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팔공산 동봉에 서면

no pain no gain 2009. 9. 7. 17:20

팔공산 동봉에 서면

 

30여 년 전 팔공산에서 근무한 경험을 가진 나는 다시는 팔공산을 가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의 더께는 모든 기억들을 아름답게만 채색하는 습성이 있어 예전의 좋지 않은 기억마저도 모두 바꿔 버리는 오묘한 힘을 가지고 있나 보다.

 

동탑(?)을 철거하는 고도의 숙련된 기술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에피소드 몇을 소개할까 합니다.

첫 번째. 부족한 식수와 생활용수의 부족으로 불침번 근무자의 밤새워 눈을 녹이는 귀한 작업으로 알철모 하나의 물이라면 후임에게 물려가면서 세면과 세탁을 겸해서 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두 번째. 주말이면 초소근무자를 제외하고 단독군장으로 서봉에서 동화사까지의 선착순 구보가 이어지는데, 그 복불복의 결과는 1/3 가량 늦게 오는 사람의 아침 식사가 없다. 매번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데, 뛰어본 사람만 그 심정을 안다. 눈 비비고 일어나 정신 없이 산악구보를 하고 밥이 없어 주린 상태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점심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그 심정. 그리고 점심때 주어지는 비상식량 한 봉지. 구보 때 마다 순위는 바뀐다. 눈에 불을 켜고 바람처럼 동화사를 다녀온다.

세번째. 군견으로 근무하다 혁혁한 전과를 세우고 퇴역한 군견 지소중사가 있었는데, 군견관리병이 개밥과 자기 밥을 바꿔 먹는 기가 막힌 사연은 아는 사람만 압니다.

네번째. 당시 취사병이었던 사병 3명이 외박을 하고 귀대 중에 술을 마시고 부대를 찾지 못해서 얼어 죽은 2명을 찾느라 밤새 헤 메이던 그 날을 잊지 못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경산시 와촌면을 돌아서 어렵게 오른 산길 끝에는 하나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갓바위주차장이 있다. 믿음의 힘은 위대한 것이어서 마치 전설처럼 퍼져 있는 갓바위와 수능에 대한 기도를 연결시켜 논 어떤 테마가 이런 산골에 이처럼 많은 군중을 끌고 오게 하는 힘이 있는지?  장터처럼 북적 이는 가파른 계단 오르막에서 스쳐 지나치던 그 많은 영혼들의 맑은 눈동자를 잊지 못합니다.

 

소원은 마음 속에 있는 것. 끊임없는 염원으로 모두 소원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흘린 땀 방울만큼이나 약수로 보충을 하고 길고 긴 팔공산 종주능선을 따라 동봉으로 갑니다.

 

한동안 내리지 않은 비 때문에 먼지 푸석이는 그 길을 사암으로 이루어진 형태여서 자칫하면 발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떨어진 도토리 줍는 손길을 보면서 말 못하는 다람쥐지만 그네들의 식량만큼은 남겨 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어느 골짜기 능선에 서면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 주지만, 계절이 계절인지라 백로를 하루 앞둔 청명한 가을 하늘의 구름 한 점 없는 깊은 산 속의 그 아름답던 풍광은 아직도 그쯤이라는 표현만큼의 무더운 날씨로 가는 길 손의 발길을 잡는다. 초반부터 갓바위 오를 때부터 오버 페이스에 힘겨워 하던 윤여사는 그 동안의 운동부족을 실감하는 듯 발가락의 안으로 응축되는 쥐 내림 현상과 이어지는 대퇴사두근의 통증. 경련이 일어 순조로운 스피드는 무리인 듯 합니다.

 

천천히 가다 쉬다. 그리고 또 가고 인봉과 느패재를 거쳐 약수터 지점에 다다를 때까지 수시로 일어나는 하산의 갈등. 팔공산 종주 팻말에 쓰여진 번호를 하나씩 지나면서 수많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조금은 미련스럽다 할 고집으로 계단과 돌밭과 나무뿌리로 얽혀진 골짜기 그리고 다시 능선에 서면 산 아래로 내려다 보는 그 탁 트인 시원함에 조금씩 전진을 한다.

 

경상도 특유의 표준어로 여럿이서 대상 없는 싸움을 하는 듯한 그 사투리도 자세히 듣다 보면 무척이나 정감 어린 표현법이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강한 억양 속에 서로가 길을 비켜주면서 아무 안전사고 없이 무사 하산하기를 비는 마음에 즐거운 산행이 되기를 인사로 나눈다.

 

도마재에 도착. 과연 이 상태로 식수도 떨어졌는데 더 종주 산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스프레이 파스를 뿌리고 일어선 윤여사 동봉까지의 2.7Km 행군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려움. 온통 바위투성이로 엮어진 동봉(1167m)에서 눈 앞에 펼쳐진 나이키 부대의 돔형 콘센트와 그 많은 송신탑을 보면서 30년 전과는 전혀 다른 감회를 느낀다. 산 봉우리에 강한 바람에 섞여 눈이 오면, 마치 칼날처럼 송신탑 기둥을 타고 눈들이 쌓여서 해가 뜨기 전까지 보여지던 그 장엄하던 장관을 연출하고는 했는데, 아마도 한 겨울 다시 한번 와봐야 그런 장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기념사진을 남기고 돌계단과 너덜 길로 이어지던 하산 길. 몇 개의 암자를 거치면서 힘들게 내려선 동화사. 그리고 주차장까지 장장 7시간여를 산 속에서 헤메엿던 윤여사의 그 아프다던 대퇴사두근의 승리에 박수를 보냅니다.

 

돌아오는 길.

모두 힘든 산행을 증명이라도 하듯 조용하게 취침에 빠진 버스의 고요함 속에 버스전용차로의 시간오버로 그 막힌 길을 뚫고 11시가 넘어서 도착한 인천.

 

그리고 집에 오자 어머니의 생신을 위해 12시가 될 때까지 케익을 준비하고 기다리던 아들의 정성으로 다시 한 번 즐거웠지만 어렵고 힘들었던 하루를 내려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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