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수인2 중에서. 파병(1966-69). 황석영 作. 2017.

no pain no gain 2025. 4. 28. 18:02

📚 수인2 중에서. 파병(1966-69). 황석영 作. 2017.

떠돌이 생활하면서 살다보니 징집영장이 두번이나 나온걸 몰랐다. 그래서 선택했던 '해병대'.
해병대 교육을 마치고 헌병이 된다.
진해 해군통제부 사령부의 문 근무가 시작된 것이다. 근무하던 어느날인가 초소장 하사관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이 주쯤 영창에 있다가 정글전 특수학교 교육후 월남으로 파병된다.

온갖 고생과 죽음의 터널을 거쳐 근무의 마지막에는 어머니의 지인찬스 활약으로 다낭의 한미월 합동수사대로 파견된다.  가자마자 처음에는 PX를 파악하는 근무 부터 시작했고, 그 다음에 미군 보급창을 출입하다가 드디어는 다낭 암시장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거대한 '도깨비 시장'을 한복판에 푹 빠지게 되었다.

제3국의 군인과 기술자들도 암거래에 끼어든다. 남베트남 군인과 관리들은 전투식량에서 무기까지 거래하는데 상대는 물론 상인들에게서 세금을 걷는 해방 전선측이다. 우기가 오면 연합군과 해방 전선이 함께 깡통 C레이션을 까먹으면서 전투를 한다. 이를테면 남베트남군의 새로 유탄 발사기 같은 신형 무기가 지급되면 그 중 몇 자루는 시장에 나와 팔려나간다. 미국의 베트남 평화 정착 사업으로 '신생활촌' 건설이 진행되면서 수많은 원조물자가 시장으로 풀려나왔다. 집을 지을 때 시멘트나 슬레이트, 각종 곡물가루와 사료, 식량. 그리고 마을의 민병대를 무장시킬 무기와 탄약 등 속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이 모든 정보를 선임자에게 인계 받거나 스스로 시장 속에서 터득했다.

" 나는 시장 모퉁이에서 군속처럼 계급장 없는 군복의 맨머리로 돌아다니거나 티셔츠의 면바지 차림이나 베트남 사람처럼 검은 파자마 바지에 흰 셔츠를 걸치고 시장 부근의 찻집이나 주점에 나가 앉아 있곤 했다"

무기의 그늘에 나온 묘사다.
<PX 란 무엇인가 큰함석 창고 안에 벌어진 디즈니랜드. 그리하여 지친 병사는 피 묻은 군표 몇 장으로 대량산업사회가 지어낸 소유의 꿈을 살 수가 있을 것이다. 오리도 토끼도 요정도 기계가 되어 뛰고 웃는다. 포장지와 상자에서는 느끼한 기름 냄새가 나고 그것은 꽃처럼 아름답다.
CBU(접속탄) 폭탄 한 개로 길이로 일 마일, 너비 사분의 일 마일에 걸쳐서 백만 개 이상의 쇠파편을 뿌릴 수 있고, 삼백 에이커를 단 사 분 동안 동물과 식물이 살지 못할 고엽(枯葉)지대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가 나라의 국민들이 사용하는 일상용품을 파는 곳이다.

아메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나라입니다, 라는 표어가 적힌 방패를 들고 로마식 단검을 들고서, 성조기의 옷을 입고 낯선 고장마다 나타나는 엉클 샘에 지붕밑 방이다. 원주민을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로 바꾸고 환장하게 만들고 취하게 하며 모조리 내놓게 하고, 갈보와 목사와 무기 밀매업자가 사이좋게 드나드는 기병대 요새의 잡화점이다.

그리고 PX는 바나나와 한줌의 쌀만 있으면 오순도순 살아가는 아시아의 더러운 슬로프 헤드들에게 운명을 가르친다. 우윳빛 비누로 세수하는 법과,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코카콜라의 맛이며, 향수와 무지개색 과자와 드롭스와 레이스 달린 잠옷과 고급 시계와 보석반지를 포탄으로 곤죽이 되어버린 바라크 위에 쏟아낸다. 아시아인의 냄새 나는 식탁 위에 치즈가 올라가고 소녀들의 가랑이 속에서 빠져나간 콘돔이 아이들의 어린 손가락 위에서 풍선이 되어 춤춘다. 한 번이라도 그 맛과 냄새의 감촉에 도취된 자는 결코 죽어서라도 잊을 수가 없다. 상품은 곧바로 생산자의 충복을 재생산해낸다.  아메리카를 재화의 손댄 자는 US 밀리터리의 낙인을 뇌리에 찍는다. 캔디와 초콜릿을 주워 먹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라는 아이들은 저들의 온정과 낙천주의를 신뢰한다. 시장의 왕성한 구매력과 흥청거리는 도시의 경기와 골목에서의 열광과 도취는 전쟁의 열도에 비례한다. PX는 나무로 만든 말(馬)이다. 또한 아메리카의 가장 강력한 신형 무기이다.">

"나는 미군 측의 용병이라는 자각이 들면서 다낭 시에 베트남 민간인들 속에 들어가면 어쩔 수 없는 자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민간에서의 차량으로 위장한 수사대 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해서 미군과 함께 시장 쪽으로 걸어 들어갈 때마다 나는 새삼스럽게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곁눈으로 힐끔 바라보곤 했다. 나의 거울은 바로 그들 베트남인들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무기의 그늘'은 연재가 아닌 출간된 책을 접하고 당시의 충격은 컸다. 나도 하사관학교에서 육 개월 훈련을 받고 근무 후에 제대했는데 이런 내막이 월남전이라는 걸 몰랐다.
단순하게 어릴때 불렀던 "이기고 돌아오라 대한의 용사여~" 어쩌고 하는 노랫말은 모두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그때 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