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아시다시피. 천운영 作.
스물세 개의 눈동자에서
어느날. 아이가 없는 집. 아내는. 어디서 개 한 마리를 주워왔는데 눈치보고 집에서 키우자고한다.
남자의 씨가 문제인 집. 보통 한 방울에 1억 개정도 되야하는데. 3천 개도 안 되는 정자라 문제가 되는 남자.
"내가 개를 키우자고 했지. 개 아빠가 되겠다고 그랬나?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이지. 개를 키우면 개 주인이지. 엄마 아빠가 다 뭐야. 그게 대체 어느 족속 언어야? 개 족보도 아니고 개 아빠가 다 뭐야. 그렇다고 뭐라 하지도 못 하고 또 뭐라고 해. 나를 개 아빠라고 부르지 마. 당신이나 개 엄마 해. 이렇게 말해? 한창 엄마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아내한테? 그럴 순 없잖아요. 얼마나 엄마가 되고 싶었으면. 내 탓할 만도 한데 싫은 내색 한번 없이. 참 착한 여자지. 아내가 좋아하는데 그냥 아빠 소리 듣자 그랬어요. 나도 가끔은 아빠한테 와라. 아내가 좋아라 하니 어쩔 수 있나.
그런데 이놈의 불쌍 병이 문제야. 관음보살 이마가 시도 때도 없이 불쌍타령을 하는 거지. 한 마리 데려올 때마다 이래서 불쌍하고 저래서 불쌍하고. 물론 불쌍하기도 불쌍했지. 아내가 데리고 온 놈들은 하나같이 병신 들이었으니까. 다리 없는 놈 피부병 걸린 놈 털이 홀라당 빠진 놈. 아주병신새끼들은 다 모아놨단 말입니다. 어디서 그런 놈들만 나타나 아내 눈에 띄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에요. 나는 암만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더만. 그렇게 한 마리 두 마리 여섯 마리가 됐어요."
"지옥이 따로 없지. 똥이며 오줌이며 개털이며. 암캐 들이 번갈아 흘려데는 멘스는 역겨워 못 봐줄 지경이죠."
"아내가 식물을 키웠으면 어땠을까요? 살아 움직이는 동물 말고. 가지 뻗고. 잎 넓히고. 꽃피우는. 식물들. 아내가 키운 것이 식물이었다면. 집안은 오줌 냄새 털 냄새가 아니라 꽃향기로 가득했을 텐데. 불쌍한 식물들도 많잖아요. 병든 꽃도 있고. 부러진 소나무도 있고. 그것들 가져다가 보살피고 물 주고 그랬으면. 그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꽃놀이 좋아하는 사람이 언제부턴가 꽃 타령도 안하고. 한 해도 안 빠지고 갔었는데. 여기가 이렇게 다 꽃방석인데."
"아직도 눈에 선해요. 나를 쳐다보던 개새끼들의 눈길이요. 그 눈은 뭘 보고 있었던 걸까요. 그러니까 그게 둘 넷 여섯 여덟 열 스물. 스물넷 아니 스물셋."
눈알이 하나뿐인 시츄까지 스물세개의 눈동자와의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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