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일기예보는 정확했다. 자욱한 안개에 낮게 드리운 아침이 열리고 있었다.
오늘은 도봉산 등산가는 날.
40개의 지하철역을 지나면서 깊어가는 가을에 대한 생각에 잠기다. 이젠 가을을 보내야지. 이 산행으로 가을과의 작별을 해야지.
입구에 도착하니 먼저 온 일행이 반갑게 반긴다. 지도 앞으로. 자 산행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우측 능선을 타고 포대능선을 거쳐 와이어 로프를 타고 암벽등반을 마치고 주봉까지 올라 곧바로 하산하는 코스로 마당바위를 거쳐 대피소로 내려오는 코스가 주 등산로 이며, 만일의 경우 비상사태 발생시는 최단코스로 하산코스를 변경하겠습니다. 이럴 경우 예상등반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될 예정으로 속도를 조절하겠습니다. 이상 질문 없으면 출발하겠습니다.
스산이는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머리 위에도 떨어지고, 배낭 위에도 떨어지고 간밤 긴긴 길목에 수북이 쌓인 낙엽- 꿈의 시체들...- 을 밟으며 간다.
우리네 인생도 봄처럼 피어나던 그 많은 사연들을 다 이루지 못하고 파란 낙엽이 되어 좌절 또 좌절의 계단을 하나씩 꺾어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인생과의 만남이란 절충과 타협을 배워야 했다.
7부 능선의 마지막 생명수를 공급하는 감로 샘에 도착했을 즈음. 솨르르르 하는 계곡을 흩고 지나가는 긴 바람에 낙엽은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허공을 맴돌다 우수수 떨어진다. 아 육탈의 계절이여!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올라선 능선. 떨어지는 땀방울에 힘들여 작은 바위 봉우리에 올라서니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십 여 미터 앞도 안 보이는 안개가 야속 타.
능선을 타는 즐거움이란 좌우를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고 지금까지의 걸어온 행보를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어 좋은 것인데, 하늘은 더욱 낮게 드리워져 간다.
포대능선을 거쳐 주봉 가는 코스엔 와이어로프로 안전 대를 설치해둔 난 코스. 짙은 안개와 낮은 기압은 암벽을 더욱 미끄럽게 한다. 이제 두 손과 두 다리만이 내 생명을 책임져 줄 것이다.
마음속으로 가도를 올린다. 헤라클레스 같은 힘과 지그프리드 같은 용기와 시지프스같은 의지를 주소서.......
때론 유격훈련처럼, 때론 다람쥐처럼 날렵하게 거친 숨과 반짝이는 눈빛. 아!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여.
난 코스는 끝났다. 깊은 숨을 몰아 쉬며 정상도착의 환호가 울린다. 우린 개선군이다.
터덜거리며 내려가는 하산 길 식어가는 땀과 떨어지는 기온과...
옷깃을 여미며 여기가 어디쯤일까? 난, 지금 내 인생의 몇 페이지쯤 써 내려가는 걸까? 에밀 아자르는 자기 앞의 생에서 내리는 기차의 순간은 정해진 역이 없다고 했는데, 우리 친구들은 어려운 만남만큼 길고 긴 동행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마감의 자리. 아까 올라갈 땐 보지 못했는데, 하산해서 보니 아직도 붉은 빛 단풍잎이 노년의 로맨스그래이를 즐기면서 고고하게 서 있는 게 눈에 띈다. 누구나가 추구하는 길.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길. 사랑은 생명의 마지막까지 남을 위해 자신을 태우는 촛불의 빛 같은 것.
이제 이 가을을 보낸다. 이 등산을 분기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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