 중턱을 온통 헤매어 총을 찾아냈을 즈음에는 모두 땀으로 흠뻑 젖은 새벽이 왔다.

그때 잃어버린 철모는 지금쯤 어느 골짜기에서 녹슬어가고 있는지?

 

30여 년 전의 모습과 흔적을 찾을 길이 없는 희방사와 비 포장 산길이었던 곳이 잘 닦여진 아스발트 포장으로 바뀌어있으나 서거정이라는 선인이 하늘에서 내려준 꿈 속에 노니는 곳(天惠夢遊處)이라 이름 붙였다는 희방폭포.

소백산 명물 중의 하나라는 28m 물줄기와 그 맑고 경쾌한 소리는 옛 모습 그대로 임에 다소 정겹고 위안이 된다.

 

탐방로가 아닌 도로를 따라 내려선 길에 예전에 불던 버들피리가 생각난 님이 가지 하나 틀어 불었으나 내려서도 700고지 인지라 아직은 덜 오른 물 때문인지 기대만큼의 삘~~리 소리는 경쾌하지 못하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후미를 기다리느라 주변을 둘러보니 축제 때 만든 흔적으로 장송을 세웠으나 더러는 쓰러지고 남아있는 장승들도 장승답지 못한 미완의 작품처럼 보인다.

 

봄 날 흩날리는 것이 어찌 떨어진 꽃 잎뿐이랴!

흘러가는 저 물결 따라 젊음도 가고 인생도 가고 가슴엔 추억만이 남아 소백산의 봄날을 기억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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