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소금.

no pain no gain 2023. 12. 8. 13:05

길 위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박진作.

소금의 고마움.
아버지 세대들은 대부분 해방 전후 아니면 한국전쟁 전후에 태어났다. 그 무렵은 너희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참담했다. 대부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잠잘 곳도 없었다. 부모를 잃은 아이도 많았고 거리에 버려진 아이도 숱하게 많았다. 의무교육이라고 했지만 초등학교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 못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집안일을 돕지 않고 학교에 간다고 부모에게 손찌검을 당하면서까지 몰래 학교를 다녔던 이도 있었고,  계집 아이가 무슨 중학교 냐고 남에 집 또는 맏이를 위해 진학하지 못하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던 둘째 셋째도 있었다. 등록금을 못 내 학교에서 내쫓긴 이도 많았다. 새 교과서로 공부한 사람은 도시의 일부 부위층뿐이었다. 해마다 새학기면 청계천 헌책방을 돌면서 교과서와 참고서를 구했다.

그나마 학교를 다녔던 사람은 행복한 축에 들었다. 고아들은 해외 입양되기도 했고, 식모, 트럭조수, 버스차장, 넝마주이, 구두닦기, 양담배 팔이 등으로 집 안을 돕고 자신의 주린 배를 채웠다. 정규학교는 돈과 시간이 없어 못 다니고 전수학교나  <통신강의록>으로 혼자 공부한 이들도 많았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자식의 등록금을 마련을 위해, 적십자병원에다 피를 파는 사람도 있었고, 미군부대 철조망을 넘어 물건 훔쳐 파는 이도, 미군에게 몸을 팔아 부모를 봉양하고 동생을 공부시킨 심청과 같은 누이도 있었다. 남의 나라 전쟁터에 가면서 전투 수당을 많이 준다고, 그 돈으로 집에다 송아지 사준다고, 제대한 뒤 복학할 때 등록금 마련한다고 자원해서 월남 불구덩이로 떠난이도 많았고, 중동 건설 현장에 가서 한 밑천 마련해 온다고 떠난이도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영영 돌아오지 못한 이도, 장애인이 된 이도, 여태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이도 있다. 돈을 벌기위해 무작정 서울로 와 청계천 평화시장 다락방에서, 구로공단 후미진 공장 희미한 형광등 아래에서 한 푼이라도 더 벌고자 각성제를 먹어 가며 재봉틀을 돌렸던 이도 있었다.

이분들이 일부나마 너희 아버지 어머니의 옛 모습들이다. 대체로 사람은 올챙이 시절은 잊으려하고 또 숨기려 한다. 하지만 그때 가난은 너희 아버지 어머니 잘못이 아니고 시대를 잘못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들은 그 시절에 아픔이 너무 컸기에 그런 가난만은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불같은 집념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래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이다. 그때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가 모두의 꿈이었고 잘 살아보기 위해 전 국민이 피땀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살아온 아버지 세대가 요즘 너의 세대를 볼 때 이해가 안 되는 점이 한두 가지 아닌 것은 당연한 지도 모른다. 집안일은 돕지 않아도 좋으니 오직 공부만 하라고 해도 공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자꾸 밖으로만 나도는 너희들 보면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말씀은 너의 앞날에 대한 충고다. 이 세상 모든 아버지는 자기 자식을 가장 사랑한다. 아버지는 백사람의 스승 보다 낫고 자식을 아는 데 있어 아버지를 따른 사람이없다.

소금의 고마움은 그것이 떨어졌을 때 알 수 있고 아버지의 고마움은 돌아가신 뒤에 안다.

그렇다.
그리고 지구는 돈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나키스트. 박열&가네코 후미코.  (0) 2023.12.14
바다에 사는 사람들.  (0) 2023.12.12
훈자 이야기  (2) 2023.12.07
술과 나.  (1) 2023.12.06
굿. 전상국 作.  (3) 2023.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