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질 무렵. 황석영作
작가의 다른 소설속에서 도 그렇지만 간략하게 쓰는 응집된 문체가 특히 매력적이다.
건축가 박민우. 그의 아버지는 전장에 나갔다가 살아 돌아와 읍사무소에서 일자리 얻게 된 것은 무슨 고지 전투에선가 무공을 세우고 훈장을 받았으며, 일정 때 군청에서 사환으로 일했던 덕분이었다고 어머니가 말해준적 있었다. 아버지는 농투성이들뿐인 읍내 젊은이들 가운데 소학교를 나왔고 일본어와 한자를 읽고 쓸 줄 알았다. 아버지의 앉은뱅이 책상 위에는 귀퉁이가 누렇게 변색된 육법전서니 행정학이니 하는 낡은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중에 시골을 떠나 도회지에 나가서 아버지가 한동안 대서소 서기로 먹고 산 것도 아마 그 덕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가난했지만 그래도 다달이 나오는 아버지의 공무원 월급이 있었으며, 해마다 식량이 나오는 외가의 땅뙈기가 있었다. 다섯 마지기에 논은 어머니가 시집오면서 외할아버지에게 떼어 받은 땅이었다.
'탄고구마'라는 별명을가진 윤병구. 그는 국민학교 친구다. 그의 집 부분은 동네 주택가가 끝나는 곳에 있던 국유지 잔솔밭이 시작되는 비탈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인근에 소작인들이 부치던 땅을 떼이고 하나둘씩 모여들어 흙과 돌로 대충 벽을 쌓고 오두막을 짓기 시작하면서 십여 호가 생겨났다. 그들은 읍내 허드렛일이나 미장일, 목수일, 군청의 잡일을 도맡았으며 수확기마다 주변 농촌에 품앗이로 먹고 살았다. 나도 그들 집 중 한 집에서 태어났으며 분명치 않지만 병구는 국민학교 삼학년 때쯤 우리 뒷집으로 이사 왔을 것이다. 이사 온 날 그가 먼저 나에게 알은체를 했고 우리는 그날 오후 내내 뒷산에 올라가 놀았다. 서글서글한 병구의 엄마가 일 다니는 농가에서 고구마를 캐고 나서 이삭을 거두어왔는데 맛 좀 보라고 한 바가지 가져다 주었던 기억도 난다. 윤병구는 종종 점심으로 고구마 두 개를 싸가지고 학교에 왔다. 그의 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좀처럼 보이지 않다가 집에 돌아오면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아내를 때리기도 했다. 그는 그는 인근 도시에서 건설 현장의 십장으로 일 나간다고 들었다.
내가 윤병구를 잊지 못하게 된 것은 어느 날 뒷산에 올라가 모닥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다 산불을 냈던 일 때문이었다.
병구는 성적이 바닥이었고 월사금도 거의 못 내는 형편이어서 오학년 때인가 학교를 그만두고 빈둥거리다가 신문을 돌리고 차부에 나가 행상도 하다가 일찌감치 화물차 조수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도시에 나간 뒤 언제부턴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서글서글한 엄마는 읍내 식당에 나가 일하고 바로 아래 누이동생은 미용 기술을 배운다며 가출했다. 윤봉구와 나는 70년대 중반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군대에 갔다. 내가 대학 재학 중에 군대 갔기 때문에 그보다 조금 늦었던 것 같다. 윤은 공병대의 배치되어 중장비 교육을 받았고 이것이 뒤에 그 인생의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다. 그는 제대하자마자 중장비 기술 자격증을 땄고 그만큼 활발해진 농촌 근대화 사업이 뛰어들었다.
처음 몇 년은 중장비 대수를 몇 대 늘리는 데 그쳤지만, 지방 간선도로를 공사를 맡게 되면서 그는 읍을 벗어나 도 단위 뛰기 시작했다. 그는 부도난 건설사를 인수하여 대도시에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누가 먼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부지런히 전화 하고 만나고 몇 건의 사업도 함께했다. 병구는 건설회사 회장이나 뇌졸중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최후를 기다린다.
박건우. 아버지는 구청앞에서 대서소를 하는 고향 선배의 조수일을 했고, 어머니는 동대문 시장의 통로에서 행상을 했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형편이 안 좋아져서 '달골'로 이사를 가서 어묵집을 했으며, 구두닦이 하는 애들을 몇명데리고 있는 재명이 형. 그리고 유일한 여고생 차순아가 사는 국수공장집이 있었다.
재명이의 구두터를 치고 들어온 '토막이' 그는 태권도 애기사범이고 태권도장 사범의 배경을 빽으로 삼고 있었는데, 어느날 도장에 찾아가 두둘겨패고 복수를 위해 찾아온 사범도 도둑 니킥으로 박살내 버린다. 어느날인가 순아가 학교다녀오는 길에 토막이에게 강간을 당하고. 재명이가 복수를하자 사범이 정식으로 한판 붙자고 도전장을 내밀고, 학교 뒷마당에서 오초도 걸리지 않은 게임으로 혼절시켜서 도장을 정리하고 떠났다.
박민우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생이 되어 달골을 떠났고, 자취를 하다가 어느 장군의 아들 과외를 위해 가정교사가 되었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녀석을 잘 가르쳐서 대학에 보내고 나중에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드라마 제작사를 운영중이다.
차순아는 민우가 군대간다는걸 알고 함께 밤을 보낸다. 복학하고 졸업하고 건축회사를 다니다가 가정교사로 있던 사모님의 소개로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하고 어찌보면 엘리트의 길을 순탄하게 걷는다. 순아는 재명이 와의 사이에 딸을 낳았으나 홍역으로 죽고, 재명이 형은 구둣방을 접고 술집을 하다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박민우가 장군에게 도움을 청해서 한달쯤 후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정신이 반 병신이 되었다.
재명이는 도박판을 차리고 사기도박으로 십오 년 장기형을 받고 면회 오지 말라는 말과 면회거부를 했다.
월부책 판매원과 만남.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빌어 '김민우'라 짓는다. 십여년간은 계란장사로 착실하게 살았으나 교통사고 죽고, 아들 민우는 철저하게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두대의 차 안에서 다섯명이 자살로 마감하고 순아는 혼자서 뇌졸중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김민우와의 인연을 맺은 정우희. 그는 죽어버린 차순아의 메일로 박민우 에게 대학노트의 내용을 조금씩 보낸다.
건축과 건설. 그 이면에는 잃어버린 고향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달동네. 그리고 기억조차 희미해져가는 추억이 재개발이라는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 매몰되어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이 내 스스로의 어렵게 살던 삶을 지우려고 노력하지 않았나하는 과거를 뒤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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