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술과 나.

no pain no gain 2023. 12. 6. 12:27

나와 술. 와카야마 보쿠스이 作.

내가 태어난 곳은 기후가 따뜻한 지역이라 살모사 같은 독사 종류가 꽤 많았다. 독사에 물려죽은 사람과 소주를 먹고 죽은 사람 수가 비슷하다고. 그래서 이 지역 여자들은 독한 소주를 1병 쯤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곤 했다.

나는 혼자 술을 마실 때마다 지극히 과묵했던 술친구를 떠올리곤 한다. 술버릇이 나와 아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술 한잔 마시는 데 상당히 마음을 쓸 때가 있다. 어떻게 하면 술을 가장 맛있게 먹을까 하고 생각할 때이다. 왠지 몸이 깔끔하지 않은 듯 싶을 때는 일단 목욕탕으로 간다. 그리고 어렴풋한 가로등 불빛 조차 조심하며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온다. 배가 조금 부르다 싶을 때는 산책을 한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걸어 기껏 마신 술기운이 사라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늘은 두부로 할까, 고기로 할까, 생선으로 할까? 또는손과 눈을 사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싫어 아무 안주도 없이 그저 홀짝홀짝 술만 마시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독한 술이 필요하다.

정류장의 의자나 공원 등 장소를 염두에 두고 갈 때도 있다. 도시에서 떨어진 들판의 풀밭이나 나무 그늘 같은 곳을 찾아갈 때도 있다. 모르는 사람이 모여든 가로등 불빛 아래 어두운 곳으로, 마치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마음을 품고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혼자 마실 때 드는 생각이다.

친구의 얼굴 보면 불쑥불쑥 술먹고 싶은 마음이 커질 때가 많다. 마음이 맞고 술버릇도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이런 마음이 더 강해진다. '어이!' 하고 인사하며 얼굴을 맞대면 일종의 애달픈 감정이 일어나 이런 욕구가 끌어오른다. 다만 얼굴을 보면 싫어도 같이 마셔야만 하는 것처럼 어느새 버릇이 되어버린다는 점이 유감이다.
서로 겨뤄보자는 마음이 부딪칠 때는 얼굴에 그런 마음이 드러나 좀처럼 숨길 수가 없다. 또 어쩌다 만났는데 왠지 서먹서먹할 술자리를 빌어 서로 마음을 따뜻하게 하려 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마음 씀씀이가 깊기 때문에 위에 말한 예와 조금 다르다. 연회 같은 곳에서는 술이 그저 도구로만 사용된다.

'술에 시간은 역시 밤'이라는 말에 나도 동감하지만 전적으로 맞다고는 하지 못한다. 이슬을 머금은 대지가 휴식하고 쾌청한 아침 해가 떠오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미풍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그런 아침은 어떤가?
뜨겁게 쏟아지는 햇살이 금속 같은 푸른 잎에 닿는 한 낯은?
집안에 틀어박혀 있어도 괜히 문 밖의 햇살에 피가 빨릴 것 같은 화창한 날은?
연기처럼 마음이 지쳐 있을 때는?
눈이 내리는 새벽이나 비가 내리는 저녁 또는 어젯밤에 이어 떠오른 달이 아직 푸를 때도 좋다.
기차나 증기선 창가에 떨어지는 봄의 서리와 가을의 빛,  나는 정말 시간에 상관없이 술이 고프다. 요컨대 내 마음이 맑을 때, 간절히 뭔가를 바랄 때, 쓸쓸할 때 등 어느 때나 술이 마시고 싶은 시간이 찾아온다.

술의 종류도 경우에 따라 다르다.
나는 사케를 가장 좋아하지만 속이 타는 것 같은 독주 여야 할 때도 있다. 신선한 생맥주에 신이 날때도 있다. 얼굴을 담글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잔을 쉴 세 없이 들이킬 때도 있고, 도토리 크기의 잔을 놓고 5분이나 10분을 허비할 때도 있다. 강아지처럼 천방지축 난리를 피울 때도 있으며 반쯤 죽은 상태의 곰처럼 굴 때도 있고, 깊은 산에 깔린 이끼 위에 놓인 작은 돌 같은 때도 있다.

소복하게 눈이 내리는 밤, 차가운 진에 하얀 사과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향기가 짙어지는 가을산에 마른 장작을 피우고 한잔 하고 싶기도 하고, 선술집 탁주에 손가락을 빠뜨리는 적도 있다. 아라카와강 제방의 펼쳐진 푸른 풀밭에 쓰러졌다가 봄밤에 추위에 놀라 눈을 뜬 적도 있고, 성의 해자에 뛰어들어 친절한 수의에 수위까지 온통 물에 젖게 만든 경우도 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지금까지 꽤나 많은 술을 마셔댔다. 앞으로도 더 마실 듯하다.
과거에 술을 마시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가 나서서 마시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가 권해 마시는 경우이다. 후자는 앞으로 가능하면 피할 생각이다. 몸에 안 좋고 무엇보다 술에게 미안하다. 마시고 싶어 마실 때는,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정말 마음에, 영혼의 요구로 마신 경우가 많았다. 목이 말라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고, 있어도 맥주 정도이다. 앞으로 마음에 갈증이 나고 영혼이 고독을 외치는 일이 되게 없다면 술을 끊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마음이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태워 더는 어떤 욕구도 원치 않는다면 술을 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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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작가의 산문집 속의 글 이지만 느끼는 바가 크다. 1928년까지 산 43년의 생애에 술로 점철된 인생.
옛날에 중국 글중에 "내가 마신 술을 다하면 호수처럼 배를 띄워 물놀이가 가능하다" 는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또한 주지육림이란 성어가 탄생한 주왕은 또한 달기의 청을 받아들여 술로 채운 연못과 고기 안주를 매단 나무로 이루어진 주지육림을 만들어 수많은 알몸의 남녀들이 그 안에서 서로 쫓게 하고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益廣沙丘苑臺, 多取野獸飛鳥置其中. 慢於鬼神. 大聚樂歡於沙丘, 以酒爲池, 懸肉爲林, 使男女裸相逐其間, 爲長夜之飮.)」

사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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