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 이야기.
처갓집 길 건너엔 해공 신익희 선생 생가가 있습니다.
예전엔 작은 규모에 초라하게 낡은 집에 그 분의 자손이 살았는데, 들어가 보면 집안은 허술하기 짝이 없고
문살 사이로 창호지는 다 떨어지고 대문부터 부실하게 부서지고 해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인물치고는 너무
초라한 후세의 인심이 아닌가 하는 소회가 있었는데, 자료를 보면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해 임시정부 수립과 동시에 내무차장·외무차장·국무원비서장·법무총장·외무총장·문교부장 등을 지냈다.
내무부장 재임 중 8·15해방을 맞이해 귀국했으며, 귀국 후에는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는 노선을 달리했으며,
정치공작대·정치위원회 등을 조직하여 정치활동을 했다. 그 이후에는 국회의장을 두 번씩 거친 인물인데,
나중에 이승만세력과 대립에 되어 자유당과의 선거전에서 호남에 유세하러 갔던 중에 뇌일혈로 사망했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인가부터 주변의 집을 철거 하기 시작하더니 비석을 세우고 길을 넓히고 마당에 주차장을 만들고
하면서 한 동안 법석을 떨더니 점차 유원지화 하면서 변해 가는 걸 지켜 봤는데, 시간이 흘러.....
처갓집 거실에서 한가 하게 책을 읽고 있는데, 어디선가 풍겨오는 향내?
이 냄새의 출처가 궁금하여 집 뒤를 돌아가 보니 신익희 선생 생가 집 마당에 심어져 있던 오래된 향나무가
확장사업의 일환으로 베어져 딩굴다가 바싹마른 가지가 되어 쓰레기를 태우면서 함께 타는 냄새 였던바, 불을끄고
불탄자리를 깍아내고 나서 우리집으로 오게 된 사연이었습니다.
평형을 맞추기 위해서 잘라낸 다리 부분이 조각으로 남아 있던 것을 다른 용도로 쓰려고 다듬다 보니 그 향나무의 연륜이 보입니다.
나무가 태어나서 19살 때 까지는 순탄하게 잘 자랐고요, 21살까지 무척 고생을 해서 검게 그을린 흔적도 있고,
25세 부터는 아주 멋지게 생활하다가 35 무렵에 꺽어 지는 고통 속에 복륜이 생긴 걸 보니 일대 변화가 있었나 봅니다.
잘 나가다가 45 무렵에 또 한번 움츠려 든 흔적이 있고요. 연륜 50에 베어진 흔적으로 남았지만 어찌보면 역사의
흔적과 맥을 같이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동으로 뻗은 가지는 폭 넓게 잘 자라있었지만 아마도 다른 가지에 치였거나 북쪽으로
뻗은 가지는 50 여 년의 연륜에도 채 2 cm 가 안 되는 오밀조밀한 생을 산 흔적으로 남아 고난 했을 지난 날의
연륜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겠지요.
희노애락의 세월 속에 묻어온 흔적들은 꽃피는 봄날과 밤새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폭풍으로 온몸으로 감내하고
따사로운 가을 햇살과 눈 덮인 겨울을 반복하면서 어느 날 누군가의 손에 베어져 버린 이 향나무처럼 우리네 인생도
사라져 가겠지요.
아무리 자기 앞의 생에 착실하게 산다 한들 세월의 부름에는 변화가 없으리라 생각하면 내가 마치 해탈이나
한 듯이 보이지만 나도 부질없는 중생인지라 향나무의 흔적만큼이나 남길 수 있을지 가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아침에 머리 속에 가득 찬 잔상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향나무는 죽어서 향내를 남긴다!
건강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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