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권의 책. 박성우와 문순태.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억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를 저었다
빰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박성우作 <삼학년>
혼자 먹으려고 우물에 미숫가루를 탄 것만은 아니다.
논밭으로 일을 나간 엄마, 아빠와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도, 언덕이며 모정으로. 몰려다니며. 뛰놀던 형, 누나, 동생들도 같이 나눠. 먹으려 했을 뿐이다. 물론 이 우물물로 밥도 지어야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봉재공장 보조사원으로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에 다니면서 시공부를 하던 시절. 사부로 모시던 봉팔이 형은 언제나 주머니에 시집이 한켠에 있었다.
문순태는.
" 나는 광주 천을 걷거나 떠올릴 때마다 배고팠던 소년시절이 무채색 그림으로 되살아나곤 한다. 내 기억 속의 광주는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5학년 때 시골에서 6.25를 만나 학업을 중단한 채 아버지 농사일을 거들며 소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치게 공부가 하고 싶어, 지게를 부수어버리고 부모 몰래 집을 뛰쳐나와 광주에 나오게 되었다. 혼자 광주학강초등학교 교장실로 찾아가 편입학 허락을 받았다. 그 후 가난한 친척집에 빌붙어 살면서 학교에 다녔다. 친척집이 광주 상류 배고픈 다리 부근 원머리 마을이었다. 다리 중심부가 움푹하게 휘어들어 배고픈다리라고 했다. 원리에서 학교까지 서둘면 30분, 해찰해서 걸으면 1시간쯤 걸렸다. 나는 도시락을 싸갈 수 없어 생고구마 한 개를 책보에 쑤셔 넣어 가곤 했다. 그리고 점심 시간이 되면 혼자 운동장 귀퉁이 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생고구마와 작두 샘물로 배를 채웠다. 학교가 끝나고 하교 시간이 되면 배가 너무 고파 휘청거리며 집에 돌아왔다. 배는 언제나 배고픈 다리처럼 종일 홀쭉해 있었다. 그 무렵까지만 해도 등굣길 인 원지교 아래쪽 천변은 소나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방목지였고 기마장 근처 천변에는 나무 시장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학교 길은 왜 그리 도 멀었는지, 늘 배가 고픈 나에게는 너무도 아득한 길이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우리 반 아이들은 여름날 하굣길에 어김없이 멱을 감고 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아이들이 기마장 앞 광주 천으로 내려가 멱을 감았다. 그러나 점심을 먹지 못해 허기진 나는 멱을 감을 기력조차 없어 그늘 밑에 퍼질러 앉아 있곤 했다. 이럴 때마다 우리 반 아이들 중 나를 촌놈이라고 항상 놀려대 던 아이가 나를 억지로 광주 천으로 끌고 가서 물속에 쳐박았다. 배가 고파 힘이 없는 나는 옷이 쫄딱 젖어 울음을 터뜨렸다.
나의 배고픔은 중학교에 가서도 계속되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도시락 대신 생고구마 한 개씩을 가방에 넣고 한 시간 반쯤 걸리는 먼 길을 걸어서 학교에 갔다.
광주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부모님이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광주로 이사를 온 후에야 나는 비로소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
" 창안백발 노인이 되어 광주 천을 다시 걸으면서 생각해 보니 10대 배고픔은 훗날 꿈과 희망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소년 시절의 배고픔은 외로움이었고 슬픔이었지만, 그 외로움과 슬픔은 내게 절망을 이겨내주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판잣집에 곱빼기 자장면은 추억은 늘 나를 새롭게 진화시켰으며 문학의 자양분이 되었다."
"고3 때 나는 아버지한테 세계문학전집 한 질을 사주면 아버지가 원하는 법과대학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동계천 위에 한 칸짜리 낡은 판잣집에서 풀빵을 굽던 아버지는 빚을 내어 내게 세계문학전집 한질을 사주셨다. 나는 날마다 가방 속에 전집을 넣고 다니면서 읽느라 성적이 자꾸 떨어졌다. 결국 법대 대신 철학과 입학했다. 아버지를 배신했던 이 눈물 젖은 책들을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는가."
"문학 노동자라 부르는 발자크의 커피 이야기는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깝다. 발자크는 우크라이나 한 여자 한스카 백작부인을 사랑했다. 발자크는 18년 동안 그녀와 팬레터를 주고받은 끝에 청혼했다. 한스카 부인은 남편이 죽은 다음에 결혼을 받아 들겠다고 약속했다. 발자크는 그녀와 같이 살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매일 50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즐기게 소설을 썼다. 마침내 한 스카이 남편이 죽자 발자크는 51세가 되어서야 결혼했다. 그러나 발자크는 결혼 5개월 만에 카페인 과다복용으로 죽고 말았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세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 인생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 존경하는 스승, 믿을 수 있는 친구다."
"유희춘柳希春이 한양에서 담양 대덕에 있는 부인 송덕봉宋德峯한테 보낸 천계음증부인天癸吟贈夫人이라는 시, 여기서 천계는 사람의 생식능력이 다하는 해로, 남자는 64세 여자는 49세를 말한다.
남들은 늙음을 슬퍼하나 나는 당당하네/ 천계가 왔지만 내 마음은 태평하다오/ 수염은 희었어도 머리는 검은 털이 많고/ 치아는 빠졌지만 눈의 정력은 아직 밝으며/ 가슴에 만권의 서책을 담으니 입이 껄끄럽지 않고/ 깊은 밤 편안히 잠 이루니 숨소리도 고요하네/ 다시금 삼백권의 책을 만들어서/ 장차 주자朱子 장자 莊子의 업을 잇고 싶다네/"
여름. 그 긴 더위를 건너게 하는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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