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길산. 운주 미륵. 황석영 作.
호남 전도는 토지가 비옥하고 바다를 끼고 있어 해산이 풍부한 고장이다. 특히 남해안에는 수백 섬이 있어 예로부터 극변의 유배지로 널리 알려졌다. 전라도는 평야가 광대하고 관개가 훌륭하여 이곳에 풍년이 들면 팔도를 먹인다 하였으나, 예로부터 중앙에서 멀고 현달한 이가 적어 부임하는 수령들은 마음 놓고 조세를 과하여 부역과 작료가 가혹하였으며 지방 서리배들의 농간은 극심한 고장이라 민란이 잦았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천민 이여 모여라. 모여서 천불천탑을 세우자.
그들은 보리밭 밭고랑에 돌을 뉘어 놓고 새기기도 하고, 산비탈에서 쪼기도 하며 암벽 중간에 매달려서 정과 망치를 두드리기도 하였다. 고수는 망치소리를 모두 뒤덮을 만큼 우렁차게 북을 때리고 또 때렸다.
천불천탑을 모시고 새로운 세상을 이루는 부처님을 좌정시키려면 새 절도 세워야만 한다.
늙은 유민이 일러서 계곡이 끝나는 곳에 새 절을 세웠으니 운주사(運舟寺)라 하였다. 젊은 유민이 물었다.
할아버지, 절 이름이 어째서 운주사요?
배를 부린다는 뜻이란다. 배가 물에 떠서 움직이게 된다는 뜻이니라.
애야. 새로운 우리 세상이 바로 배가되는 게야. 미륵님 세상이 배가된다. 배는 물이 없으면 뜰 수가 없지 않느냐?
그럼 물은 또 무엇이우?
물은 우리와 같은 앞은 천것들이고 만백성이란다. 우리 중생이 물이 되어 고이면 배가 떠서 나가게 되는 거야. 이제야 배가되어 움직이는 절의 의미를 알겠느냐.
유민들은 다시 정신없이 돌을 쪼아 미륵상을 세웠다.
미륵님이 어떻게 생기셨는지 본 적이 있어야지. 몸집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어찌 알고 어찌 알고 미륵님을 새긴단 말인고. 석수질을 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생각이 닿자 모두 낙망하여 일손을 멈추고 주저앉았다. 늙은이가 다시 나서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보게 미륵님을 못 보았다고? 이런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 미륵님이란 자네 아닌가. 자네 모양과 똑같이 똑같은 이가 미륵님일세.
온산의 바위가 밀려온다!.
북소리는 더욱 우렁차게 곳곳에 울려 퍼졌다. 그들은 캄캄한 밤이 되었어도 횃불을 밝히고 일을 계속 하였다. 구백구십구의 미륵산상과 탑을 세웠다.
마지막 미륵님을 만들자.
유민들은 새로운 세상을 눈앞에 그리면서 산정으로 올라갔다. 산정에는 남도 어느 곳에서 달려왔는지 집 채보다 더 큰 바위가 땀을 뻘뻘 흘리며 누워 있었다. 바위는 비탈에 누워 있어 그래서 비스듬이 기울어져 있었다.
모두들 머리와 다리를 정하고 와불(臥佛)을 새겨 나갔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코를 눈을 또 어떤 사람은 몸을 배를 어떤 이는 팔다리를 새겼다. 미륵님의 형상이 이루어졌다.
자, 이 미륵님만 일으켜세워드리면 세상이 바뀐다네.
그들은 머리와 어깨와 몸에 달라붙어 힘을 썼다. 북은 그들의 힘쓰는 앞소리와 뒷소리에 장단을 맞추었다. 미륵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다가 미륵은 다시 넘어졌다. 사람들은 지칠 줄 모르고 미륵님을 밀어 올렸다. 그때 도저히 이 캄캄한 놈의 노고를 참지 못한 사람이 하나 있어 손을 떼고 혼자 떨어져나가며 거짓말로 외쳐버렸다.
닭이 울었다!
고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북채를 내던졌다. 미륵을 밀어 올리던 사람들도 힘을 잃고 주저앉아 버렸다. 미륵상은 비탈 저 밑에 처박혀서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 미륵상이 되기 위하여 우뚝우뚝 새카맣게 몰려오던 사방의 바위들도 소문을 듣고는 그 자리에 넘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넘어지면서도 머리는 계곡 쪽을 향하였으니 먼 훗날 이라도 와불이 바로 일어서면 다시 미륵이 되기 위해서였다. 바위들은 민병의 쓰러진 시체처럼 들판의 아산 곳곳에 넘어져서 오랜 비바람에 씻겼다. 그 뒤로부터 이상한 일이 있었으니 운주사의 대문을 여닫을 적마다 서울 장안에서 우지끈대는 우렛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대문을 떼어서 영산강으로 떠나보냈다. 운주사는 그 뒤로부터 운주사(雲柱寺)가 되고 말았으며 이는 물이 차오르지 않아 세상이 머물러 버렸던 까닭이라 하였다. 중생의 물이 차올라 세상이 배를 띄울 때까지 와불은 구렁에 처박힌체 기다림의 장소에 머물게 되었다.
대동 세상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목숨 가운데서 문득 빛나던 것이 있었으니, 스스로 마음 가슴속에 이미 저러한 세계의 실상이 생생하게 담겨져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끝>.
나도 화순 운주사를 두번 다녀왔는데, 각진탑이 아니라 둥근탑과 구석구석 놓여져 있던 미륵불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느누가 저렇듯 무심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고, 마지막 화룡점정은 정상에 누워있는 와불은 정말 장관이었는데, 하룻밤에 천불천탑을 만들면 미륵세상이 온다는 그 뜻은 그 어느님의 상상이었을까?
만약. 운주사의 배가 떠서 흘러흘러 도솔천을 지나 '배맨바위'까지 간다면, 그곳은 고창 선운사가 될 터인데 대동세상을 어찌알고 미리알고 선점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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