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 숨겨진 남덕유산
산행 들 머리가 육십령 고개. 옛날 전설에 의하면 고개가 가파르고 험해서 도적떼가 많아 주막에서 몇 일을 머물러서라도 60명이 넘어야 이 고개를 넘어갈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 오늘은 남도의 명산에 이름 올린 몇 안 되는 남덕유산 할미봉을 향해 겁니다.
가을 날 이면 들꽃 가득한 고즈넉한 산길을 호젓하게 걸어가는 나그네의 넉넉한 발길을 꿈꾸며 한 줄기 불어오는 바람에도 가을 향기 풀 냄새가 옷 속에 배어들도록 언제나 아련한 향수를 그려봅니다.
오늘이 딱 걷기 좋은 그런 날이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마치 환영이라도 나온 듯 몇 발자국 걷다 보면 보이는 구절초 하얀 꽃. 약한 새벽바람에 흔들리다가 꽃잎 몇 개 떨구고 가녀린 듯 피어있는 누님 같은 꽃. 왠지 모를 청초하면서도 친근함이 묻어나는 정서가 진하게 베어 나옵니다.
방향을 가늠하지 못할 만큼의 안개 가득한 산. 바람만 불어준다면 최상의 조건이련만, 능선을 타고 몇몇이 나뉘어진 팀이 되어 길 양편에 무성하게 자란 조리대 풀 숲을 스치면서 가는 데, 산 고개 하나 넘으면 그 만큼 내려가고 가끔 언뜻 보이는 햇살과 잠시 걷히던 안개 속에서 남도의 명산 덕유산자태를 잠깐씩 느낄 뿐이다.
할미봉을 넘어 서봉 가는 길. 어느 능선에선가 스쳐가는 안개 속에 언뜻 보이는 기울어진 바위. 저쯤에 대포바위가 있겠거니 했는데, 아마도 길다란 바위가 부러져서 기울어진 모양새가 마치 대포처럼 보인다.
작은 고개를 몇 개 넘고 올라서면 또 내려가는 계단 참이 가파르게 열려있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사이 땀이 흘러 뚝뚝 떨어지는데 이때 필요한 신선한 바람이 그립습니다.
산행을 준비하려고 새벽 5시에 요기를 하고 왔으니 허기가 질만도 하여 쉬어가는 참에 막걸리 한 잔 들이키고 그 힘의 여력으로 고개를 넘는다.
운무 속에 가려진 서봉. 이젠 좀 쉬어갈까 하고 자리잡아 물 한잔 마시는데, 앉은 자리가 명당이었던지 바위 위쪽에 자리잡은 야생초가 무더기로 보인다.
자잘한 이끼를 깔고 보기 귀한 일엽초가 무더기로 있고, 그 주변에는 센 바람의 영향 탓인지 바위 채송화가 크질 못하고 손톱만하게 모여있는 뒤편으로는 바위취까지 꽃을 매달고, 약간 응달 진듯한 바위 벽에는 비비추 이파리가 조화롭게 얽혀있는 듯 했으나 그 작은 배치도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다울 뿐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타인에게서 그 사람의 장점을 찾아내고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열린 생각과 따뜻한 대화를 나눌 줄 아는 마음. 이게 진정한 유토피아의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개안(開眼)이 아니련지요?
산행을 다니면서 산책 가듯 쉽게 넘어가는 명산이 어디 있으랴 많은 그래도 정말 힘들고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요즘 들어 훈련하는 것을 게을리 했더니 바로 표시가 나는구나. 안개를 밟고 올라선 서봉.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안개뿐이다. 정성 들여 싸준 도시락을 먹고 철계단으로 이어진 남덕유산 가는 길로 접어드는데, 바닥은 질퍽 이고 나뭇잎은 안개를 머금고 있어서 빗물에 씻기운 듯 반짝인다. 1500미터 고산인지라 벌써 철 이른 단풍은 빨간 잎새를 떨구고 다가오는 계절을 준비한다.
돌밭으로 이어지던 남덕유산을 지나고 나서는 급격한 하산길이 이어진다.
오늘의 산행은 14Km. 7시간의 대장정이다 보니 몇몇씩 팀을 이뤄 줄지어 내려간다. 온 몸에 베인 땀이 흘러내리던 길 끝막에는 첫번째 다리가 나타날 즈음에 시원한 물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모두 내려가 탁족과 등목을 하고 그 시원함이 발이 시리도록 좋았는데, 어차피 젖은 옷. 티셔츠를 빨아 입고 보니 한기가 장난이 아니다.
도착지점 2Km 를 남겨두고 간간이 떨어지던 빗방울을 맞으면서 계곡길을 따라가다 보니 양악폭포를 만나고 끝 지점이다.
마을에 딱 하나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처음 계획에는 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했으나 먼저온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가서 안 된다고 해서 차선책으로 파전과 두부를 곁들여 막걸리 한 잔하고 떠나기로 한다. 그런데 이구동성으로 맛(?)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난 제안 하나. 내년 산행에는 완주군에 있는 무악산을 갑시다. 가볍게 3시간여 걸쳐 등산을 마치고 전국에서 내로라한다는 전주의 막걸리 촌을 가는 겁니다. 나도 아직 가보지 않은 삼천동 막걸리촌에는 막걸리만 주문하면 따라 나오는 안주가 20 ~ 30 가지라 하니 산행과 풍류를 동시에 즐기는 추억을 만들어 봄이 어떠신지요?
20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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