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월출산. 구시암에서 일출을 보다.

no pain no gain 2007. 10. 24. 15:28

 

 

월출산. 구시암에서 일출을 보다.

가을. 단풍이 아직 남도로 내려가지 않았는데 월출산으로 향한다.
한 밤. 눈 들어 볼 필요도 없이 온통 하늘은 별들의 잔치다. 총총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사방 하늘을 올려다 보아 저렇듯 많은 별을 뿌려 두기도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 도대체 언제부터 별 헤는 밤의 꿈을 잃어 버린 것일까에 대한 상념이 스쳐간다.
여기 모인 모든 산악인 들이 저 하늘의 별과 같다는 생각이다.

 


도갑사를 출발해서 얼마지 않아 앞서가던 일행을 잃어버리고 헤드랜턴의 불빛으로 간신히 길을 잡아 나간다. 급작스럽게 추워진 날씨 탓에 겨울 옷 채비로 출발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 둘씩 외투를 접는다. 와락 달려드는 바람. 그러나 이건 맛보기에 불과하다.
쉬지 않고 옛 추억을 더듬어 차곡차곡 진행한 결과 어느 골짜기부터 서 부는 바람이 예사롭지가 않다.
휘이잉 쉬 이익 쉭 � ~ 우 웅.......
억새 밭 말미에 들어 섬으로서 미왕재의 억새들이 어둠 속에서 울부짖는 합창쯤으로 여겨진다. 일제히 남동쪽을 향해 고개 돌린 억새들의 달이 저문 밤에도 군무를 추는 구나!

약속

다시 오신다는 그 말씀 믿지 않았소
그저 부는 바람결에 얽힌 인연이려니 하고 살았지요
이 곳 지나실 때 추억 한 장 남기고
떨구고 남기신 정을 새기며 기다린 세월
어쩌다 우리가 인연이 됐소

떠나는 님의 발길 따라가고 싶어도
뿌리 채 얽힌 삶이 너무나 깊어
발자국 소리만 남기고 떠나신 님아
언젠가는 다시 오리란 약속을 믿고
오늘도 두 팔 들고 머리 풀어 춤을 춥니다

발 아래로 굽어보는 아롱거림 속에 인적 없는 시골 마을이 곳곳에 고즈넉하게 잠들어 말갛게 점점이 밝힌 불들로 띄엄띄엄 수 놓듯 고요한 산 아래를 보며, 자꾸만 옷깃에 채이는 억센 나뭇가지가 들쭉날쭉 돌무더기 사이로 소로를 뚫어 여명이 오기 전 향로봉을 향한다.
이미 올라선 능선이라 좌우 평야로 이어지는 중도 들판을 보면서 마치 동화 속 먼 옛 이야기 가 소곤 거리듯 들려 올듯한 배경처럼 보이고 멀리 바다로 이어지는 갯골이 하늘 빛을 되 받아서 허옇게 빛을 발한다.

바람재를 넘어선 찬 바람이 땀을 식혀버려 다시 외투를 꺼내 입고 앞서가던 또 다른 산악회 일행들과 석여 걸음이 더뎌지면서 진행이 주춤거린다.
대악 산악회는 구정봉으로 갑니다.
어둠 속에서 실루엣으로 보이던 멋진 암 봉들이 좋은 사진을 얻지 못하고 그저 지나면서 먼 산에 눈길만 아쉬울 따름이다. 구정봉 올라서는 통로에서는 시험을 본다. 너무 큰 가슴과 너무 볼록한 배는 후일을 기약하며 구정봉 출입을 자연석굴이 막아 선다. 내가 너무 슬럼 해졌나? 겨우 우겨서 구정봉에 올라 이제 막 터지려는 여명 속의 말갛게 붉은 빛이 도는 동녘에서 작은 점하나 떠오른다.
매일이 축복이며 행복의 나날이 되라는 신념으로 일출을 보면서 기원을 한다. 올 때마다 들려도 세 번째 도전에 처음 보는 일출이다. 구시암의 배 빨간 개구리는 보이지 않지만 그 웅덩이에 그득한 물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사람을 날려 버릴 듯한 거센 바람 속에서도 가을 들꽃들의 순수하면서도 청순한 자태는 모시 옷 곱게 차려 입고 나온 시골 아낙의 품위 같다.

온 누리에 햇살이 곱게 퍼지면서 봉마다 조각품처럼 빼어난 형상들이 마치 조각 전시장에 몸단장하고 나선 듯 아름답게 널려있고 볼 때마다 신기한 형상의 베틀 굴의 모양새를 보고 마주선 남근석있는 방향으로 천황봉을 향한다.

바로 앞에 우뚝 선 듯 보이지만 멀고 험한 길. 바위로 이어지는 철 사다리오르막에 부스러진 사암쪼가리는 마사 토 모래처럼 널려있어 자칫하면 미끄러지는 위험스런 길.
앞서가던 분이 뒤 돌아 보면서 먼저 가라 한다. 그래서 한 마디. 등산은 우리네 인생과 같아서 급하다고 서두를 일도 아니요 앞에서 지체 된다고 앞서갈 일도 아니니 천천히 쉬엄쉬엄 가십 시요. 항상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천황봉에 도착. 방전되어 버린 카메라는 그 좋은 풍경을 남기지 못하고 준비해온 간식을 나눠 먹으면서 마지막 후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엄청난 바위. 산 정상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넓은 공간. 표지 석을 마주하고 보니 월출 산이라고 새긴 음각글씨가 남쪽을 향하고 있다. 우린 서남쪽에서 북동쪽으로 간다.

김주선부장과 구정민감사 그리고 몇몇이서 후미를 자처하고 단체사진을 남기고 통천문과 바람 폭포를 지나 전국제일 높고 길다는 월출산의 명물 구름다리를 향해 간다.
지나가는 길목마다 위험한 곳은 더러 계단을 설치하고, 몇 년 전에 공사하던 곳이 이제는 다 끝난 후겠지만 깎아지른 암벽에 설치된 철 계단은 그래도 80 ~ 90도의 급경사에 발 디딜 난간도 좁은 위험 천만한 곳이다.

매사 안전에 유의하며 내려섰다 올라서고 하면서 구름다리에 도착. 이제 막 산행을 시작한 일행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뒤로하고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기고 내려선다.

다시 돌아가야 할 길이 천리라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조금 덜 막히는 시간대에 귀환 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모두 독려해서 천황사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더러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행 후일담을 안주 삼아 지방 특산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인원을 점검한 후 출발. 적당한 휴게소에서 점심을 해결하자고 하고 10시가 조금 넘긴 시간 우리는 월출산의 소중한 추억의 장을 가슴으로 새기고 출발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