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바람마저 상큼한 내변산을 찾아
지난 작년 시월에 다녀오면서 추석 이면서 서걱이던 마른 풀 내음의 향취를 찾아 다시 찾은 곳 내변산.
간밤에 부던 바람과 비를 생각한다면 어찌 그리 고운 쪽빛 하늘을 상상할 수가 있으련만 시치미 뚝 뗀 그 모습으로 남쪽으로 흘러가는 흰 구름과 함께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진다는 만경평야의 청 보리 밭을 지나 하늘 향해 손 흔들면 손가락 끝에서 푸른 물이라도 묻어날 것 같은 봄날을 변산의 한 구석 남여치에 머문다.
홍부장의 결혼식 관련해서 많은 상임 진이 빠져나간 자리 김주선부장이 후미의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터, 급하지 않고 여유로운 산행이 시작된다.
언제부터인지 바쁜 스케줄에 혹사시키던 마나님의 산행이 썩 좋은 컨디션은 아니다.
점점 쳐 지는 듯싶더니 일행들은 모두 떠나고 둘만이 오붓하게 남여치의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는 형국이 됐다. 가다 쉬고 또 가다 쉬고 이번 코스는 10여 키로 정도.
한번 가본 터라 산세의 흐름을 알기에 천천히 보조를 맞추며 지나가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친다.
가슴에 핀 꽃
……………………….-홍광일작.-
휘이-
사람들은 바람소리라고 한다
그대를 부르는 내 마음인걸
쏴아-
사람들은 파도소리라고 한다
그대에게 드리는 내 마음인 걸
가슴에 핀 꽃
사람들은 그런 건 없다고 한다
늘 내 가슴에 피어있는 그대를
………………………..
싱그러운 산들바람을 가슴으로 느껴본 적이 있으신지요?
어디 먼데 이야기를 잔뜩 싣고 다가와 코끝을 스치면서 향기로운 산 내음을 가슴에 가득 남겨주고 아무 미련 없이 사라지는 봄 바람의 향취가 그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하늘과 땅이 맞닿은 이 산행 길에서 님이 주신 마음의 선물인 것을……
건강이 허락하고 신이 부여해 주신 이 순간의 느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품어 보신적이 있는지요?
고귀한 것을 귀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바로 신선과 같은 마음이 아닐련지요?
하늘을 뒤 덮은 울창한 숲길에 풋풋한 흙 내음까지 곁들여 어느 골짜기를 지나칠 때는 은은하게 풍기는 더덕향기까지 더해져 쏴아 하는 바람이 땀까지 씻어주는 향기로운 봄날입니다.
지난 가을 산행 때 하마터면 혼을 뺏길뻔한 고혹한 향기로 유혹했던 진노랑 상사화가 이제는 잎만 무성한 채 무리 지어 월명암 근처에 널려있다.
언제부터인지 정상적인 페이스를 찾아 걷는 산행 길이 주 능선을 타고 빠르지도 않으면서 잘도 간다.
일기변화가 산행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자주 산을 찾는 사람들은 잘 알 테지만, 오늘처럼 이렇듯 상쾌한 산행을 할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 더러는 빗길과 눈을 바로 뜨지 못할 바람과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과 지면에서 올라오는 복사열. 그리고 푸석이는 먼지까지 한 몫 한다면 한 겨울의 거세게 몰아쳐서 갈 길을 잃어버리게 하는 눈보라까지......
오늘은 더 없이 산행하기 좋은 날이다.
선녀탕에 다다를 즈음 시원한 물 줄기소리가 남도 제일 높은 곳에 존재한다는 직소폭포의 그 위용 자체도 아름답거니와 소를 이루는 그 그루지기 물빛도 옥 빛 이어서 한참을 바라보면 눈 빛 마저 도 옥 빛으로 물들까 져어스럽다.
물가로 난 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니 작년에 식사하던 자리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시락을 먹는 모습은 정겹고 여기저기서 신선주 한 잔 하자며 유혹하는 손짓도 많았지만 여기서 식사를 한다면 앞으로 두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걸 아는지라 식사시간은 지났지만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마치 상고머리를 깎고 남은 머리에 푸른 물감을 들인듯한 관음봉을 바라보며 원암재에 자리잡고 않아 식사를 한다.
서녘 바다와 논과 밭이 어우러진 촌락의 풍경이 정겹고 가득 들어찬 물결이 보기 좋은 자리.
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반갑다는 표현인지 그간의 흘린 땀을 한 순간에 씻는다.
말과 글은 소중하다.
옛 중국 선인이 후배에게 보낸 편지에 젊음을 빗대어 ‘청춘’이라는 푸른 봄 날을 인용한 것이 근래에 와서는 청춘과 젊음이 동의어가 되어버린 현상. 거꾸로 생각하면 요즘 젊은 사람들의 통칭되는 줄여서 사용하는 단어들이 먼 후일 언젠가는 청춘이라는 단어처럼 주축을 이루는 말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원 |
암제를 넘어 이제는 하산 길. 삼거리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지난 번에도 그냥 지나쳤던 관음봉. 언젠가는 꼭 한번 들러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 유혹의 600여 m 라는 표지판이 발길을 안내한다.
겉으로 들어낸 모양부터가 범상치 않았던 모양새의 그 우뚝 솟은 봉우리는 지금까지와 다
르게 암벽에 파이프를 밖아 놓은 모습부터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는 험했던 바위 벽을 때로 기어가듯 오르다 좌측을 보니 우리가 지나왔던 그 산호수의 가득한 물결이 마치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놓은 듯한 모습으로 비치고 몰아치는 바람은 떡갈나무 잎새를 여염집 처녀의 치마를 뒤집듯 허연 잎을 드러내며 땀을 식혀준다.
함께 간 일행은 관음 봉 정상에 그 흔한 표지 석 하나 없다고 투덜대기도 했지만 그러면 어떠랴 한 눈에 들어오는 내소사 정경이 발아래 펼쳐지고
시간을 보니 급할 것 없이 천천히 하산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전나무 숲길이 제일 아름답다는 내소사 진입로를 따라 역시 부처님 오신 날이 머지 않아서 인지 절을 찾는 그 수많은 인파들 속에 묻혀 절 마당을 한 바퀴 돌며 수백 년 된 느티나무 그 넉넉한 품에 안겨 잠시 쉬고 채색한지 오래되어 사납게 보이지 않는 네 귀퉁이를 받치고 선 용머리의 기상과 고려 때 제작된 종 고리의 형형하던 눈 빛과는 대비되는 초라한 모습의 용 꼬리를 보고, 사천왕의 휘어진 칼을 보면서 제대로 쓰려면 칼부터 새로 벼려야 것 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입구로 나오니, 선두에 서던 이부장이 전어구이에 탁주 한 잔 하면서 손짓을 한다.
늠름한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산 넘어온 사람들만의 뒷이야기와 안전산행에 협조하신 회원 여러분 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막걸리 몇 순배의 이어짐 속에 마지막을 장식한 6살 소년의 용기와 김주선 부장의 합류로 요강이 벌떡 일어선다는 복분자주를 청했으나 2% 부족한 것이 아니라 2%밖에 안 들어간 복분자주의 싱거움을 탓하며 전어 굽는 냄새 속에 산행을 마감한다.
돌아오는 길.
꽉 막힌 고속도로를 버리고 부안의 정수를 느낄 해안도로를 따라 더러는 해변의 백사장과 또 출렁이는 해안의 물결과 좀 경치 좋을 만한 곳은 역시 팬션으로 몸살을 앓는 서해안 풍경을 떨어지는 낙조의 조명 속에 그리면서 지난 번 총무의 약속대로 아직 본격 시판되지 않은 스파이더맨 3를 보면서 신문화의 호사를 누리고 서울로 행하는 길은 몹시도 막혔지만 최고 베테랑을 자부하는 우리 기사님의 안전운행으로 무사히 도착. 풍경 좋은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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