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바다에 사는 사람들.

no pain no gain 2023. 12. 12. 15:55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 하야마 요시키 作.

갑판장! 딱하기도 해라. 나이는 먹어가지, 자식은 줄줄이 사탕이지, 생활은 어렵지, 마누라는 병에 걸려 누워있지. 다들 이 소심한 대머리 아저씨를 따르기로 했다.

바람은 어제만큼 차갑지 않았다. 구로시오 해류의 영향인지 갑판 위에도 있어도 뺨을 칼로 에는 듯한 매서운 추위는 느끼지 못했다.

하급 선원들은 요코하마에 도착하면 각자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공상에 빠져 있었다. 갑판 위에 있을 때는 육지에 발을 딛기만 하면 온갖 쾌락이  자신을 기다리리라 착각하기 마련이다.  자신들이 꽁꽁 묶인 채로 노예취급을 당하고 자유 빼앗기고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이유는, 육지와 갑판 사이에 가로놓인 바다 때문이라고 은연 중에 믿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감옥에 갇힌 죄수가 붉은 벽돌로 만든 높다란 담벼락 저 너머에 마음 내키는 대로 살 수 있는 것은 있는 절대적인 자유가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고 믿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죄수들이 꿈꾸는 자유는 감옥을 에워싼 벽 너머에서도 그림자도 찾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갑판 위에서 상상하는 자유와 행복이 육지에 있을리 만무했다. 선원들은 상륙할 때마다 뼈저리게 맛보았다. 육지에 오르면 자신의 지갑을 땅바닥에 내던지고, 입고 있던 꾀죄죄하고 볼품없는 옷을 갈기 갈기 찢고, 노동으로 거칠어져 발꿈치처럼 되어버린 두 손을 살 갗을 싹 벗겨버리고 싶어진다. 꿈에 그리던 육지에 발을 디뎌도 자유와 행복은 그들을 찾아오지 않았다.

노동자는 임금을 받을 때에만 자유와 행복, 그리고 인간성이 허락되며,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그런 것들을 절대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이 쇠고기를 먹듯이 인간이 인간을  먹어 치우는 시대가 이어지는 한, 노동자는 자신의 목숨이 멍에 밑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하급 선원들은 잠깐 그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도 '나 혼자 설치돼 봐야 말짱 헛일이지 까까머리 중도 여자를 사는 세상 아니냐. 어차피 어디 가나 인간 쓰레기 취급인 걸 뭐'라며 사회가 자신들에게 강요하는 직분과 생활 범위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만다.

그들은, 육지에서 땅을 밟고 일해도 여기보다 월급이 짭짤 할 텐데 왜 바다 위에서 이런 개고생을 해야 하나, 나도 육지에서 일할 순 없을까, 아니야 도저히 못해, 일자리가 있을리 없어, 하며  의레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갑판장이 돌아왔다. 그는 "오늘은 특별히 쉬게 해주지" 라는 고급 선원의 말을 전했다.
갑판장의 보고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저 순순히 받아들이며 좋아했다. "사람을 대체로 뭘로 보고 특별히라니" 기쁜 듯이 소리칠 뿐이었다. 선원들은 하나같이 무엇을 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 채 각자의 침대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겨우 얻어낸 이 소중한 휴일을 거반 잠을 자며 보냈다. 으레 그렇듯 이날 역시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보금자리에 기어들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졌다.

절실하고 유일한 욕구를 오로지 잠으로 해소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선원들이 얼마나 고된 노동으로 혹사당하고 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노예근성으로 물들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그 작은 우물에 갇혀있다는 자각마저도 절대 생각하지 못 한다.
그렇게 인생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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