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생강. 천운영 作.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도피생활을 딸의 입장에서의 소설이다.
그는 책할부 판매사원을 하다가 어느날 택시강도를 잡고 경찰에서 상을받고 그 길로 경찰이 되었다.
그는 교도소에서 목회자의 길을걷고 목사가 되었다가 나중에 파직을 당했다.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철저하게 파괴시킬수있는 기술을 내안에 간직하고 있다는게 야누스 적인 두 얼굴이다.
딸은 대학생이 되었고 엄마는 미용실을 운영한다. 한켠에 숨겨진 다락방.
고문기술자가 아버지인줄 모르는 딸.
대학에가서 남자친구를 사귄다.
" 어느 순간부터 어떤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어떤 움직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감각은 모든 촉수들은 단 한 곳만을 향해 있었다. 민의 손. 그 손을 따라 내 몸이 움직였다. 그 손이 움직이면 내 손이 움찔거렸다. 그. 손이 가만있으면 침이 넘어갔다. 그 손이 깍지를 끼면 발바닥이 간지러웠다. 그 손이 깍지를 풀면 귀 울음이 울려 들렸다. 그 손이 멀어지면 숨이 막혔다.
입술을 달싹이며. 민의 이름을 불러 본다. 따스하다. 이름을 끌어안는 것만으로도 살을 맞댄 듯 온기가 전해진다. 가만히 가만히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들숨과 날숨을 고르고 심장에 박동을 맞추고. 부드럽다. 요람을 흔드는 감미로운 손길에 슬그머니 빠져드는 기분 좋은 잠처럼. 경이로운 눈길에 화답하는 꿈결의 미소. 아련한 허밍으로 새어나오는 나지막한 신음소리.
민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을 벌리고 손샅으로 밀고 들어오던 그 첫 순간. 쌈빡하게 감아 오르던 전류. 저절로 새어나 오던 그 옅은 한숨. 풀무질 소리 같기도 하고, 빙긋 웃을 때 새어나오는 웃음소리 같기도 하고, 언 손을 비비며 내뿜는 입김 소리 같기도 한 옅은 숨소리. 생각만으로도 배꼽이 저릿하며 몸에 전기가 오른다. 그리고 어김없이 움찔거리는 내 몸은 가장 깊숙한 그곳.
다락방에 누워 그곳에 슬그머니 손가락을 살짝 대본다. 정말 움직이고 있다. 움찔움찔. 규칙적으로 움직였다가 멈추길 반복한다. 좀더 안쪽으로 손끝을 넣어본다. 촉촉하고 부드럽고 몽롱하다. 나는 내 몸속에 이렇게 신비로운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곳은 새벽 숲 같다. 새들이 깃을 털고 꽃봉오리가 터지고 이슬방울이 맺히는 새벽 숲. 끝없이 펼쳐진 갯벌 인지도 모른다. 여기 깊숙한 곳에 제 배를 밀고 빨판을 움츠리고 살을 벌리며 움직이는 생물들이 산다. 이곳은, 우주다. 하나의 세계가 폭발하며 빛을 내고, 또 하나의 세계가 그 빛을 끌어당긴다.
내 몸에 축제가 벌어진 것 같아. 생크림처럼 몽롱하고, 불고데처럼 뜨겁고, 홍옥처럼 새끈한 내 몸의 축제. 내 몸 깊숙한 곳에서 시작된 떨림은 배꼽을 지나 명치뼈 짓누르고 목구멍까지 단번에 치 올라온다. 아......이런 느낌.
소느라치게놀라 몸을 일으킨다. 몸이 바르르 떨리며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힛.
데모대의 행렬. 발밑에 밟힌 사진의 주인공이 아버지라고 밝힌순간 모든것들이 끝난다.
" 저것은 내 아빠가 아니다. 저것은 짐승이다. 침을 질질 흘리며 송곳니를 드러내고 우르릉거리는 성난 짐승이다. 아니다. 저것은 짐승이 잡아놓은 썩은 고기다. 눈알이 빠지고 내장이 파헤쳐진 먹다 남긴 고깃덩어리. 아니다. 저것은 썩은 고기에 달려드는 파리떼다. 윙윙윙윙 더러운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아니다. 저것은 파리가 까놓은 구 더기다. 살을 뚫고 꾸물꾸물 기어나오는 징그러운 구더기다. 썩은내가 난다."
"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둠이 되게 남은 모든 온기를 가져갔다. 지금 나를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어둠과 추위와 허기가 아니다. 외로움이다. 바닥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다. 누군가 나를 지켜봐주는 시선이 필요하다. 뼈속지 스며드는 외로움이다. 바닥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다. 쇠종소리가 울리기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딸애는 여직 소식이 없다. 아내 웃음소리가 그립다. 뭔가 나를 지켜봐주는 시선이 필요하다. 계집애의 차갑고 냉랭한 시선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질타하고 꾸짖고 책망하는 목소리라도 들려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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