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인왕산, 경복궁, 청와대까지

no pain no gain 2007. 6. 28. 13:22

 

인왕산의 호랑이. ? 그 산에 간 이야기.

 

때는 바야흐로 장마철. 언제 어느 때 갑자기 쏟아질지 모르는 소나기처럼 청춘의 사랑도 그렇게 왔다 가겠지요.

협상을 잘(?) 해서 오늘은 비라 오지 않기로 했다는 이 총무님의 설명대로 흐린 하늘 일망정 비는 안 왔으면 하는 바램이 가득하지요.

 

오늘의 코스는 사직공원으로 시작하여 인왕산을 거쳐 경복궁을 둘러 청와대를 관람하는 이 타이틀만 본다면 아마도 조선조 무학대사가 삿갓에 짚신신고 죽장을 짚어가며 왕궁터를 정하려 하는 줄 알겠지만 우린 그저 역사의 흔적을 밟고 지나갈 뿐이다.

 

사직공원과 신사임당, 율곡 이이의 연관관계가 어떻게 성립되는지는 모르지만 두 분이 역사의 큰 족적을 남긴 모자 지간인 것만은 분명하다.

인왕산 자락에는 그냥 지나치지 못할 여러 가지 귀중한 사료들이 널려있다.

단군성전과 국선당과 무속인 들의 본거지까지......

 

 

팔각정을 지나면서부터 잘게 부서지는 석별의 잔 모래를 밟으며 산행은 시작된다.

시야가 트이지는 않지만 내리쬐는 땡볕과 잔뜩 습기를 머금은 높은 온도는 처음부터 땀깨나 흘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쯤 올라서 얼굴바위가 보이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말 안장처럼 생긴 바위 하나 사진에 담고 보니 옛 성곽을 재현 한 것까지는 좋은데, 군사 시설물을 위한 전선줄이 이리저리 얽혀있어 바라보이는 경관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은 옥의 티라 하겠다. 하긴 군사 정권시절부터 통제되어 40년이 흘러 이제 사 등산로가 개방되었다 하니 그 것 만으로도 고마워 할 일인지도 모른다.

 

인왕산의 호랑이라 함은 무학대사가 왕궁터를 잡을 적에 북한산을 조산(祖山)으로 하고 낙산을 좌청룡 인왕산을 우백호로 하고 남산을 안산(安山)으로 정했다는 데서 유래된 뜻도 있고 실록에 보면 궁궐에 까지 나타난 호랑이는 모두 인왕산에서 내려온 것으로 묘사되어있어서 옛적에 인왕산 깊은 산중에 호랑이 꽤나 살았겠구나 하는 더서 유래된 말일 것이다.

 

발 아래는 아파트 빌라 촌이 있고 도심 한 가운데 이렇듯 바위로 된 산세가 자리하고 있어 만을 그 옛날의 정선이나 안겸등의 화가들이 다시 살아나와 그림을 그려도 풍경 산수화 하나쯤은 멋들어진 작품으로 남을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수십 년 전만 해도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울창창하게 어우러져 산세의 기품이 살아있었는데, 이제는 군사 목적이든 개발 목적이든 쓸만한 나무는 모두 베어져서 남은 것이라고는 그나마도 재선 충의 공격으로 빨갛게 물들어져 가는 마른 소나무 가지를 볼 때 가슴 아픈 현실이다

 

정상에 올라 평상으로 놓아둔 곳에 얼려온 막걸리 얼음 둥둥 떠서 권하는 우정을 안주 삼아 천하 경치를 논하면서 자연상태로 나두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서울의 찌든 공해 때문이라도 제대로 된 나무가 없는 지라 조경수라도 심어서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바람 직 하겠다는 김창록 고문님의 고언에 귀 기울여야 할 때인 듯 하다.

 

하산 길은 자하문 고개로 내려가려 했으나 길을 막고 공사하는 바람에 안전한 산행을 위해 부암동 뒷길을 이용해서 약수터로 내려가기로 한다.

부암동 자하문 고개는 숙부 님께서 사시던 동네로 예전에는 자주 찾던 길이라 그리 낮 설지는 않다. 지금은 자하문 터널로 새로운 길이 뚫려 통행량이 분산 되었지만, 예전에는 모든 차량이 경복고를 거쳐 자하문 고개 가파른 길을 올라 편도 1차선의 세검정으로 내려서는 길을 통해야 했던 때가 이십여 년 전이다.

 

어느 고옥의 담장을 넘어선 살구나무 잘 익어 터져서 뚝뚝 떨어진 살구 하나 주워 들고 향기를 맞으니 새 큼 달콤한 그 향내가 옛 추억을 유혹한다.

어렸을 때 그 많던 살구, 자두나무는 다 어디 갔을까?

 

기억도 새로운 1.21사태 때 순직한 경찰관의 동상 앞에서 잠시 떨어진 일행들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이내 예약된 식당을 향해 줄을 지어 내려간다.

 

식사 후 경복궁에 들러 근정전의 옥좌와 지금 한창 무리 지어 피어난 나리꽃과 패랭이의 화사함 그리고 계단 석에 문양을 새긴 12지신의 하나와 얼굴을 맞대고 기념사진도 찍고 이십여 년 전에 하던 공사가 지금도 이어지는 현장을 피해 경회루와 취향교를 건너면 향원정이 선계의 모습처럼 물빛에 그림자 앉는 폼이 수련과 어울려 더욱 아름다운 연못을 돌아 박물관을 지나서 청와대 입성의 대기장소로 간다.

 

녹지원 잔디밭 속에 150년 된 반송 앞에서 그리고 푸른 기와를 얹었다는 청와대 앞마당을 거쳐 천하제일명당이라는 돌 비석과 경무대라는 흔적만 남기고 떠난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따가운 6월의 태양아래 천천히 걸어서 익산에서 공수된 통으로 된 돌로 4개를 세워   통일을 염원하는 뜻으로 지었다는 영빈관을 거쳐 청와대 투어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