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옛 이야기가 숨어있는 가리왕산을 찾아서
6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시작된 일출을 보고 서둘러서 버스를 탄다.
정선에 도착하기 전에 벌써 약속된 시간이 초과되어 상임 진들은 귀가 길을 염려하는 독촉이 예사롭지 않다.
7시간이나 7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산행을 오늘도 5시간으로 다녀오자고 한다.
이크 이게 뭔 소리여!
사실 이 가리왕산을 오기 위한 여정으로 몇 번의 계획을 잡았다가 산불 때문에 혹은 사고의 위험으로 취소된 경우가 있어서 그나마 이렇듯 산행을 한다는 게 어찌 보면 행운일지도 모른다.
가리왕산에는 산삼이 널렸다잖은가(?)…….ㅋㅋ
출발지의 물빛부터가 옥 빛으로 착 가라앉은 모습모습으로 거세게 흘러내리는 계류의 수량으로 미루어 북쪽 어디 메쯤 정상이 있으리라는 짐작뿐 파란하늘과 골짜기의 길을 따라 하늘을 덮어버린 숲 속에서 청류의 물소리를 거스르며 가까웠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다 가끔은 파란 이끼를 두텁게 껴입은 바위의 당당함이 연신 흐르는 땀을 흠 치면서 반쯤 성공한 만족감을 준다.
쉬지 않고 열심히 가다 보니 고산지대의 습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족보가 다른 고사리인지 왕관모양의 거대한 이파리가 마치 인디언 추장의 모자처럼 활짝 펼쳐져 있어 이건 족속이 다른 왕족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갈참나무 밑동은 썩어서 구멍 뚫린 모양새다. 언젠가 지나갔을 화마에 할퀸 상처까지 안고 있는 모습에 더러는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쓰러진 나무는 물크러졌고 더러는 바짝 마른 미라처럼 등산로의 지친 길손에게 손 내밀고 있다.
해발 300을 본 것 같은데 1시간 30분을 걸쳐 임도에 도착 700은 넘은 듯한 상태에서 쉼 없이 물 한 모금 마시고 땀을 흠치고 또 전진이다.
가파른 경사가 이어지면서 이젠 물 소리마저 끊겨 가끔 울리는 새 소리와 오늘따라 쉬는 날인지 바람도 없다.
모자가 필요 없을 정도의 울창한 산림 속에서 떡갈나무 갈참나무 더러는 몇 백 년이 넘었음직한 육송의 거대한 자태까지 이어지다.
군데군데 인공 조림한 흔적으로 이깔나무, 전나무의 어울림 속에 위로만 위로만 올라가는 가리왕산의 등산로에는 능선길이 없다.
국립공원에 가면 친절하게 세워놓은 안내 이정표는 길손들에게 커다란 위안과 앞으로의 산행을 가능하게 하는 척도인데, 이 곳 상에는 입장료 수익금은 어디다 다 쓰는지 제대로 된 표시 판이 없다.
더러 나타나기 시작하던 그 잎새 큰 불알나물인지 개불알 나물인지가 뭉텅뭉텅 무더기 져서 자연상태의 등산도 발길에 채이던 개활지가 나타날 즈음부터는 간간이 보이기 시작한 철쭉 꽃잎들이 바로 어제 떨어진 듯 널려있고, 정상까지 15분 거리라는 안내문에 힘을 얻어 지나가니 표고의 차인 탓이리라 정말 흰 꽃에 분홍빛을 약간 섞은 가리왕산표 철쭉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정상에 도착. 사방을 둘러보니 북쪽으로 티없이 맑은 하늘가에 흰구름 몇 점이 고산 준령을 쉬어가는지 뭉개 구름처럼 피어올라 멀리 들러서 있고 남쪽 향한 주목나무는 한 쪽은 가지가 없는 상태로 줄기마저 기울어져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예전에 갈왕이 난을 피해 살았다는 전설을 안고 있어 갈왕산으로 불리다가 일제 침탈 이후 가리왕산으로 불려 졌다는 산.
그때 갈왕이 용을 데리고 살았나? 넓적한 편린처럼 오래 전에 떨어진 용 비늘을 모아서 쌓은 듯한 산 정상의 돌탑은 아마도 겨울 등산객들이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인 듯 북측은 높이 쌓고 남쪽은 비워둔 상태로 미루어 짐작이 간다.
먼저 온 일행들의 식사자리에 끼어 함께 식사를 한다.
잘못된 소문을 타서 그런지 산에 풀 반 나물 반이라는 이름답게 여기저기 흩어져서 떡을 찔 때 쓴다는 떡취를 비롯하여 곰취며 무슨 무슨 나물들을 아예 보따리(?) 까지 챙겨와서 뜯는 모습은 과히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지역 주민들 중 산나물을 뜯어서 생계를 이어가는 분들도 있을 텐데 하는 나의 생각이 기우일까?
식사를 마치고 땀이 식어갈 무렵 이종수 총무의 독려가 시작된다.
하산이 늦으신 분은 기차를 타든 헬기를 타든 알아서들 오시라는 설명에 기념촬영이 끝나자 마자 모두들 하산을 서두른다.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하산 길은 빠르다. 두 사람이 비켜 갈 수 없을 좁은 길 인데도 관리되고 있다는 표찰이 붙은 주목나무의 한쪽은 고사되어 하얀 뼈만 드리운 체 속은 비어 있어도 아름드리가 넘는 그 위용과 역사의 숨결이 말하지 않아도 흠향이 느껴진다.
사람이 길을 만들고 길이 사람을 만든다!
누군가 먼저 헤치고 지나갔어야 했을 선구자의 길.
이 적막한 산중에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가야 했던 그 분의 발자취를 따라 줄을 지어 내려서면서 올라선 만큼 내려와야 한다는 진리가 통하는 곳.
어디만큼일까 노무나 울창한 술에서 어디선가 호랑이 울음소리라도 들릴듯한 침묵이 한 낮의 공백으로 숨어있는 곳.
한 쪽 사면은 깎아지른 듯한 경사로에 비탈을 딛고선 나무들의 어깨를 맞대고 견고하게 짠스크럼처럼 보이는 어느 구석엔가는 심마니들의 발길을 유인하는 산삼 몇 뿌리쯤 숨어있으리라.
쉬지 않고 순식간에 내려선 임도.
가끔은 산악자전거나 산악마라톤의 행사를 한다는 산을 휘둘러 해발 1000미터의 테두리 코스를 내려서 우리는 빠른 하산을 한다.
경사. 경사. 급경사.
뒤 사람에게 조심하라는 전달이 이어지면서 잔돌 하나 잘 못 밟아 미끄러지는 순간이면 어디 가서 찾아야 헐지가 심히 걱정되는 하산 길.
바짝 마른 등산로에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과 가끔씩 숨어있는 돌멩이까지 살살 아우르면서 하산을 한다.
사실 등산로에 썩지 못하는 낙엽은 모두 환경파괴의 결과물이다. 갖은 공해로 인한 산성비가 내리고 그 산성비에 박테리아가 제대로 살지 못하여 낙엽이 잘 썩 않는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얼마나 서둘렀는지 하산해서 보니 1시간 30분이 채 안됐다.
시원하게 준비해둔 구기자 막걸리하며 지역 특산 별미로 꼽힌다는 도토리 묵과 감자전의 나눠먹는 인심 속에 어느 분은 발이 퉁퉁 부었다고 애교 섞인 아우성도 있지만 서로의 격려 속에 누구 하나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해준 가리왕산 산신령이 숨어있음 직한 산 정상을 바라보며 가리왕산의 추억을 곱게 접는다.
그런데 가리왕산 다녀오신 분 들! 혹시 호랑이 꼬랑지는 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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