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산딸나무의 추억

no pain no gain 2007. 5. 28. 15:15

산딸나무의 추억

 

 

저물 녘 어스름에 오른 산행 길은 서산에 걸린 듯 구름에 감싸인 둥근 해도 무척 피곤하게 보였습니다.

 

숲 속 어느 정도 키 작은 나무 사이로 넓은 잎 위로 피어나는 하얀 꽃이 아름답습니다.

 

산행은 초기가 힘이 많이 듭니다. 경사진 깔막 길을 가파르게 오르다 보면 어느 센가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에 능선까지의 거친 숨소리는 어느 결엔가 불어오는 미풍 속에 송홧가루 내음까지 섞여 한결 봄의 끝자락 임을 알 수 있지요.

 

산길을 호젓하게 걷다 보니 예전 고고한 달빛 아래 내님과 좋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땐 왜 그리 어색하고 솔직하지 못했는지?

밤 길을 걷는 것이 무섭다는 말을 무시하고 혹여 떨리는 내 마음을 들킬세라 몇 발자국 뒤에서 걷던 그 길목에 지금처럼 그때도 달빛에 더욱 밝게 빛나던 산딸나무가 군데군데 피어있었지요.

 

은은한 향기까지 품고서 우리들의 만남을 축복하던 밤이었지요.

 

먼 후일 그 추억이 이렇듯 소중하게 달빛아래 떠 오를 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지요.

마을 길로 들어선 어귀에 어느 집 담장을 타고 넘은 몽글몽글 피어난 수국 꽃 무더기와 함께 낮은 음 베이스로 깔리는 개구리 들의 합창과 간간이 추임새를 넣어주던 뻐꾸기의 엇박자 메아리도 아련한 그림 속에 이젠 되 돌릴 수 없는 머나먼 고행 같은 추억이 되어 버렸지요.

 

 

어떤 이야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나눴는지는 아무런 기억도 없지만 밤 향기를 흐르는 그 외진 산길에서 코끝을 스치우던 바람은 오늘도 새롭게 기억을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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