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아홉 폭 병풍을 펼쳐 놓은 산 구병산을 찾아서

no pain no gain 2007. 7. 3. 10:03

 

아홉 폭 병풍을 펼쳐 놓은 산 구병산을 찾아서

 

 

속세에 미련이 없다면 떠나도 좋다 하는 속리산(俗離山).

유독 세종의 같은 아들이면서 작은 아들로 태어나 왕권 확립을 위하여 조카 단종을 죽였다는 후세의 악평을 많이 받는 세조와 얽힌 일화가 많은 그 산을 향해 떠나는 버스는 지난 밤 장맛비가 70mm 가 넘게 내렸다는 뉴스 하나만으로 일행이 줄었다.

 

가다 보니 산 허리를 뚫고 내리 쏟는 흙탕 된 계류도 그렇거니와 수량도 풍부해서 이쯤 되면 입산이 통제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전날 처갓집 다녀오느라 부족한 잠이나 보충하자며 수면모드에 돌입했더니 잘게 내리는 부슬비 속에 속리산 화북분소 입구에서 비로 인한 입산 통제라 돌아가라 한다.

 

할 수 없지 뭐! 남는 시간 어디 가서 뭘 할까 하는 각자의 고민 속에 충청북도 보은 군에 가면 충북 알프스라 부르는 구병산이 있다 한다.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사과와 구비구비 돌아가는 말티 고개는 아니더라도 칡넝쿨이 너무 많아서 인지 갈재를 지나 길가에 일부러 심지 않아도 공작꼬리 날개 모습으로 펼쳐진 자귀나무 꽃 들이 줄줄이 피어있는 고갯마루 산 허리는 내려서 제법 느티나무 위용이 느껴지는 어느 휴게소 앞에 머물러 구병산 산행에 나선다.

 

충청북도 알프라 함은 청주 대원리 활북 고개부터 시작하여 매봉(593) ~ 상학봉(861) ~ 묘봉)(814) ~ 관음봉(982) ~ 문장대(1029) ~ 문수봉 ~ 비로봉 ~ 천황봉(1052)등을 거쳐 속리산을 내려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형제봉과 마지막으로 구병산(876)을 포함한 장장 43.9Km의 이름이라 한다.

 

처음 설명에는 날씨관계도 있고 온통 비구름으로 덮여 있는 산세도 그렇고 하니 종주는 무리고 약수터에서 삼거리로 해서 구병산 정상을 돌아 내려오는 반 토막 산행이라고 하고 안전 산행을 부탁하고 출발을 한다.

마을을 지나 샛길로 물길을 따라가는 산행 길 초입부터가 길을 따라 내려오는 빗물을 밟으면서 좀 빠른 듯한 속도전이 시작된다.

 

갈증이 나기 시작하기도 했지만 올라가는 길이 온통 물로 점령된 상태라 스틱 하나 펴서 건네 주려고 잠시 머무르는 사이 약수터에서 좌회전하기로 한 약속을 깨고 직진해서 올라간 선행주자들을 따라 올라가 버린 내님과 생이별을 한 꼴이 되고 말았다.

정암사지 약수터. 산에 들어온 스님들이 6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넘치는 정력을 주체 할 수 없었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샘 가에는 오가는 길손을 두꺼비 형상의 석각이 지켜보는 가운데 온통 물난리라 어디가 약수고 어디가 빗물인지가 구분이 안될 지경이다.

 

능선 삼거리를 향한 길. 아무도 없는 산 속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는 크나 큰 나무들이 우산이 되고 간혹 굵게 뚝뚝 떨어지는 비를 맞아가며 오르다 보니 비옷과 비상식량이 내가 가지고 있는데 혹여 시장 끼를 느낀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가파른 경사로 이런 길을 경사 80도라 하는지 반듯하게 뚫지 못한 길은 천연의 숲길을 안개까지 덮여서 어둑해진 산 길에 가끔씩 튀어나오는 배 빨간 개구리들이 더 놀라서 저만큼 도망가기 바쁘다.

 

가다 보니 산 속에 미아처럼 혼자가 된 걸 느낀 것은 길을 가로막은 떨어진 나무토막과 앞서간 일행의 발자국이 전혀 없는 적막한 산중에 혼자 떨어져서 고독한 산행이 이어지는데 뒤에서 또 한 분 나를 따라 왔는지 열심히 올라온다. 얼마쯤 갔을까 가다 보니 허기를 느껴 쉬는지 떨어지고 없다.

 

안개 낀 숲 속에서 헤매다 보니

삼십여 년 전 지리산 계곡이 생각 납니다.

바람이 불면 나무들이 두손들고 머리 풀고 일어나

우 함성처럼 밝아졌다 어두웠다를 반복하던

피아골 어느 골짜기가 그리워 집니다.

 

병풍바위 앞에서니 깎아지른 절벽으로 위쪽은 안개에 쌓여있어 설마 산신령께서 구름 타고 사슴과 함께 산삼을 간식으로 먹고 있다 한들 내가 알게 뭐야!

 

삼거리에 도착. 휴식을 취하고 기다리다 보니 땀이 식어 으스스 추워짐을 막으려고 스트레칭도 하고 몸 풀기도 하면서 20여 분 이상 기다리다 이산가족 재회하고 다시 정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가다 보니 여기도 정상. 좀 더 가다 보면 여기도 정상. 하지만 정작 정상은 맨 마지막 표 지석이 있는 곳.

 

내려오면 맛있는 청국장 점심을 준비해 둔다는 약속을 믿고 올라온 터라 토마토로 간식을 먹고 올라온 것만큼 내려서는 하산 길. 그 엄청난 경사의 지그재그 산 길은 계곡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행복 했었다오.

 

쏟아 지는 계류에 첨벙 이면서 신발과 양말이 젖고 내리는 비에 등까지 젖고 등산로를 보수 하지 않아서 길을 막아선 풀들의 손 내밀고 스치는 통에 바지까지 젖어서 온통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내려선 길. 어떻게 내려왔느냐 묻지를 마라.

 

세상이 훤히 트일 즈음부터 간간이 보이기 시작한 산딸기 그 빨간 유혹의 손짓에 간만에 먹어본 그 맛은 고향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내 어린 시절 이렇듯 첨벙거리며 물장난 치고 다녔으면 어머니 한 테 혼날 텐데 어른이 되니 혼 내킬 어머니도 안 계시는 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어느 바람에 쓰러졌는지 호두를 잔뜩 달고서 뿌리 채 뽑힌 나무며 빨간 산삼 꽃을 닮은 인삼 밭을 지날 때에는 사슴은 어데 갔나 하는 농담도 나누면서 통신사 기지국이 보일 때 이제 산행은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에서의 여유 겠지요.

 

맛있는 청국장과 곁들인 구기자 막걸리의 기막힌 어울림으로 식사를 하면서 내가 가지 말라고 말려도 구병리 팻말을 보고 내려가서 콜 택시를 타고 온 님들의 후일담도 듣고, 산 길에 미끄러져 팔을 다친 일행이 식사가 끝나자 도착을 한다.

 

삶과 죽음의 기로는 아니었지만 숱하게 순간적인 판단과 기민성을 요구하던 그 암릉 길과 하산 길의 계곡에서 무사하게 산행을 마치고 추억의 한 장을 기억 하게 된 이번 산행에 하늘을 우러러 여러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