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시베리아방랑기

no pain no gain 2024. 1. 21. 15:01

나의 시베리아방랑기. 백신애 作

1908~1936.
짧은 생애를 마친 여류 소설가.
어려서 이모부에게 소학. 중용. 대학 등을 학습하고 대구사범에서 1년 간의 강습하여 3종 훈도가되어 1년 8개월의 교원생활.
결혼과 이혼. 그리고 몸속에 칼을 대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젊은 나이에 췌장암으로 급사.
그런데 36년에 사망했다고 하는데 39년까지 계속 글이 실린 이유는 뭘까? 유작?

나는 어렸을때 '쟘'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개구쟁이 오빠는 언제나 "야 잠자리" 하고 나를 불렀다. 호리호리한. 몸에 눈만 몹시 컸기 때문에 불린 별명이었다. 나는 속이 상했지만 오빠한테 싸움을 걸 수도 없어서 혼자 구석에서 홀짝홀짝 울곤 했다. 울고 있으면 어머니는 또 울보라고 놀리셔서 점점 더 옥생각 하여 하루 종일 홀짝거리며 구석에 쪼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벽에다 손가락으로 낙서를 하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했다.

내가 홀짝거리던 그 구석 벽에는 세계지도가 붙어 있었다. 그럴때 누군가가 러시아를 가리키며
"여기는 북극이라 사람이 살 수 없단다. 낮에도 어두컴컴하지. 그리고 오로라를 볼 수 있단다"
그때부터 구석에 붙어있는 세계지도는 내 생활의 전부인 듯이 생각되었다. 북극, 오로라만이 아니라 레나강도 찾아내었고 바이칼호도 우랄산도나의 아름다운 꿈속에서 동경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언젠가 꼭 레나강에 조각배를 띄우고 강변에는 자작나무로 된 통나무집을 짓고 눈이 하얗게 덮인 설원을 걸으며 아름다운 오로라를 바라볼거야! 그리고 초라한 방랑시인이 되어 우랄산을 넘을땐 새빨간 보석 루비를 찾아 볼가의 뱃노래를 멀리서 들을거야"

세월은 흘러 열아홉 가을. 어머니에게는 병든 친구의 임종을 지킨다고 거짓말을 하고 원산에서 배로 웅기까지 간다. 배에서 내리지 않고 5시간을 숨어서 있다가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밀항자가 된 것이다. 삼등실보이에게 들켜서 애원을하고 먹을것과 숨겨주는 가운데 열 한시간 후. 블라디보스토크에도착. 사례로 삼십원을 건네고 배에서 탈출하다가 발각이 되어 한달간 유치장에 구금. 다시 배에 태워져 세시간. 또 7일간 구금.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 검은 빵을 한 근 씩 나눠주고 대소변을 넒은 들판에서 정해진 변소가 없이 아무데나 들똥을 싼다.
그리고 추방. 병사가 가르쳐준 조선농가를 목숨걸고 숲을 지나 얼어붙은 강을 건너서 찾아간다.

"또각또각"
바람 소리에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그 병사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다리를 끌며 밖으로 나왔다.
"야"
틀림없는 그 병사였다.  그는 말에서 내리자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몹시 기뻐해주었다.  그는 밀항 자를 국외로 주방 해야 하는 자신의 임무를 어긴 것이다. 그날 밤 병사는 농가 주인과 보드카를 마시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를 꼭 잘 부탁한다고 당부를 하고는 새벽에 떠나가 버렸다. 나는 눈물을 흘리고  그에게 감사를 전하고 작별했다.

숲 저편에 떠오르는 아침해를 받으며 우물물을 긷고 달을 바라보며 들똥을 누고...... 그러는 사이 한 달이 지나가 버렸다. 농가 주인의 호의로 여권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쿠세레야 김' 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블라드 보스토크에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배에서 내려 사람 물결에 휩쓸리며 도시 입구에서 자 양두마차( 이것이 포장마차 이리라)가 달려가는 것이 정말로 러시아 다운 느낌이었다.
오늘 밤 어디서 잘 지 알 수 없는데( 今夜不知何處宿) ,
광활한 만지사막에 인연마져 끊겼구나( 平沙萬里絶人煙 ) .
나는 한시의 심경으로 하염없이 도시 입구에 서 있었다. 내지였다면 몇 번이나 불심건문을 받았을 텐데 이곳에 순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초라한 여자가 길가에 우두커니 슬픈얼굴로 서 있어도 그들 눈에는 다만 심각한 사상의 '정적' 속에 빠져 있는 것이겠지, 정도 밖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계속 서 있던 내 쪽이 오히려 견딜 수 없어서 걷기 시작했다. 아무리 걸어 봐도 갈 곳은 없다.
"아! 방랑!"
내 눈은 감상적인 눈물에 젖어 이 감상을 한 수의 시에라도 담고 싶었다. 정말로 나라는 여자애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무서운 여자였다. 도대체 어찌할 셈이었던가? 지금 돌이켜보면 몸살이가 쳐진다. 말도 모르고, 아는 이라고는 강아지도 한 마리도 없는 타국의 거리에서 돈이라곤 종이에 싸서 가지고 있는 십삼 원 육십 전뿐인데, 아아! 도대체 어찌할 셈이었을까!

"다만 너무 뜻밖에 죽음을 선고받았음이 슬픈 듯 하다. 이 마음은 몇만 년을 살았더라도 어느 때나 한번은 경험할 것이 되니 그리 슬퍼할 것이 못 되는지도 모른다.
30여 년에 내 일생을 지휘해 온 내데 영혼을 가지고 있을 집 이 육체가 어그러지고 말 것이- 아니하루도 편히 있을 수 없게 항상 병약한 집이었음이 미안할 따름이다".

"수술을 하여 가슴속에 화( 火) 덩어리를 집어내지 않으면 위태하다"
라는 의사의 선고를 받은 나다.
그러나 내 육체는 신비로운 내 영혼의 집이었고, 옷이었으니 과학자의 손에 맡겨져서 기계처럼 뜯어고치고 가면서 라도 살려는 것은 인간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나는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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