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평전.
금광과 알렌
1884.9 알렌은 미국 공사관의 무급의사 신분으로 조선에 왔다. 12월4일 갑신정변으로 민영익은 중상을 입고, 명성황후 최측근이자 사대당의 영수인 민영익을 살려내고, 이를 계기로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을 설립.제중원을 거쳐 연세대 의과의 모체가 된다. 고종의 주치의가 되고, 정치자문도 한다.
알렌은 노련한 수완으로, 조선에서 가장 금광권으로 평가되는 평북 운산금광 체굴권과 경인철도 부설건을 손에 넣었다.
시애틀 사업가 헌트는 채굴권인수 협상에 나서 단돈 3만 달러의 운산 금광에 관한 일체의 권리를 양도받았다. 1897년 헌트는 자본금 500만 달러를 들여 OCMC를 설립하고 개발에 나섰다. 매년 50만에서 300만 달러 상당의 금이 생산됐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1899년 헌트는 대한제국 황실과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황제가 소유한 지분의 25%를 10만 달러(20만원)에 인수하고 생산량에 관계없이 매년 1만2000 달러(20만원)를 상납하면 계약 기간을 25년으로 연장한다는 내용이었다. 터무니 없는 요구였지만 황실은 이를 받아들였고 두 차례 더 계약 기간에 연장해줘 그 기간 1954년까지로 늘어났다.
OCMC는 1903년부터 이익배당을 시작했는데, 12.5% 배당률로 지급된 첫해 배당금만 53만3000 달러에 달했다. 만약 황실 지분을 양도하지 않았다면 이익 배당이 실시된 첫해에 13만 3000달러의 배당금을 받을 수 있었다. 황실은 1년 배당금보다도 적은 돈의 지분을 모조리 넘긴 셈이었다.
OCMC는 매년 300만 달러 이상의 금을 생산했는데, 단 1 달러에 세금도 내지 않았다. 배당이 처음 시작된 1903년부터 마지막 지급된 1938년까지 36년간 매년 10% 이상의 고율배당이 실시됐고, 배당금 총액은 초기 투자금의 3 배를 육 박하는 1438만 달러에 달했다.
조선의 국부가 어떻게 외국의 배를 불리는데 민씨 일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이땅에 살고있는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베트남 전쟁.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남한의 청년들이 돈벌이를 위해서 미국의 용병으로 파병되었을 때에, 한국 정부와 극우반공주의 언론들은 마치 전 세계 국가와 민족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을 지원하는 줄로 착각했다. 미국의 압력을 못 이겨 군대를 파견해, 그따위 범죄적인 전쟁에 협력한 나라는 남한 이외에 필리핀. 타일랜드. 오스트레일리아 3나라 밖에 없어요.
한국에서 상시 5만 명의 전투부대를 보낸 것과 달리, 이들 나라에서 보낸 병력은 포병. 공병. 병참을 아울러 1000명 내지는 최고 3000명 정도 였어요. 그 밖에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파병을 거절했어. 영국은 혈연적으로나 인종쪽으로는 역사적으로 미국의 전쟁 협력자가 아닐 수 없는 처지인데도 하지 못해 '유니온 젝'을 앞세운 의장대 6명만을 파견했어.
그때 그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이기고 돌아오라~" 이런 노래를 불렀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군인들이 받은 전투수당은 1966년 3월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합의한 일당(하사 1.9달러, 병장 1.8달러, 상병 1.5달러, 일병 1.35달러, 이병 1.25달러)과 지급한 일당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그 금액이 그대로 지급되었다고 하더라도 병사들이 받은 수당의 대부분을 ‘강제’로 송금하도록 했을 가능성이 있다. 송금수수료, 환전수수료만으로도 한국 정부는 큰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베트남에 파병된 다른 나라의 군인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은 보상을 받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미군의 23분의 1만 받은 수당.
한국을 베트남전 개입은 1964년 9월 소규모 비전투부대로부터 1973년 3월 완전히 철수하기까지 8년 5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공식적으로 5차에 걸쳐 파병되고, 평균 5만 명 수준의 병력을 유지했으며, 교대 근무를 통해 베트남의 파견된 한국군의 누적인원 32만 명에 달했다.
한국군은 베트남전에서 월맹군 4만 1000여 명을 사살하고, 약 5000명이 부상자를 냈다.
통일된 베트남이 왜 가난한가?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쑥밭'이 되었다면, 베트남은 '자갈밭'이 되었다. 미국과 '동맹군'들이 10년 전쟁 기간에 베트남 땅에 퍼부은 폭탄은 500만톤이다. 지상 전투에서뿐만 아니라 포탄과 로켓에서 700만~ 800만 톤, 합계 1200만톤이 넘는다. 북한 지역을 집안 체 없이 없도록 초토화했던 미국의 폭탄은 50만톤에 조금 못 미친다. 베트남은 북한에 비해 무려 10 배나 많은 폭탄 세례를 받은 셈이다. 또 태평양전쟁 중 일본 본토에 대한 초토화라고 했던 폭격이라야 16만여 톤(원자폭탄 제외) 지나지 않았다. 베트남에 23분에 1이다.
이런 폭격 뒤에 무엇이 남을 수 있으며 무엇이 자랄 수 있겠는가. 베트남이 가난한 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누가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우리는 참전국가로서 미국을 도와 이 파괴를 그들에게 남겨진 책임의 일부를 외면할 수 없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전쟁 3년 동안 일본이 미국의 전쟁노력에 협력함으로써 '전쟁 특수'를 누리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을 부도덕 하다고 비난한다. 다른 민족의 불행을 이용해 돈벌이를 했다고 규탄했다. 일본이 이 한국에서 한국 전쟁에서 번 돈은 21억 3800만 달러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일본의 '부도덕' 성만을 욕할 자격이 있을까? 한번 반성해 볼 일이다. 물론 한국군의 피해는 컸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참전한 전쟁의 결과로 사망자 190만, 부상자 450만, 난민 900만의 재화를 입은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는 역사의 언덕 뒤로 사라져간 인물 리영희. 평전을 읽으면서 참

치열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와일드 . (0) | 2024.01.23 |
---|---|
📚 시베리아방랑기 (1) | 2024.01.21 |
복수초. (1) | 2024.01.16 |
변동림과 김향안은 동일인물. (3) | 2024.01.09 |
산에 사는 맛. 김향안作. (2) | 2024.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