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 깊어가는 가을 날 추적이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이글을 쓴다.
지혜보다는 용기가 앞서던 젊은 날의 하룻날.
청명하고 따사로운 햇살에 고추잠자리 코스모스 희롱할 제!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마음은 지리산엘 떠나고 있었는데, 남원에서 걸어서 한양에 과거도 보러 갔다는데, 지리산쯤 못 가랴 싶어 동림교부터 걸어 주천면 용담사를 거쳐 비포장 도로를 터덜터덜 걸어서 육모정까지 갔는데-그땐 입장료가 없었다- 처음엔 넓게 뚫린 군사도로-남원에 주둔하던 9530부대에서 길을 공사해 두었었다- 를 타고 터벅이면서 산을 오르는데, 한 면을 깍아 지른 듯한 계곡과 산 사태가 나서 무너져 버린 흙더미 속에 잊혀진 길을 더듬거리면서 정령재를 넘으니 해가 지고 있었다.
일박을 하고 나면 피곤에 지친 다리가 좀 풀리려나 해서 텐트를 치고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바스락 이는 낙엽 소리, 잔돌 구르는 소리, 풀벌레 울음소리, 먼 듯 가까운 듯 한 곳에서 들리는 들짐승 울음소리에 잠 못 들어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몹시도 한기가 느껴져서 잠이 깨보니 그 옛날의 A형 텐트가 한 쪽이 뽑혀서 바람에 펄럭이는데, 텐트를 바로잡고 틈새로 하늘을 보니 손을 내밀면 한 아름 가득 딸 것 같은 무수한 잔 별...... 가슴 가득 차오르는 듯한 기쁨과 환희...... 잠을 청했으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베르테르보다 더한 연민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에 일어나니 아뿔싸! 몸은 분명 내 몸인데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구나. 퉁퉁 부은 다리.... 울고 싶어라.
그래도 용성인의 기개는 남았던지 배낭을 걸머지고 걷다 쉬 다를 반복해가면서 반야봉을 거쳐 도착한 노고단.
노고단의 가을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억새풀 일렁이는 산 파도를 바라보면서 어느 님이 아름다운 산자락을 빚어 두었는지? 함께 와야 했을 만한,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였는지를 생각에 잠겨......
마지막 하산 길은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노고산장에서 화엄사까지의 이십오리 10 킬로 황톳길을 추적 이는 가을비를 맞으면서 청승맞은 노래를 부르면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은혜를 입었던 일들을 하나씩 떠 올리면서 정말 내 발로 걸어서 이 산을 내려 간다면......
"차 카 게 살 자"를 되뇌면서......
넘어지고, 엎어지고, 미끄러지고, 구르고.........
사람이 할 수 있는 동작은 모두다 해보면서 추워서 떨리는 이빨을 열심히 부딪치면서 어깨위로 피어나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가을비를 맞았다.
처음엔 배낭이 젖고, 상의가 젖고, 바지가 젖으면서 서서히 파고드는 빗물이 슬금슬금 등줄기를 내려와서 팬티가 젖을 때쯤엔 온몸에 오한이 들면서 인간세상이 이렇듯 추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난 전혀 색다를 환상체험을 했었다.
오늘처럼 가을비가 추적 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날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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