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변동림과 김향안은 동일인물.

no pain no gain 2024. 1. 9. 11:23

변동림과 김향안은 동일인물.

월하(月下)의 마음.
추상화가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의 수필집 이름인데... 왜 그리 유명할까?
우선 김향기는 우리가 익히 아는 이상시인과 결혼했고, 호적이름은 변동림卞東琳.

"나의 언니는 어머니를 닮아서 살결이 희고 눈이 크고 아름다운데 나는 닮기는 닮았으나 머리가 빨갛고, 살결이 까매서 곧잘 아버지가 너는 저 다리 밑 숯장수한테서 데려왔다고 놀려서, 나는 울음을 터트리면 아무리 아버지가 다시 빌어도 언제까지 노여움으로 그칠줄 모르고 울었다."

"이상시대(李想時代)는 여성의 가치관이란 중세기에 머물러 있던 때라 사랑한다는 것은 소유한다는 것 외에 별 의미를 갖지 않았던 모양으로, 여성의 자유 사상은 곧 방종(放縱)으로 해석되고 순수한 언행은 의심을 자아냈고 그래서 불안하고, 불행하고, 고독하고, 그랬던 것은 아닐까. 사랑이란 믿음이다. 믿지 않으면 사람은 서로 사랑할 수 없다. 믿는다는 것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거다. 곧 지성(知性)이다."

"나의 아버지는 늘 출타하고 집에는 이따금 계셨다. 아버지가 집에 계실 땐 오빠와 언니가 매 맞는 광경이 벌어졌다. 천자(千字)를 배우면서 매 맞는 오빠와 언니의 어깨 너머로 나는 학교에 가기 전에 천자 소학(小學)을 떼었다. 언니는 학교에서 낙제를 하고 아버지한테 매를 맞고 어머니는 그것을 말리려고 했고 집안의 평화가 언니 때문에 깨어진다고 생각돼 나는 언니를 싫어했다. 자연히 오빠와 가까웠다."

나의 아버지 초계(草溪) 변씨(卞氏) 나라 국國 구슬 선璿 구 한국 시절에 일본 동경에  유학, 당시에 드문 의과 대학 지망생으로 그 시대의 의사는 천직으로 대우 받았다. 중퇴하고 귀국 고종 말 년 중추원 참의(參議)직에 잠시 머물고 한일합병 후는 무직."

"백화점 장식부에서 일을 했던 오빠는 집에 오면 여러 가지 화장품에 포스터를 만들어갔다. 나는 그것을 요령 있게 도와서 오빠를 기쁘게 했다. 나는 그때 독립할 생각을 했고 여학교를 마치면 동경에 가서 고학할 결심을 했다.
그 무렵 오빠는 친구와 동업으로 다방을 경영했다. 이상과 친구가 되어 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러 하루 한 번씩 다방에 들렀다."

"오빠의 소개로 이상을 만났을 때 이상은 밤색 두루마기의 한복차림이었고 쭉 한복을 입었다. 후리한 키에 곱슬머리가 나부끼고  수염은 언제나 파랗게 깎았다. 우뚝 솟은 코와 세 꺼풀 진 크고 검은 눈이 이글거리듯 타오르고 유난희 광채를 발산했다. 수줍은 듯 홍조(紅潮) 짓는 미소가 없으면 좀 무서운 얼굴이었을 거다. 그러나 언제 수줍은 듯 사람을 그리는 듯 쓸쓸한 웃음을 짓는 모습과 컬컬한 음성이 나의 기억에 남아 있다.
이상이 폐를 앓았다고 했지만 기침하거나 각혈하는 것을 본 일이 없다. 나는 건강한 청년 이상 하고 결혼했다. '오감도(烏瞰圖)'와 '날개'를 발표한 후다."

"나는 그 비슷한 허허벌판을 이상을 따라서 한없이 걸어갔다.
한없이 걸어간 곳에 방풍림이 있었다.
우리는 방풍림 숲속을 끝에서 끝까지 걸었다.
나는 날마다 이상을 만났다.
" 우리 같이 죽을까?"
" 어디 먼 데 갈까?"
이것은 상의 사랑 고백이었을 거다. 나는 먼 데 여행이 맘에 들었고 또 죽는 것도 싫지 않았다. 나는 사랑의 본능보다 오만한 지성에 사로잡혔었을 때라, 상을 따라가는 것이 흥미로웠을 뿐이다. 그래서 약속한 대로 집을 나왔다."

"이상은 기본 생활 도구와 침구를 마련해 놓고 신부를 맞을 준비를 해놓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상하고 결혼했다. 낮과 밤이 없는 밀월을 즐겼다. 나는 우리들의 밀월을 월광(月光)으로 기억할 뿐이다."

"이상은 천재다. 천재는 천재로 탄생하는 거다. 천재는 쉴새없이 생각하고 생각을 창조하기 때문에 속인들 눈에는 말없는 아이, 우울한 소년으로 보이는 거다."

3개월의 결혼생활. 이곳저곳에서 다방과 술집을 경영했지만 실패하고 동경으로 간다. 스스로 여비를 마련해 찾아간 일본.

"나는 열두 시간 기차를 타고 여덟 시간 연락선을 타고 또 스물네 시간 기차를 타고 동경에 닿았다. 동대 병원 입원실로 직행하다. 이상의 입원실, 다다미가 깔린 방들, 그중의 한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상이 거기 누워 있었다. 인기척에 눈을 크게 뜨다. 반가운 표정이 움직인다. 나는 무릎을 꿇고 그 옆에 앉아 손을 잡다. 안심하는 듯 눈을 다시 감는다. 나는 긴장해서 슬프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살릴 수 있나, 죽어간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상은 눈을 떠보다 다시 감는다. 떴다 감았다. 귀에 가까이 대고 "무엇이 먹고 싶어?", "셈비끼야의 메론." 이라고 하는 그 가느다란 목소리를 믿고 나는 철없이 천필옥에 메론을 사러 나갔다. 안 나갔으면 상은 몇 마디 더 낱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데. 멜론을 들고와 깎아서 대접했지만 상은 받아넘기지 못했다. 향취가 좋다고 미소 짓는 듯 표정이 한 번 더 움직였을 뿐 눈은 감겨진 채로. 나는 다시 손을 잡고 가끔 눈을 크게 뜨는 것을 지켜보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다음날. 이미 식어버린 이상의 손을 잡고 아쉬운 삶을 회상한다.

27세의 생애로 마감한 이상. 변동림은 유해를 들고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을한다.

"이상은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는 충분한 시간이다. 인간이 팔,구십 년 걸려서 깨닫는 진리를, 4분의 1의 시간에 깨달아 버릴 수 있는 경우,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천재라고 한다. 천재는 또 미완성(未完成)이다. 사람들은 더 기대하기 때문에."

그리고 몇년. 김향기로 개명을 한 뒤. 44년 이혼하고 딸이 셋인 김환기를 만나 재혼을 한다.

김환기와의 삶에서 주부로서 살림이 어렵다는 표현이 있으나 그것은 남편의 개성적인 성향과 그 시대의 가부장의 체면같은 것. 첨단의 엘리트 상류사회를 걷는다. 안좌도와 서울 성북구. 부산피난과 마포 생활. 미리 떠난 파리. 공부하면서 남편을 부른다. 같은 예술인들과의 교류. 피카소와 기타등등.
그리고 주류를 이룬다는 미국으로 가서 수많은 전시회와 국제전. 74년 김환기와 사별후에 본인도 그림제작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낸다.
유작과 사후 전시회에 온 정성을 기울이고 살다가 김환기의 아내로 생을 마감하지만 정작 김향안은 '수필가'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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