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사랑의 판도. 이효석 作.

no pain no gain 2024. 11. 2. 09:37

사랑의 판도. 이효석 作.
사랑의 판도는 대체 얼마나 넓어야 하는지 마치 독재자가 세계지도를 잠식해 들어가면서 몰릴 줄 모르듯이 사람 역시 애욕의 포화를 모르고 마는 것이 아닐까.
수 평 뜰 안에 단란을 알뜰히 지키지만 세상일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내가 있다. 나는 그 사내를 존경하고 부러워한다. 그들 부부 사이에 참으로 짙은 사랑이 흐를 때 그 좁은 영토 권내처럼 행복스러운 곳이 또 어디 있으랴. 그러나 세상에는 사랑이라고 할 만한 경우가 드문 것이 사실이요, 사람들 역시 사랑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많다.

사람이 평생에 꼭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옳은지 어쩐지는 각각 나라와 경전 습속에 따라 다를 것이외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사람처럼 커다란 자유를 갈망하는 것도 없다. 그러니 양팔에 사랑을 안고 다시 한눈을 팔게 된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태곳적에 갈라진 각 객체의 분신들은 현대에 이르러 그 수가 무한히 드러난 까닭의 혼돈 속에서 착각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는 단원체를 이 원으로 갈라놓은 제우스의 실수였다.

지난날 사랑의 행장을 차례차례 더듬어 볼 때 나는 참회의 의식 없이는 그것을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첫째, 나 자신에 대한 참회요, 둘째 먼저 가 버린 아내에게 대한 참회다, 유독 아내에게 많은 허물이 컸음을 얼마나 뉘우치면 다 뉘우칠 수 있을까.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내가 나를 사랑했던 것에 10분의 1도 갚아주지 못했음이 부끄럽다.

아내는 왜 그리도 나를 끔찍하게 여겼을까. 오매 지간 내 한시라도 내 건강을 걱정해주고,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하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 무슨 술기에라도 걸린 것처럼 일률적이고, 헌신적이었으며, 희생적이었다. 나는 그 행복을 때로는 도리어 휘답답하게 여기면서 그의 놀라운 심조를 속으로 두렵게 여기고 공경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의 주락한 자유를 구해마지않았다. 욕심 많고 믿음직하지 못했던 남편이었던 것이다. 하늘의 부끄럽고 땅에 부끄럽다.

사랑에 관한 두꺼운 참회록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의문이다. 한구절도 빼지 않고 진실을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그리 쉬운 것도 아니다. 루소에게도 그것은 어려웠다고 하니까.

나는 그것을 모두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인 경우도 있었고, 사랑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돈황의 경우는 사랑이 아니라 방랑이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 로미오와 줄리엣- 그런 경우만이 참으로 사랑이다. 그렇다. 다섯 손가락을 꼽아도 남을 경우- 그것은 모두가 반드시 사랑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뉘우침이 있는 것이리라.
아내는 생전에 가끔 내게 이렇게 묻곤했다.
"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자란 대체 어떤 여자에요?"
하지만 나는 아내에게서 내 이상의 대부분 구현을 보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아내에게는 필적할 만한 여자는 그리 쉽게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마음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사랑에 부질없이 이상만을 찾는 것도 여학교 졸업생의 설문 답안 같아서 신선미 없는 노릇이다. 나는 아내에게서 충분히 내 이상을 가지면서도 그에게 말하지 못한 가지가지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그 비밀은 결국 모른 채 아내는 갔다. 생각할수록 뼈가 아프다.
" 착한 사람은 일찍 가는 법이에요."
마지막 무렵, 아내는 모든 것을 예상했던지 병실 침대에서 여러 차례 이 말을 되풀이했다. 참으로 착했던 까닭에, 너무도 단순했던 까닭에 일찍 갔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악한 까닭에 나는 남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지금의 내게 가장 마음 편한 노릇이다. 그러나 이만한 정도의 참회로 야 아내의 영靈을 도저히 위로 할 수는 없다. 언제면 충분한 고백의 날이 올지, 그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