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입석대를 우러러보며
천둥 번개를 치던 3시.
깊은 잠에 빠져서 델리키스틱한 싸이키 조명쯤으로 여겼다가 아침 도시락을 준비하는 과정은 언제나 부산스럽다.
촉촉하게 젖은 바 닦을 보면서, 예보에는 비 개인 오후에는 쌀쌀한 날씨가 입동추위를 몰고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준비해간 겨울 복장이 사뭇 부담스럽다.
광주시내에서부터는 밀리면서 여기저기 건설과 발전의 흔적들이 더욱 길을 혼잡스럽게 엮어 놓았다. 몇 년만 지나면 길을 찾지 못할 정도로 변해가는 도시의 이면에는 예스러운 흔적을 고스란히 아픔도 있으리라.
증심사 입구에는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해가는 광주 비엔날레의 행사와 겹쳐 주차장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산행에 앞서 설명과 곁들여 출발하자마자 계곡으로 이어진 집들이 한창 김치를 담느라 어수선한 분위기인데, 그 곁에는 전국 김치 담그기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는 문구가 보여 그 유명하다는 전라도 김치의 본산이 바로 이곳인가 하면서도 이제 시작인지라 눈요기만으로 섭섭함을 달랜다.
“ 아! 빨랑빨랑 가드랑께? “ 하는 소리에 뒤 돌아보니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사투리를 듣지만 이곳만의 그 유명한 전라도 표준어가 쉴새 없이 들린다. 그만큼 격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리라!
겨울용 셔츠가 부담스러울 만큼 땀을 씻어가며 약수터에 들러 잠시 쉬니 선발대는 바로 출발이다. 임용불가라고 쓰여 있지만 목마른 자가 어디 그것쯤하고 한 바가지 마시면서 이럴
땐 “ 물 마시면 30분 후엔 배 아플 것이드랑께? “ 라고 써놔야 안마실 텐데 하는 농담을 날리면서 올라선 곳이 평편한 아스발트 길(?)
등산 온 것인지 산책을 나온 것인지 구분이 안가는 사람들과 섞여 서 토끼 등을 타고 가다 곳곳에 단풍나무 위 잎새만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평행봉을 설치해 둔 곳을 기점으로 다시 숲으로 접어들어 곳곳에 소나무 재선충의 피해를 입은 벌채해둔 토막이 여기저기 널려있어 저렇게 두면 안되고 차곡차곡 쌓은 다음 약을 치고 비닐로 밀봉해서 완전히 죽여 없애야 되는데 하면서 진행을 한다.
한참을 가다 뒤 돌아보니 김주선 부장의 내무장관과 나란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본에서 재료로 써서 세계적으로 유명해 졌다는 욕조의 원료인 편백나무 숲길을 뒤쳐져 온다.
쉬는 날이 없을 정도의 바쁜 우리 내무장관의 스케줄.
쉬거나 포기하지 않고 속도는 더디지만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인 그 열정에 무한한 박수를 보내면서 그루터기 넓은 용주 삼거리에서 단 감하나 나눠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방향감각이 정확하지 않지만 앞면 중봉을 향해 억새 풀이 무성한 길을 사잇길 속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할 만큼 키 높이의 무성한 아름다운 오르막.
숨을 몰아 쉬면서 천천히 진행을 한다.
어느 지점 뒤 돌아보니 탁 트인 조망에 광주시가 흐린 가운데서도 한 눈에 들어온다.
암석 하나하나가 만고의 풍상을 의연하게 이겨낸 세월의 흔적을 안고 규봉의 멋들어진 바위
사잇길로 나가면서 썩 괜찮은 산자락이란 평가를 한다.
오르기를 멈추고 사방이 훤히 트인 곳에서니 어느덧 정상.
흘린 땀이 식을 새라 재빨리 방한복부터 걸친다.
김동수직장 내외분과 함께 넷이서 점심을 나누고 분지 가득 펼쳐진 억새 밭은 군부대 주둔지 였던 것을 철거시키고 자연 생태 복원 중이라는 안내문이 광주시민의 위대한 힘이라고 생각이 든다. 다른 지역에서는 정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가?
군사도로를 따라 장불재에 도착. 입석대를 향해 오르면서 다른 사람들은 조선대니 전남대를 간다는데 꼭 공부 못하는 친구가 입석대나 서석대를 간다고 고집한다는 농담으로 피로를 푼다.
어느덧 육각기둥의 우람한 그 위상은 6000만년전의 화산 분출로 흘러내린 용암이 급하게 식으면서 5각 또는 6각의 돌기둥이 주상 절리란 위용으로 굳건하게 버티고 섰다.
가슴으로 안아 숨결을 느껴 보고 입석대의 지난 역사의 이야기를 나직한 음성으로 들려주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쉬움이라면 그 고상한 돌 기둥에 웬 낙서 오래 전에 썼든, 근래에 썼든 흠집으로 남은 그 글씨들은 아픔의 상처를 담고 서 있는 듯싶어 애석함이 들고 또한 바로 앞 작은 공터에는 어느 분의 묘지인지 마치 전설 따라 삼천리에나 등장할 듯한 묘한 상상이 든다.
입석대를 봤으니 서석대도 봐야 하지 않겠나 하고 더 나아가 석양의 햇살에 반짝이는 돌 절벽이 마치 수정처럼 반짝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서석대를 거쳐가는 길은 입석대 같은 감흥은 주지 못한다.
천황봉 가는 길은 철조망으로 막혀 자연림 숲길 사이로 난 경사진 길을 타고 내려와 군사도로에 이르니 이제 길게만 이어지는 원효사 가는 하산 길이 보인다.
갑자기 하늘이 걷히면서 드러난 서석대 사면은 컴컴해서 보이지 않던 가을 숲의 정경이 마치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양 방긋 웃는 모습으로 낮을 내 놓는다. 그때 이어지는 단성 또 탄성. 가을의 정령은 아마도 저 숲에 있나 보다.
아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때로는 손을 잡고 걷다가 흘러간 노래도 한 곡조 뽑으면서 11월 저물어 가는 석양을 뒤로하고 내려선 길.
어디선가 지름길로 가는 숲길을 찾아 들어 내려가다 누군가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서쪽으로 고개 들어보니
단풍잎 잎새마다 사연을 안고
핏빛 뜨거움으로 솟아나
명치끝 그 깊은 선율을 튕겨
역광으로 투사되는 그 선연한 아름다운
어느 처자의 마음 씀이런가?
다시 온다는 약속은 못해도
발 뿌리에 채이는 서러움이여
가슴으로 흐르는 눈물
어느 님의 손끝으로 닦을 수 있나?
아스발트 길 가로 늘어선 단풍나무 잎새는 노랗고 빨갛고 파란 장단으로 구불구불 지그재그 엮어서 내려선 길목.
갈색 추억의 긴 그림자만이 자국자국 남아있네.
후기: 아침 나절에 어제 산행기를 쓰려고 하니 가을비 촉촉하게 젖은 그 스산함에 그만 붓을 놓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게 가을의 서정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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