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스크랩] 장수. 장안산

no pain no gain 2012. 10. 31. 13:41

장안산 1 2.

 

토요일 새벽 비가 내렸다. DMC 역에 도착하고 보니 8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너무 일찍 온 것이다. 추적이면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젖어가는 낙엽을 떨쿠고 만추에 물들어가는 가로수를 본다.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830분에 버스가 온다. 2시간여를 무료하게 기다린 것이다.

그 시간에 운동을 했다면 시속 7Km에 놓고 14km를 가는 거리. 하지만, 빗소리를 들으면서 비와 대화를 나눈 여유로운 시간. 책을 가져 오지 않음을 아쉬워했다.

버스에 탑승. 양재에서 약속한 인원을 태우고 안성에 도착 이른 식사시간을 갖는다.

엄청 막히는 길. 우린 등산을 다니지만, 혼잡을 피하기 위해 6시면 이동을 하기 때문에 이렇듯 막힌걸 본 적이……. 장수에 도착. 어느 모퉁이를 돌자 잎새는 다 떨어지고 빈 가지에 빨간 사과만 매달린 그 풍경 하나로 속으로부터 절로 우러나오던 미소. 그래 이런 걸 보고 싶었던 거야!

 

빗 길을 걸어서 숙소에 도착. 인사를 나누다 보니 학교 5년 후배 부부를 만났다. 어찌 이런 인연이? 간식으로 나온 고구와 곁들여 먹던 김치에 설악산 깊은 곳에 숨어있는 마가목으로 담았다는 귀한 술까지, 술 맛은 술이 아니라 약초의 향긋한 향기가 온 몸을 퍼져 간다. 소개와 식사를 거쳐 문화공연으로 시간에 박남준 시인의 청빈한 삶의 향기를 내리는 빗 소리와 엮어주는 백뮤직에 섞어서 소박하게, 정말 소박하게 나눈다.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또 피고 지랄이야.파장이 되어 내 머리 속에 공명이 되어 퍼져 간다. 지랄이야! 지랄이야!

그리고 이어진 징검다리 음악공연. 더러는 연극과 영화를 보지만, 언제부터 인지 콘서트에는 귀청이 찢어져라 큰 소리와 번쩍이는 현란한 조명과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로 인해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 점점 멀어지게 되었는데, 오늘의 공연은 우려를 초월한 잔잔한 감성의 공간이다. 친필서명이 된 시집과 cd를 받고 이어지는 뒷풀이.

까페지기가 주문한 먹다 남은 술이 끝도 없이 나온다. 빗소리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시에 취하고, 음악에 취해 잠 못 드는 밤. 꿈 속에서도 이어지던 연장선.

그리고 습관대로 5시에 눈을 뜨고 산책을 나간다. 어제 보지 못했던 맑은 계곡 물에 엎드려 속이 시원하도록 감로수를 마시고, 저 아래 마을 을 향해 신선한 바람과 먹지 않아도 흐뭇한, 빈 논 사이로 수 없이 풍성하게 매달린 감 익어가는 모습과 낙엽이 썩어가면서 나는 향취와 멀리 들리는 개 짓는 소리까지 담아두고 곱게 물든 은행나무의 마지막 화사함까지 가슴에 담는다.

 

식사 후 이어지는 바자회? 까페지기의 선심이 쏫아진다. 박 시인의 자연 소재 물감으로 그려진 시화 몇 점을 나눠주고, 주먹밥을 받아 들고 버스로 장안산 산행의 시작 지점인 무룡고개에 도착. 어제 내린 비로 먼지는 나지 않지만, 군데 군데 꽤 미끄러운 소롯길을 따라 빠르지 않는 산행이 시작된다. 산천 경계를 두루 살피면서 여유로운 모습들. 얼마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펼쳐진 억새밭. 그런데 제철의 화사함은 이미 빛을 잃었다. 누군가 억새보다 사람이 많다는 민둥산과 억새로 유명한 몇몇 곳은 이런 한적함은 맛보지 못하리라.

잠시 쉬어가는 곳에서 만난 샘터. 물 한잔 마시면서 간식을 꺼내니 58년 갑장이 3명이다. 우리 좋은 인연 앞으로 잘 맺어 봅시다.

 

억새 바다

억새 밭에 배 띄워라 노 저어가자

하얀 물결 넘실대는

산 능선을 건너건너 두둥실 떠 가보자

앞서가는 흰 구름을 돗 삼아서

어릴 적 놀던 친구들 찾아가자

마당가에 누워서 하늘을 보면

솔개처럼 떠돌다 잊혀져 간 친구들 얼굴.

세월을 거슬러 배 띄워 가자

허연 솔기 넘실대는

억세 바다에 어기여차 어영차

그리움의 바다에 배 저어가자

이젠 모두 머리 위에 흰 눈이 내려

억새야 억새야 허연 억새야

어이하여 해마다 바다를 풀어

내 마음 어찌 하라고

 

그리움의 바다는 돌아갈 길이 없구나

 

멀리 보이는 정상을 향해 가면서 보니 백두대간 준령이 맑은 시계는 아니지만, 좌측의 희뿌연 화선지 속 그림처럼 펼쳐 진다.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을 보면 지리산 빨치산의 김범준 장군이 동상에 걸린 다리를 절뚝이면서 덕유산 빨치산과의 회의를 위해 태백산맥을 걷는 장면이 나온다. 그 길이 저기런가?

작년 이맘때 육십령에서 출발. 할미봉과 대포 바위를 거쳐 서봉으로 이어지던 남덕유산 백두대간을 타고 서상 쪽으로 하산 한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안개 속을 헤메고 다닌 기억뿐이다.

장안산(1236m)에서 주먹밥을 먹고 범연동 방면으로 하산길을 삼아 낙엽으로 장식한 카핏처럼 깔린 길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마저 정겨운 시간이다. 능선 부근의 나무들은 거센 바람에 이미 낙엽이 져 겨울의 수면에 빠져 있고 골짝 쪽으로 피신한 던풍은 울긋불긋한 모양새가 마치 저 잘난 마지막 전시회처럼 보인다.

 

불산.

 

산에 불났다.

단풍불이 타오른다

그 불 숲을 뚫고 구절초가 방싯거리는 장안산을 건너간다.

 

훠이훠이 휘저어 노랗게 타오르는 놈

빨갛게 빨갛게 타다 검붉은 손 흔들고 있는 놈

속 노란 잎새에 겉만 붉은 놈

이참에 단풍불은 잔치를 벌인다

봄날 두른 연분홍치마를 벗어버리고

붉은 치마에 노랑물감을 뿌렸고나

 

지난 밤

내 가슴을 적시던 그 빗소리가

허연 억새 불러 마중 나올 몸단장이라니!

 

그래. 그래서 잠 못 이루고 뒤척였나 보다.

 

하산과 이어지는 식사. 그리고 지방 팀과의 해후를 약속하는 아쉬운 작별. 그렇게 그렇게 12일은 영원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됐다.

 

 

출처 : 남원용성초등61회
글쓴이 : 정길진 원글보기
메모 :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약골  (0) 2023.09.14
보길도  (0) 2013.06.11
천황산  (0) 2012.03.19
남덕유산  (0) 2011.09.22
[스크랩] 지리산 다녀온 이야기  (0) 2010.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