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폭포를 찾아 가는 길.
언제나 그렇듯이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즐거움은 우선 부지런한 사람들 만의 전유물이다. 내일을 오늘 시작하는 준비성. 그 기대를 안고 밤차는 떠난다.
날밤을 세운다는 표현대로 밤새 달려 얼마나 구부러진 길을 달리는지 전혀 속도감이 없이 슬슬 겨우 앞만 보고 간다. 지금도 그럴진대 수백 년 전 주산지라는 연못을 만들 때 어느 개인이 땅을 파서 나무를 심었다고 하던데 그땐 어땠는지 감히 상상이 안 된다.
일요일 새벽 3시경이면 모두들 깊은 잠에 빠져들 시간. 그러나 하루 일정이 빠듯한 사람들은 저마다 식사준비를 하고 맛있게 먹는다. 이 새벽에.
주산지로 발길을 옮겨 여명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며 호수에 자리잡은 왕버들을 향해 셔터를 누르지만 찍히는 것은 컴컴한 어둠뿐. 달도 없는 밤이라 이정도 상황에서 사진을 보려면 B셔터로 30분에서 1시간쯤 열어놓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하리라!
하지만 그건 예전에 중형 카메라 메고 작품사진 할 때 이야기고 보면 적당히 몇 장 찍고 가메봉이나 갑시다.
부지런하게 걸어서 11시에 주왕산 주차장에서 만납시다 라는 인사로 절골매표소 입구로 발길을 옮긴다.
계곡에 처음 들어설 때의 느낌?
신선하고 풋풋한 찬 공기가 와락 달려들어 마치 기다리던 연인의 반기는 표정이랄까? 안개 적당한 무리 사이로 희붐하게 열리는 새벽. 절경의 모습은 물빛에 반영되는 선계의 첫 장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오랜 장마로 미끄러움을 감추고 이어지던 바위들은 자칫하면 미끄러져 물속으로 발이 빠지거나 넘어지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다.
계곡을 타고 물을 건너다 마주치는 징검다리.
징검다리.
추억 속의 징검다리 저편에는
돌아갈 수 없는
영원한 향수가 잠들어 있어
내 어릴 적 냇가
그 맑은 물빛에는
그 어떤 거울보다도
더 맑고 투명한 영혼이 숨쉬고 있어
꿈 속에서나마 건너던 그 징검다리는
이상하게 꼭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고 말지
내 사랑 그녀가 빤히 보고 있는데......
아- 어쩌면 좋아.
징검다리는 백여 번쯤 건넜을 게야! 더러는 미끄러지고 흔들리면서 중년의 징검다리는 마치 외 줄타는 아슬아슬한 가슴 조임과 함께 하지.
깊은 물에는 다리를 놓고, 떨어지는 폭포에는 우회를 하면서 물기 가득한 바위 벽엔 청정함의 표현인지 바위손, 부처손이 마치 밭처럼 펼쳐지고 떼를 지어 몰려다니던 피라미, 유유자적 그 모습을 그려 넣으면 영락없는 수묵화 한 장면인데, 또 다슬기는 어찌 그리 많던지요.
큼지막한 바위엔 어김없이 작은 정원을 이뤄 주변에 가득한 이끼와 언제 씨가 떨어져 났는지 휘어지고 늘어진 작은 나무들이 연출하기 어려운 모습들로 이어진다.
물길이 잦아지고 갈라서는 길. 가메봉 진입로로 들어서 지그재그로 가파르게 오르는 길목. 길손들 마중을 나왔나 철 이른 버섯들의 잔치가 한창이다.
고송들의 상체기는 60년대 살기 어렵던 시절 송진으로 외화벌이 하던 그 흔적들이 훈장처럼 남아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안개 속을 헤매고 올라온 터라 해가 뜨는 것을 보기 어렵고 깊은 산 속이라 나무 또한 우거져서 짙푸른 녹음 속에 내가 끼어 마음부터 파란색으로 물들어 점차 거칠어지는 숨소리와는 별개로 편안해지는 심경의 위안을 얻는다.
운무 가득한 산. 그 산을 비추는 햇살. 아마 상상하건대 요석공주가 원효의 눈 빛에 빠져 이런 산길을 헤메다녔 음 직한 정경이 펼쳐지고 가마봉 정상에서 산천을 둘러보니 천하가 운무 속에 빠져 흘러가는 배를 타고 내가 떠도는 기분이다.
仙人들의 자태가 상상이 됩니다. 도포자락 휘날리고 산 정상에 올라 술 한잔 마시고 시 한 수 짓던 모습이 훤히 보이는 듯 합니다.
사진 한 장 남기고 내려서는데, 앞서간 일행이 제2 폭포를 향해서 따라오라 일러 내 님도 그 길로 간 듯하여 소리쳐 불러도 대답 없는 메아리만 가득하다. 바람을 가르는 야생마처럼 달려 돌아오라 불렀다. 하마터면 또 다시 이산가족이 될뻔한 사연을 안고 금년이면 철거된다는 내원 분고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내려서다 보니 전생에 어느 인연이 엮였을까? 두 나무가 가지가 엮여 한 나무로 걸친 연리지(連理枝)의 형상이다. 천년 만년 그 알뜰 살뜰함 잊지 말고 잘 살기를 기원하고 또 내려선다.
어느 다리를 건넜을까 산세가 또 다른 세상을 만난다. 이게 주왕산 자락이구나.
제3폭포의 비경을 보고 좀더 내려가서 갈림길에 접어들어 제2폭포에서 사진을 남기고 계곡물 흘러가는 줄기를 깎아서 갈을 만든 곳. 제 1 폭포에 오니 이제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침에 출발해서 이른 산행이 이루어지는 듯한 일행들을 만난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 어느 님이 생각났을까? 첩첩 산중이었던 이런 곳에 초막짓고 살아도 참 괜찮은 생이었겠다 싶은 곳을 뒤로 하고 우뚝 속은 바위며 툭 튀어나온 이마 같은 바위가 아름다운 길을 따라 진흙으로 잘 포장된 입구로 간다.
주왕산의 명칭부터가 애매모호한 중국 당나라 때 반란을 일으켜서 패한 후 신라로 도망쳐 숨어 살았다는 전설인지 아니면 산세가 아름답고 기묘해서 주왕의 전설을 갖다 붙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학소대며 사람얼굴을 닮은 것 같은 시루봉이며 주봉을 바라보면서 진달래 비슷한 물가에 자라나는 수달래의 모습까지 보고 매표소를 지나면서 문화재 관람료의 근본이 무엇인가 했더니 절에 모셔둔 불상 몇 개가 경상북도 지정문화재로 등록이 되었다 한다. 좀 어처구니가 없다.
즐비한 상점거리를 지나는데 이 곳 청송에서만 난다는 화문석 상점이 있어 들어가 보았더니 돌을 깎고 다듬어서 그 속에 꽃처럼 피어나는 무늬가 아름답기도 하지만은 기백만원씩 하는지라 대충 눈요기만 하고 내려선다. 차라리 화문석 전시장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입장료를 받는다면 그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안동으로 이동해서 안동 댐에 들러 헛제사 밥을 먹고 월명교 누각 세워 둔 것까지는 좋았는데, 출입문을 잠궈둔 것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대도 본질을 흐리는 행위가 아닌지요? 관리자는 키 가지고 오수를 즐기러 갔나?
땡볕에 도착한 하회마을. 예전에 안동에서 근무할 때 고고한 여름 달빛을 밟고 영주 소백산에서 밤마다 걸어서 풍기 예천을 지나 낙동강 강둑을 걸어 내려왔던 추억 속의 하회마을 소나무 숲에서 쉬어가던 때가 생각 납니다.
산행의 즐거움을 알고 행한다면 그 무더웠던 산행 길도 무척 아름다운 영상으로 기록 되겠지요.
그런데, 주왕산을 넘어왔는데 전설 속의 주왕은 어데 묻혀있는지 아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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