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도봉산. 안개 그 잡히지 않는 형체여!

no pain no gain 2007. 6. 16. 15:44

안개. 그 잡히지 않는 형체여!


토요일 일기예보는 정확했다.
자욱한 안개에 낮게 드리운 아침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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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도봉산 등산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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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지하철역을 지나면서 깊어가는 가을에 대한 생각에 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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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가을을 보내야지. 이 산행으로 가을과의 작별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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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도착하니 먼저 온 일행이 반갑게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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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앞으로. 자 산행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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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측 능선을 타고 포대능선을 거쳐 와이어 로프를 타고 암벽등반을 마치고 주봉까지 올라 곧바로 하산하는 코스로 마당바위를 거쳐 대피소로 내려오는 코스가 주 등산로 이며, 만일의 경우 비상사태 발생시는 최단코스로 하산코스를 변경하겠습니다. 이럴 경우 예상등반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될 예정으로 속도를 조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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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질문 없으면 출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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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이는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머리 위에도 떨어지고, 배낭 위에도 떨어지고 간밤 긴긴 길목에 수북이 쌓인 낙엽- 꿈의 시체들...- 을 밟으며 간다
.

우리네 인생도 봄처럼 피어나던 그 많은 사연들을 다 이루지 못하고 파란 낙엽이 되어 좌절 또 좌절의 계단을 하나씩 꺾어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인생과의 만남이란 절충과 타협을 배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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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능선의 마지막 생명수를 공급하는 감로 샘에 도착했을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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솨르르르 하는 계곡을 흩고 지나가는 긴 바람에 낙엽은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허공을 맴돌다 우수수 떨어진다. 아 육탈의 계절이여
!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올라선 능선. 떨어지는 땀방울에 힘들여 작은 바위 봉우리에 올라서니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십 여 미터 앞도 안 보이는 안개가 야속 타
.

능선을 타는 즐거움이란 좌우를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고 지금까지의 걸어온 행보를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어 좋은 것인데, 하늘은 더욱 낮게 드리워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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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대능선을 거쳐 주봉 가는 코스엔 와이어로프로 안전 대를 설치해둔 난 코스. 짙은 안개와 낮은 기압은 암벽을 더욱 미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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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손과 두 다리만이 내 생명을 책임져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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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으로 가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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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 같은 힘과 지그프리드 같은 용기와 시지프스같은 의지를 주소서
.......

때론 유격훈련처럼, 때론 다람쥐처럼 날렵하게 거친 숨과 반짝이는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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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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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코스는 끝났다. 깊은 숨을 몰아 쉬며 정상도착의 환호가 울린다
.
우린 개선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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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덜거리며 내려가는 하산 길 식어가는 땀과 떨어지는 기온과
...

옷깃을 여미며 여기가 어디쯤일까
?
, 지금 내 인생의 몇 페이지쯤 써 내려가는 걸까
?
에밀 아자르는 자기 앞의 생에서 내리는 기차의 순간은 정해진 역이 없다고 했는데, 우리 친구들은 어려운 만남만큼 길고 긴 동행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마감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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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올라갈 땐 보지 못했는데, 하산해서 보니 아직도 붉은 빛 단풍잎이 노년의 로맨스그래이를 즐기면서 고고하게 서 있는 게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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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가 추구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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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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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생명의 마지막까지 남을 위해 자신을 태우는 촛불의 빛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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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가을을 보낸다. 이 등산을 분기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