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지의 고장 정선 민둥산.
지난 영월 단풍산에서 보낸 추억을 더듬어 같은 길을 따라 가다가 정선의 이정표로 갈라지는 아라리의 고장, 억새를 찾아 민둥산을 갑니다.
망해버린 고려의 충신들이 충절을 다짐하며 7명의 선비들이 숨어들어 살았다는 거칠현동(居七賢洞). 과거를 회상하며 지어 부른 노래가 계승 발전되어 아라리의 모체가 되었다고 하며 남녀간의 사랑과 그리움, 남편에 대한 원망, 시집살이의 고단함, 고부간의 갈등, 산골마을의 지난한 삶, 땟 목을 타는 일의 고단함과 유희 등을 그때마다 시대적 배경으로 삼아 가삿말을 엮어낸 민중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베어있는 아리랑의 고장 정선이다.
일제 강점기 때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울분을 애절한 가락에 담아 내기도 했으며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제목으로 탄생하는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한 시원의 땅이다.
언제부터 억새 바람이 사람들 가슴 속으로 소용돌이 쳐 왔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오르는 초입은 다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잘려진 나무들의 상채기들이 아직도 아픔을 호소하는 듯한 몸부림의 길목이 오르기 쉽게 하기 위해 지그재그로 다듬은 등산로가 예전 같으면 건축 시 버팀목으로 사용했을 텐데 요즘은 누가 통나무 집을 짓지 않는 이상 별 사용처가 업는 듯해도 그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를 많이 방출해서 삼림욕의 형태로 사용가치가 높다는 그 낙엽송 숲길을 따라 올라 가면서 그 옛날 젊어서 요절한 가수 배호가 부른 노랫말 중에 “ ~낙엽송 고목을 가슴에 부여 앉고 울고만 싶어라 ~ ” 얼마나 가슴에 맺힌 게 많았으면 그토록 깊은 설움이 쌓였을까 하면서 그 젊은 스물아홉의 나이로 인생을 마쳤으니 서럽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할 때 산 허리쯤에서 선두가 멈춘다.
모든 행렬이 그렇듯 앞에서는 천천히 걸어도 중간중간에 쳐지고 늘어지는 공간이 길어지다
보면 후미에선 뛰어도 바쁜 행렬이 된다.
일기예보에서 하도 춥다고 떠들어대는 통에 걸친 방한복이 거추장스러워질 즈음에 옷을 벗
고 능선에서부터는 몇 일전에 내린 눈 녹은 물이 질컥거리는 등산로를 따라 목책으로 가두어버린 억새들의 합창을 바람결에 흘러 들으면서 저 건너 산 골짜기엔 아직 녹지 않고 허연 배를 드러낸 겨울의 초입임을 증면하는 듯하다.
카르스트 지형의 특색인지 석회암내 탄산칼슘이 빗물에 용해되어 지반이 침하된 상태.
가끔씩 보이는 둘 들이 누가 그리 정성 들여 다듬어 둔 것처럼 맨질맨질한 모습이 애교스럽게 보인다. 민둥산 일대에는 12개의 둘리네가 있다고 안내판에 자세히 적혀있다. 혹시 아나 쉴려고 앉은 자리가 갑자기 석회암 동굴이 발견되어 본인의 이름을 딴 새 역사의 장이 될련지?
가끔씩 서있는 오래된 소나무. 독불장군처럼 혼자 살다 보니 바닥부터 잔가지를 많이 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땅 넓은 줄만 아는 양 고독한 노송 곁은 지나 잘 못 디디면 죽 미끄러져 엉덩방아라도 찔 량의 잔뜩 거름기를 머문 검은색의 팥죽처럼 늘어진 길을 한 땀 한 땀 올라 어느 고승의 바랑 매고 가는 뒤 모습의 맨머리처럼 놓여나는 민둥산.
산하를 휘휘 둘러 겹겹이 둘러쳐진 주름진 능선이 잠깐 보이는 듯싶더니 식어가는 땀에 한기를 느껴 방한복을 다시 입는 사이 어느 분의 연출이었던가 운무처럼 어디선가 보이더니 잠시 사진 찍는 사이 천하가 안개에 휩싸인다.
1117m 정상에서 키 높이보다 더 큰 기념석과 옛날옛날 옛적에 천마 한 마리가 말 갈기를 휘날리면서 마을을 돌아 주인을 찾아 보름을 산을 헤멧다는 그 이후로 나무는 자라지 않고 참 억새만 났다고 하는 전설의 주인공이 혹여 이 글을 읽는 지 우들 중에 누군가가 그 천마의 주인은 아닐련지요?
발구덕으로 가려다 길이 너무 길컥거려 이 길이 이닌가벼? 하고 뒤 돌아서 증산 초교로 내려서는 길은 아래 정선시내가 한눈에 훤히 보이면서도 가다가 서고 또 가다가 서고를 반복하면서 급하게 사면을 깎아지른 소나무 숲길을 돌아 잣나무 조림지를 건너 아우라지로 흘러갈 물가에 이르러 산행이 끝이 납니다.
식사를 마치고 물가에 내려가 않아 흘러가는 물길을 바라보면서 예전 아리랑이 생각 납니다.
비가올라나 눈이올라나 억수장마질라나
만수산 검은구름이 막 모여든다
노랑저고리 진분홍치마는 받고싶어 받었나
우리 부모님 말한마디에 울며 불며 받었지
물한동이를 여다놓고서 물그림자를 보니
촌살림 하기에는 정말 원통 하구나
정선읍내 일백오십호 몽땅 잠들여 놓고서
임호장네 맞며느리 데리고 성마령을 넘자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너주게
싸릿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사철 임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게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임의 맛만 같다면
올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 나지
네 팔자나 내 팔자나 이불 담요 깔겠나
마틀마틀 장석자리에 깊은 정들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게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비를 보면서 출발을 서두르고 오다가 쉰 고모령 휴게소 한 켠에는 물동이 인 아낙이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손에 잡고 탱글탱글한 젖퉁이는 한쪽만 내 놓은 목각이 떨어지는 빗 속에 조금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지나가는 길손들을 지켜보고 서있다.
후기: 이제 11월 마지막 날입니다. 한 번 뒤 돌아보시고 12월 알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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