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신달자 作/민음사 刊/ 2008 出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 고집으로 결혼하고 살림살이에 재미를 붙여가던 35세 여인네의 삶에서 남편이 뇌졸증으로 쓰러지면서 겪은 인생이야기를 에세이 형태로 엮은 푸념석인 고백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난 작가의 심정이 되어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는 막막함과 옥상 한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깊은 시름에 겨워하는 여인네의 솔직 담백한 참모습에 작가가 울면 따라 울었고, 고독에 몸부림치면 눈 앞이 캄캄해지는 어둠 속의 미로를 헤매는 심정으로 책 속의 길을 따라 걸었다.
문학을 사람하고 예술을 논하던 젊은 처자가 21살의 신인등단이라는 너무나 큰 명예였지만, 남편이 쓰러지고 난 후 올망졸망한 눈망울을 가진 여자아이 셋과 늙으신 시어머님과의 일상을 헤쳐나가기에는 병원비나 생활비에 너무나 쪼들려 스스로 헤쳐나가기에는 힘들고 어렵기만 하던 그때. 진정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세상과의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첫 걸음마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부부란 무엇일까? 사랑의 깊이는 어디까지 이해하고 봉사와 희생이 따르는 것일까? 부부의 관계설정은 어디까지 납득되고 보편 타당한 합리성은 어떤 것이 모범 답안이 될까에 대한 기대치가 생의 고개를 넘어가는 모퉁이마다 진하게 배어 나온다.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이게 아닌데, 내가 꿈꾸며 그려오던 결혼의 판타지는 이런 세상이 아니었는데 하고 후회한들 너무 멀리 걸어와 버린 길을 어디서부터 물려야 할지 모르는 자기 기만의 생 속에서 남에게 하소연 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작품으로 미완의 덧칠된 세월만 남는다.
그녀의 젊은 노트에는 이루 다 표현조차도 불가능한 생의 더께가 너무나도 깊어 한 줄 한 페이지가 눈물의 범벅이었음을 느낀다.
폭력남편. 간절한 기도와 깊은 애정으로 포장된 정성 어린 간호에서 하늘까지 뜻이 통하듯 기적적으로 깨어난 남편. 그리고 이어지는 너무나 고통스런 재활. 그러나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몸 상태가 회복되었을 때에는 원래의 인격상태가 그러했는지, 병 후 회복이 늦어져서 그랬던 지는 상관없지만,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닥치는 데로 던지고 부수고 때리고 뼈가 부러지고 옴 몸에 피멍이 들고 퉁퉁 붓고…… 책을 읽다가 냅다 던져 버리고 싶은 감정이 기울이던 때도 있었다.
금슬 좋은 부부에서 금슬(琴瑟)이란 가야금과 비파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화음으로 이루는 하모니, 즉 듣기 좋은 천상의 소리가 금슬지락(琴瑟之樂)인데, 줄 끊어지고 삑사리나는 불협화음으로 점철된 부부생활도 금슬 좋은 부부라 할 수 있을까? 아 물론 부부관계는 둘만의 세상. 아무도 알 수 없는 암흑 속의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자유인. 주어진 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새로운 역사를 부부만이 만들어 내는 천지조화의 조물주가 되는 세상. 저는 그렇게 알고 있거든요!
24년의 긴 병수발과 8년간의 몸 져 누우신 시어머님의 간호까지.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는데, 대소변까지 받아내야 하는 과정 속에서도 떨쳐 일어나 내 길을 걷는 의지로 도전한 학문의 길.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치고 작가는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그러나 끝나지 않은 시련은 유방암이라는 더 큰 과제를 주어 아직 세상에 다 갚지 못한 빛으로 인해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길고 긴 간호 생활로 이미 달인의 경지에 오른 자신이 진정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남편의 손길을 그리워한다. 따뜻하고 애정 어린 눈빛으로 힘내라고 용기와 위안을 줬을 그 사람. 아! 비가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인가요?
고통의 끝은 어디인가? 하지만 절망하지 않는다. 떨쳐 일어나 수술과 재활을 위한 건강관리를 끊이지 않는 열정으로 지난 세월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활기찬 몸짓으로 거듭나는 아름다운 생을 창조하는 길을 찾는다.
201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