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월악산 영봉에서 산양을 찾다.

no pain no gain 2007. 12. 3. 17:54


월악산 영봉에서 산양을 찾다.

 

월악산 난간머리 희미한 저 달아 천년 사직 한이 서린 일천삼백 리 너는 아느냐 아바마마 그리움을 마의 불에 심어놓고 떠나신 우리님은 월악산아 월악산아 말 좀 해다오 그 님의 소식을~~~~

금강산 천리 먼 길 흘러가는 저 구름아 마의태자 덕주 공주 한 많은 사연 너는 아느냐 하늘도 부끄러워 짚신에 삿갓 쓰고 걸어온 하늘 재를 월악산아 월악산아 말 좀 해다오 그 님의 소식을~~~~

예전에 가수 주현미가 불러서 신라 천년 사직을 아쉬워하며 망해 버린 망국의 한을 그린 노래로 아직도 귓가에 그 주현미 특유의 간드러진 듯한 흐리 낭창한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고 있는 월악산.

 

눈 또는 비가 온다는 그 날을 안개 자욱한 고속도로를 건너가는 일정으로 하루를 연다. 입구를 찾기가 어려워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녹황 채소로 각광을 받은 온통 케일 밭으로 뒤 덮인 동네를 지나 어쩌다 혜택을 받아 시멘트 포장으로 산 아래 절 마당까지 경사 가파른 그 길을, 오랜만에 만난 친근함에 두란 거리는 이야기 속에 묻혀 진행을 한다.

 

초입부터 들어서는 그 계단. 이미 낙엽은 지고 길 바닥을 노란색으로 채색한 듯 떨어져 있던 낙엽송 가늘은 낙엽 군들은 아미 화가가 그림을 그리려 배경색을 칠해 둔 듯 이채롭게 보 인다.

 

가도가도 경사 가파른 계단. 그래도 즐거운 것은 언제 만들어 졌는지는 몰라도 서있는 암석 하나마다 시루떡을 만들다가 잘못 눌러 찌그러진 형태로 구불구불 하게 층을 이루며 정결한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음에 또 하나의 볼거리가 제법 심심함을 달래준다.

 

 한 참을 올라 앞서가던 상구 형을 보니 절벽 사이에 낀 바위가 마치 징검다리를 하듯 하늘 길을 연결해 주고 있어 어느 날 월악산 산신령께서 심술로 그 돌을 빼 낸 다면 아득한 낭떠러지기 길이 될 듯한 곳이 아슬아슬하게 펼쳐진다.

 

힘겹게 올라서면서 손이 시려 워 장갑을 꺼내 끼고 철로 된 난간을 잡으니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엉겨 붙은 물방울의 정체가 자꾸만 미 끌린다. 어느 만큼 올라 이제는 제법 올라서지 않았는가 해서 뒤를 보아도 보이는 것은 온통 희뿌연 안개에 젖은 모습. 앞으로도 뒤로도 도통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왼쪽 암벽을 타고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좁은 곳은 폭이 30Cm 도 채 되지 않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면서 자칫하면 저 아래로 떨어질 듯한 그 지점에는 ‘추락주의’ 표지판만 외롭게 서있을 뿐 전혀 안전 바 라든지 하는 시설물은 없다. 아마 여기 월악산 국립공원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모두가 유격대원 출신으로 이런 아슬아슬한 난 코스를 즐기면서 다녔던 것이 아닌가 한다.

 

더러는 바위 틈에 매달려 살다가 좁은 삶의 터전인 뿌리가 움켜진 흙을 견디지 못한 채, 뿌리가 드러나 나무가 통째로 누어 버린 그 언저리 부근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어 질긴 생명의 인연으로 밟고 지나가지만, 언젠가는 그 부스러기 흙들도 모두 떨어져 버리면 위태하던 나무도 떨어져 결국 길 없는 길이 되고 말 것 아닌가 하는 우려스런 마음도 든다.

 

하봉을 오르는 마지막 코스에서 길고 긴 계단 길을 눈에 젖고 땀에 젖은 상태에서 올라서니 산 자락 아래 뭔가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과는 달리 희뿌연 안개와 몰아치는 바람에 아래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깎아 지른 절벽 그 언저리 어디쯤에는 보호 종 천연기념물이라는 산양이 마치 제철을 만난 듯 미소 띤 얼굴로 지나가는 산 객들을 바라보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된다.

 

분명 몇몇이서 앞서간 게 분명한데, 어디쯤 가고 있을까? 세월을 거슬러 천년 전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 태자는 과연 이런 험준한 산악을 알고, 불같이 일어난 왕건의 그 엄청난 기세를 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았던 것일까?

 

중봉이 보이는 곳에서 잠시 허기진 체력을 보충하려고 간식을 꺼내서 최성원 직장과 상구 형, 그리고 일행들이 모여서 각자 싸가지고 온 것을 나눠 먹는 자리. 그래도 눈은 계속 내리고, 더욱 미끄러워진 영봉가는 길에 대비하기 위해서 아이젠을 꺼내서 착용을 하고, 쉬다 보니 갑자기 떨어진 체온을 보온하기 위해서 방한 복을 꺼내 입고 재 출발을 위한 준비를 마친다.

 

영봉 가는 길에는 유난히도 바람 골 타는지 아니면 벼락이라도 많이 떨어 졌는지 길을 막고 가로로 누운 나무들이 많아서 때론 위로 건너기도 하고, 혹은 아래로 나무 터널처럼 지나기도 하면서 바닥은 곳곳이 얼음덩어리로 뭉쳐있어 간혹 미끄러지고, 떨어진 눈들이 쌓이기 전에 밟고 지나가는 통에 녹아서 질척이는 길을 따라서 오르락 내리락 가다 보니 어느덧 영봉 올라가는 삼거리에 길목을 지키던 동지에게 가래떡 하나 받아 입에 물고 오물 거리면서 진짜 끝까지 이어진 그 유명한 계단 길을 오른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를 즈음 도착한 영봉에서 점점 더 많이 내리기 시작한 눈 때문인지 몰라도 더욱 미끄러워진 탓에 오고 가는 길이 정체 현상이 나타나 기도 하지만, 정작 더욱 중요한 것은 미끄러움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하체 근력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내려서는 길목에 설설 기어서 난간을 붇잡고 내려서는 산 객들이 가끔씩 중간중간에 석여있기 때문에 더욱 정체되고 혼잡스러운 길이 되고 만다.

 

영봉.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허연 안개 만이 막아 서는데, 이건 두려움보다는 저 넓고 깊은 충주의 호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버린 야속함이 더욱 안쓰러울 뿐이다. 한 참을 기다려 기념 사진을 남기고 그 길고 긴 돌 밭 하산 길을 따라서 내려서다 보니 어쩜 몇몇이서 선두를 향한 길손이 되고 말았다.

 

자칫하면 신륵사 방향으로 길을 잘못들 까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이방인과 만나고, 한 참 여름 한철 시원한 신록과 가을의 단풍을 빼어나게 자랑했을 그 내리막길을 너무 직선으로 해놓으면 위험할까 봐서 지그재그로 꺾어 철대로 안전 바를 설치 해둔 길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아스라하게 보일 정도로 길다.

 

 산에서 맞는 눈. 겉에는 옷이 젖고 속으로는 땀으로 젖고, 하산 길의 보이던 그 시든 낙엽의 탈색되어버린 상태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나무와의 인연의 줄을 놓지 못한 채 부는 바람에도 흔들리면서도 매어 달린 그 갈 길을 찾아가지 못한 그 낙엽들의 행로가, 마치 이런 안개 속을 헤매고 다닌 우리들의 인생과 닮아 매우 흡사한 마음까지 촉촉하게 젖어오는 12월의 월악산 하산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예전 기억을 더듬으면 자칫 찾지 못할 정도로 변해 버린 도시화 되어가는 자광사 입구에서 줄지어 들어선 펜션과 즐비한 음식점. 그리고 충주라는 도시의 변해가는 모습이 예스러운 정취가 사라져 가는 아쉬움도 들었지만, 세상은 앞으로 가야만 하는 수레바퀴의 운명처럼 즐비하게 늘어선 스키 �의 풍경과 이렇게 어려운 산행 후에는 우리가 먹은 자연산 버섯찌개의 맛도 일품이지만, 이 곳 유명한 온천 물에 몸을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풀던 그날이 더욱 그리움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