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손님. 윤순례作
별빛보다 멀고 아름다운.
선화는, 23살에 청도의 일식집 술상에 앉아 번 돈으로 한국에 가다 잡혀 북송되고, 감옥살이를 하다 건강을 해치고, 죽을 힘을 다해 또 다시 압록강을 넘었다가 내몽골 오지에 팔려 20살이나 많은 한족 남자와 살며 원치 않는 아이를 낳았다고 말하면서도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신용불량자가 되고 피붙이들마저 등을 돌린 후에 콩팥 하나 팔아 마련한 돈으로 밀항선을 타면서 종우는 세상이 보였다. 70년생 김원철의 공민증을 손에 넣는 기회를 기적으로 만든 것도 어둠의 밑바닥이었다. 썩은 생선 냄새가 진동하는.. ...
눈 속에 칼날이 박힌 듯 날카로웠던 남민 지위 심사위원들 앞에서 탈북자 김원철 이 살아온 세월을 늘어놓을 때 종우는 눈물을 쏟았다. 추방을 당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고국을 등지고 나온 김원철과 다르지 않았기에 눈물은 뜨거웠다. 진실과 무관한 눈물의 이력도 알게 되었다. 강제 북송의 위험이 있어 왼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진술하는데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서울역 다리 밑에서 자리다툼을 벌이다 싸움이 커져 몸이 성한 곳이 없는데도 진통제 조차 먹지 못했던 밤이 떠올랐다. 연길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장에서 일하다 머리를 다쳐 보름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거짓말도 술술 나왔다. 사고이후 부분부분 기억이 끊어져 고향도, 가족도 전연 떠오르지 않아 수차 자살 시도했다고 말할 때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손에 쥔 공민증이 있어 그 모든 거짓말은 의미가 있지도, 없지도 않았다.
김원철에 대해 먹통 처럼 캄캄했지만 파리한 낯 빛과 극한의 슬픔을 맛본 자의 표정만은 자신과 견줄 바 없이 닮아 있어 종우는 난민 심사위원들 앞에서 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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