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서북능선을 종주하다.
서북능선길이 초행은 아니었습니다. 30년도 더 전에 젊다는 기백 하나로 남원에서부터 걸어서 주천면 어디쯤을 돌아서 산복도로가 없던 정령치를 지나면서 흐려진 하늘의 구름이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가 마치 비행기 수천 수만대가 떠가는 굉음으로 들려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싸락눈 내리는 그 능선 길에 하얗게 빛 바랜 추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땐 등산복도, 등산화도 없이 무지에서 출발한 열정 하나로 목숨을 담보로 무모한 도전의 길이었습니다. 지도 없이 헤매다가 불빛 보고 내려선 민가에선 간첩신고로 조사까지 받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새벽 2시. 이 시간에 식욕이 있느냐고 묻지만, 눈만 뜨면 아무것이나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세상을 포근하게 감싸 안은 밤.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 신발끈을 다시 매고 싸늘해진 날씨에 옷깃을 여미고 손을 들어 휘저으면 마치 별들이 두 손 가득 떨어질 것 같은 밤하늘을 보면서 만복대를 향한 산행이 시작됩니다.
고개 돌려 좌측을 보면 하늘의 은하수를 모두어서 땅에 뿌린 듯이 보이는 남원 시내 불빛이 아스라 하면서도 안온한 느낌으로 길을 따라 걷는 한 동안까지 아름답게 펼쳐진다. 모두들 고운 꿈 꾸시길……
헤드랜턴에 의지해 길을 찾지만, 정비되지 않은 자연림에 가까운 등산로에는, 더러는 키보다 훨씬 큰 조릿대 숲에서 얼굴을 스치는 댓잎소리와 한창때면 백화가 온 산을 뒤 덮을 나뭇가지들이 겨우 사람이 지나가는 통로만 남긴 터널을 이루어 자꾸만 옷깃을 부여 잡습니다.
옛말에 밤이슬 맞지 말라고 했는데, 나뭇가지에 매달린 물방울들은 영롱하게 비쳐 넓은 댓잎에는 마치 물로 씻어놓은 듯 반짝이는 그 길은, 마치 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환영이라도 하는 메시지처럼 보였지만, 더러 경사 급한 내리막 길에는 땅이 질퍽거릴 정도로 미끄러워서 여기 저기에서 넘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만복대 부근에는 급하게 걸어서 흘러내린 땀이 안개 속에 부는 바람까지 겹쳐 몇 발자국 앞도 분간하지 못할 영하의 날씨. 이런 상태가 조금만 더 유지된다면 따뜻한 공기와 차가운 바람이 만들어내는 지리산의 상고대가 신천지의 조화를 이루리라.
춥다 보니 더욱 빨라진 발걸음을 재촉해 여명이 밝아올 무렵에는 정령치 휴게소가 멀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느껴 안개 속에 밝아오는 일요일의 아침인데 아무리 둘러봐도 능선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정령치에 도착 잠시 쉬면서 한 순간에 식어버린 체온을 어묵을 넣고 끓인 라면국물에 추위를 달래고 머나먼 서북능선 종주를 위한 새 출발을 한다.
아침이 돼서 바람은 자지만, 뭉텅뭉텅 무리 지어 흘러가는 안개는 순식간에 산을 덮고 고개를 넘어간다. 고리봉을 지나면서 보니 지리산의 정경을 남기기 위한 사진 작가 2분이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린다.
세상은 단 한번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것 없이 길흉화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걸 알려나 주듯이 세걸산과 세둥치를 지나면서 숫한 작은 봉우리들이 오르막과 내리막 길로 이어져 어느 능선언저리에 서면 고개 돌려 지나온 길을 한번 보고 잠시 쉬면서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어디쯤인가를 생각해 본다.
어디쯤에서 일까 묘령의 여인이 홀로 앉아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서 쉬고 있다. 앞질러서 가다가 잠시 쉬면서 간식이라도 먹을 참이면 또 지나가고, 다시 또 앞질러가고 하기를 여러 번, 드디어 팔랑치를 지나면서 훤히 펼쳐진 개활지를 바라보니, 선두그룹이 바래봉을 향해 가는 무리가 보인다. 자리를 펴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배낭을 풀어놓으니, 팩으로 만들어진 잘 삭힌 홍어와 막걸리, 그리고 다양하게 펼쳐진 복분자와 오미자 막걸리 등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출발을 한다.
화려했을 봄날의 추억을 안고 있을 바래봉 가는 길은 오래된 철쭉의 정원으로 펼쳐져 더러 무리 지어 고사목으로 남은 옆 길을 돌아 이제는 널찍하게 잘 닦여진 산 길을 따라 바래봉 삼거리에서 화사한 꽃은 없지만, 그래도 너무 유명세를 많이 타서 마치 산에 핀 꽃 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것보다 좋을 듯하여 바래봉 기념사진을 남기고 하산을 한다.
하산 길에 다시 만난 그 묘령의 여인.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서 길동무가 된다. 전주에서 차를 가져와 정령치에 세워두고 천천히 하는 산행으로 홀로 고독을 사랑한다는 그는, 이제 하산하면 다시 택시를 타고 정령치 주차장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내려가는 길 5Km 구간을 더러는 시멘트 블록과 돌로 깔아 널찍하게 닦아놓은 것은 잦은 비에 길이 파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으나 산을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등산객의 입장에서는 딱딱한 돌길 보다는 그 옛날의 소롯길이 훨씬 정감 있고 운치 있는 길이여서 발의 피로도 덜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가로질러 가는 길에서 어디로 선택을 할 것인지를 묻자.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는 옛 선인의 말을 꺼낸다.
인월면 쪽으로 가고자 했으나 가는 길이 막혀서 운봉으로 간다는 말에 인월의 전설이 생각난다.
때는 고려말. 잦은 왜구들의 침략과 노략질을 막아내기 위한 이성계장군은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운봉 근처 황산이라는 곳에 도착 형세를 보니 왜군은 소년장수 아키발도를 철갑으로 빈틈없이 무장. 전투마다 승리하여 승승장구해서 마치 신격화된 왜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는데, 백발 백중의 명사수인 이성계와 그의 의형제 이지란은 약속으로 투구를 맞춰 투구 끈이 떨어지면 화살을 입으로 쏴서 죽이기로 약속을 하고 실행을 해서 아키발도가 죽자 주군을 잃어버린 왜군은 우왕좌왕하면서 계곡으로 밀려들어 갔는데, 기세가 등등해진 고려군이 멸살 작전으로 쳐들어가자 낮부터 시작된 전투는 밤까지 이어졌고, 어두워서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자 이성계가 달을 끌어와서 환하게 밝힌 상태에서 전투를 해서 왜구의 핏물이 계곡을 흘러 넘치고 넓은 바위에 핏물이 배어 지금도 붉은 피바위가 있다는 바로 그 인월(引月)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는 전설입니다. 그 전과를 기념하기 위해 운봉에는 황산대첩비를 새웠고 그 후 일본은 다시 침략해서 그 비를 두 동강 내었는데, 후일 다시 붙여서 세워 놓은 것이 그 유명한 운봉의 황산 대첩비 입니다.
예전에 호주의 면양목장이 있던 곳 위를 지나 새로 조성된 허브농장 주차장에 도착 잘 가시라고 작별인사를 나누고 지리산 서부능선 21.5Km 의 길고 긴 레이스를 마무리 합니다.
2010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